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드라마 ‘레인 시즌1(The Rain, 2018)’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올해는 비와 눈이 안와 가물다. 올 1월과 2월의 평균 강수량은 겨우 12.8%에 불과하다. 예년의 2/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겨울이라 건조해서 산불도 연일 쉽게 일어난다. 이럴 때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반가운 소식도 없다. 하지만 그 비가 사람을 죽이는 ‘살인 비’라면? OTT서비스 넷플릭스가 2018년도에 공개한 드라마 ‘레인 시즌1(The Rain, 2018, 덴마크)’에서 비는 생명의 물이 아니라 저주의 눈물이다. 이 비에는 한 방울만 맞아도 즉사하는 말도 안 되는 바이러스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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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리는 살인 비, 세상이 망했다

비를 맞으면 죽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이 비가 핵 방사능이 섞여있다면 어떨까? 과거 우크라이나(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떠올려보면 간단하다. 1986년 당시 최악의 방사능 유출이라는 원전 폭발 사고로 인해 체르노빌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원자로 자체의 설계결함 및 안전 불감증 등이 결합되어 발생됐다.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인근 지역에 기형아와 돌연변이 식물, 동물 등이 속출했다. 체르노빌은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더 큰 문제는 원전 사고로 인해 발생한 핵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올라가 구름 속에서 비와 함께 내렸다는 점이다. 핵이 무서운 이유는 낙진과 피폭이다. 방사능 피폭은 사람을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 이 방사능이 비와 함께 내리면서 피해 규모는 더욱 더 커졌다. 그리고도 오랫동안 ‘산성비’가 내렸고 하천에 도로에 땅 속에 스며들면서 러시아는 물론 중국, 대한민국까지 그 여파가 계속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이러스로 인해 비를 맞아 죽는다는 설정이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 비 속에서 사람들이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비는 단순히 내가 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비가 내리는 모든 곳에 생명체가 있고 인간은 그 생명체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비를 맞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 동식물을, 물을 마실 수 있을까? 비에 죽음의 바이러스가 섞여있다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말은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우선은 피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시모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살인 비를 피해 떠나기로 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한 방울. 그 비를 맞는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니 피할 수밖에. 뉴스 방송에서는 연일 비가 온 뒤 죽은 사람들의 소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에 거리는 이미 아비규환이다. 그런데 시모네의 아빠 프레데릭은 뭔가 미리 이 상황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는 달리 침착하게 행동한다. 혹시 프레데릭이 ‘빌런’인가? 프레데릭은 부인과 아들, 딸을 데리고 숲 속 깊이 있는 한 벙커로 향한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다. 벙커 안은 들어서자마자 소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에서 소독약을 뿌리고 옷을 정리하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우리 집에도 현관에 하얗게 분사되는 자동 소독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그런 제품도 나와 있기도 하다. 비싸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드라마가 2018년도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놀랍다.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흡사하니 말이다. 프레데릭은 “왜 이렇게 소독을 해요?”라며 놀라 반문하는 아이들의 말에 “병균이 들어오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스마트폰 SNS 상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이 생생하게 찍히고 있다. 시모네는 스마트 폰을 켜 이 장면을 숨 죽여 목도한다. 충격과 절망, 혼란스러움, 살아남은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하지만 이들이 있는 벙커는 세상의 혼란스러움에서 자유롭고 안전하다. 이 벙커는 아폴론이라는 회사의 소유다. 아버지 프레데릭은 아폴론의 개발자다. 그가 아폴론에서 이 벙커를 설계했다는 것은 금방 유추할 수 있다. 프레데릭은 사람들을 살려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가족을 남겨두고 떠난다. 그는 “비에 사람을 죽이는 바이러스가 들어있다”고 알린다. 아폴론과 프레데릭, 벙커, 살인 비. 아버지 프레데릭은 이 모든 의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의 열쇠는 시모네의 동생, 라스무스에게 있다. 갑자기 벙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시모네는 아빠가 왔다가 생각하고 얼른 문을 열어주지만 그 사람은 그저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낯선 이를 벙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엄마가 남자를 막아선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를 맞고 죽는다. 아이들만 낯설고 무서운 환경에 남겨지다니 이럴 때 드는 감정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위클리서울/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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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한 게 아니라고? 벽을 넘어 새로운 희망이 있다

엄마를 잃고 두려움을 떨던 남매는 이제는 아빠를 찾기 위해 벙커 안에 송신기를 찾아 다른 벙커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아폴론이 만든 벙커는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벙커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지나간 5년의 시간. 두 남매는 이제 훌쩍 자라 어른이 됐다. 하지만 이제 한계다. 식량도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여기서 죽든 밖에서 죽든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남매는 5년 만에 벙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혹시 5년 동안 바이러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하지만 이미 세상은 멸망했다. 그리고 더 무서운 모든 사람들이 다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존자들은 어쩌면 죽음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 총을 든 약탈자들은 남매를 벙커에 가두고 식량만 뺏고 그냥 가버리려 했다. 시모네는 다른 벙커에 가면 식량이 있으니 길을 안내하겠다고 회유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함께 길을 떠난 남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지독한 약탈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생존자를 잡아 가는 인신매매 조직이었다. 이들은 드론을 띄워 생체 온도를 추적해 생존자들을 찾는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왜 이렇게 사용되는지 모르겠다. 과학의 편리함이 인간의 악함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자들을 피하기도 바쁜데 시냇가의 물이나 진흙탕도 조심해야 한다. 시간이 다소 흘렀지만 비와 섞인 모든 물은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마치 방사능에 오염된 것과 마찬가지다. 시모네는 가까운 지역의 또 다른 벙커를 찾아내고 식량과 안전을 확보한다. 그는 벙커에서 아빠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버지는 스위스 안전지대로 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시모네 남매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따라 다시 길을 나선다. 하지만 여행도, 인생도 계획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시모네 일행은 또 다른 약탈자들을 만나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동생 라스무스는 약탈자의 칼에 찔려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다. 더 황당한 것은 이들이 확보한 약탈자들의 드론에서 발견한 지도였다. 드론이 보여주는 지도에는 거대한 벽이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에서 보이는 표시는 어쩌면 이 살인 바이러스가 벽 너머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다. 세상이 멸망한 것이 아니라 벽 너머 아버지가 오라는 안전지대에는 살인 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떠한가.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해야 하나. 올해 전 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세종이 된 오미크론의 치사율이 독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걸릴 만큼 걸려야 이 바이러스가 사라지려나 보다. 우리도 드라마처럼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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