‘대출시장’ 온기류

[위클리서울=왕명주 기자] 가계대출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안정화되면서 은행들이 앞다투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소득 이내 대출 취급' 규제가 남아 있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상 고소득자만 혜택을 보게 될 것이란 얘기다.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들은 지난해 축소했던 한도를 복원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축소하라는 구두 지시를 내린 바 있다. 변화하고 있는 ‘대출 시장’을 살펴봤다.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금융권 대출 시장에 온기류가 흐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다음달부터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최대 한도를 현행 5000만~1억원에서 8000만~3억원으로 상향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1월, KB국민은행은 지난 7일에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종전 5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까지 확대했다.

NH농협은행도 지난달 25일부터 신용대출 한도를 2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상향했다. 신한은행도 한도 확대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풀어도 차주들이 체감하는 한도 증액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아직 '연소득 대출 제한' 규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연말 각 은행에 행정지도 공문을 보내 신용대출취급 시 한도를 연소득의 10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은행들이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더라도, 차주의 연봉이 5000만원이 되지 않으면 한도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신용대출 역시 마찬가지다. 고소득자만 규제 완화 혜택을 보게 됐다.

 

‘연소득 제한 규제’

은행권 관계자는 "연봉이 5000만원을 넘는 고객의 경우 실질적인 한도 증액 효과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고객은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을 수 있다"며 "연소득 제한 규제가 풀려야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재량으로 행정지도를 변경할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당국에 전달된 업계의 목소리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지도 적용 대상이 올 상반기까지 접수된 신용대출인 만큼, 별도의 요청 없이 기다리는 분위기다.

은행들은 지난해 10월 시행했던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이내에서 전세자금대출 갱신, 임대차계약서상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 전세자금대출 신청, 1주택 보유자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신청 제한 등의 '전세대출 3종 규제'를 모두 해제했다. 대출 문턱을 높이기 위해 삭제했던 우대금리도 다시 복원하는 등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해 은행권에 매섭게 불던 ‘대출 한파’가 물러가고 대출 규제가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로 높여놨던 대출 문턱을 이달 들어 크게 낮췄다. 전세자금 대출 규제가 풀린 데 이어 지난해 하반기 자취를 감췄던 억대 마이너스통장도 등장했다.

전세대출 관련 규제도 3월 들어 완화됐다. 시중 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전세대출을 전셋값 증액 범위 내에서만 해주고 전세대출 신청도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관련 규제는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전 시중은행에서 사라졌다.

우대금리도 살아나고 있다. 우리은행은 연 0.2%의 신규 대출 특별 우대금리를 신설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0.5% 올렸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24일부터 중신용 대출상품 최저금리를 0.5% 인하했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 낮추기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가계대출 감소세 영향이 크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4일 기준 706조 2932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6441억원 감소했다.

지난 1월(-1조3634억원), 2월(-1조7522억원)에 이어 석 달 연속 감소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감소세가 지속되면 실적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대출 규제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대출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데는 대출 금리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 1월 기준 연 3.91%로 4%선에 육박했다. 1년 전(2.83%)보다 1% 이상 올랐다.

금융당국이 도입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영향도 크다. 올해 1월부터는 전체 대출액이 2억원 초과할 경우 연간 대출 상환액은 연 소득의 40%(비은행 50%)를 넘을 수 없다. 7월부터는 총대출액이 1억원을 넘으면 규제 대상이다. 한은은 DSR 규제로 은행의 신규 가계 대출은 올해 7월 이후 13.4%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한풀 꺾이며 금융당국의 압박도 지난해보다 약해졌다. 더욱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출 규제는 완화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며 “가계부채 문제는 총량규제 같은 단기적인 땜질 처방이 아닌 부동산 공급을 늘려 자산가격을 안정시키는 등의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금리 인하’ 진행

주요 시중은행들이 전세자금대출 문턱을 낮춘 데 이어 지방은행들도 전세대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대출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DGB대구은행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맞춰 지난해 10월부터 전세자금 대출 일부를 취급 제한했지만 3월 말부터 해제했다.

먼저 전세자금대출에 대해 잔금일과 전입일 중 빠른 날로부터 3개월 이내 대출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부부 합산 1주택자에 대한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취급제한을 해제한다. 또 전세계약 갱신 계약서상 임차보증금 80% 이내 대출도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지난 25일부터 전세자금대출 신규 취급분에 대해 1000억원 규모로 금리인하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5개월 만에 대출 문턱을 낮추는만큼 취급기준 완화 및 우대금리 이벤트를 통해 실수요자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며 "금리 인하와 고객 니즈에 맞는 다양한 상품구비로 고객의 편의성을 향상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세대출 확대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부산은행은 지난 2월 말부터 총 한도 6000억원 규모의 주택관련대출 특판을 판매 중이다. 은행이 선정한 신규 입주예정 사업장에 전세대출을 희망하는 차주에게 0.30%포인트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우대금리가 제공되면 프리미엄 전세자금대출(SGI보증)은 최저 연 3.55%로 받을 수 있다.

지방은행이 대출 빗장을 풀고 적극적인 대출 영업에 나서게된 건 시중은행의 영향이 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대출 문턱을 낮췄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앞장서 대출 문턱을 낮추고 있는 만큼 지방은행들도 발맞춰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주택담보 대출 금리를 내리고, 비대면 가계대출 제한도 하나둘 없애는 분위기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잔금일 이내, 전세금 증액분만’ 등의 단서조항으로 옥죄던 전세자금대출 규제도 최근 사라졌다. 여기에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 한도까지 복구되면, 연봉 이내 신용대출 한도를 빼고는 거의 1년 만에 대부분이 지난해 초 수준으로 돌아간다.

대출 규제와 더불어 부동산 거래 부진,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의 ‘가계대출 빗장 풀기’ 시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들어 인터넷 전문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정체 상태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 1000억원으로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째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가계대출 잔액은 2000억원 줄었고, 올해 1월과 2월에도 각각 5000억원, 1000억원씩 감소했다. 최근 3달 감소액만 8000억원에 달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진정되면서 총량 관리에 여유가 생긴 은행들이 실수요 중심의 전세대출과 마통부터 빗장을 푸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자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규제를 서둘러 푸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은 기업대출 모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이미 10조원대 성장을 이룬 데 이어 올해에도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영업에 나서는 분위기다.

주요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해 대비 15조원 이상, 신한은행은 13조 5000억원, 하나은행은 10조 5000억원, 우리은행은 11조 3000억원 기업대출 잔액이 증가했다. 특히 국민은행은 지난해 가계대출이 8조원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기업대출 증가분이 배에 달했다.

은행들은 통상 주거래 은행을 바꾸지 않는 대기업대출보다는 중소기업·개인사업자대출 모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변화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대출 시장’이 올 한 해 어떤 변화를 겪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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