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몽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반 호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징기스칸은 악마야?

오마르는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는 대학을 다니던 도시에서 고향인 반(van)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어제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고향 명소들을 구경시켜주느라 오후 내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는 버스 옆자리 여행객에게 고향 자랑을 했다. 집에 얼마전에 구입한 폭스바겐이 있다고, 내일 연락을 주면 가볼 만한 곳들을 둘러보게 해주겠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낯선 여행객을 만나 신이 난 오마르는, 자기 말이 빈말인지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막상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본 오마르는 여행객의 전화를 피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 오마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크란만큼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다른 도시 출신인 지크란은 교원 시험을 보기 위해 반(van)으로 왔다. 버스 안에서 오마르와 함께 나를 만난 그녀는, 오마르가 내게 한 호언장담을 분명히 기억했다. 지크란은 내가 받아 놓은 오마르의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따졌다. 아마 쿠르드어일 그 말들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노기가 등등했다. 전화를 끊은 지크란은 웃으며 곧 오마르가 차를 끌고 올 거라고 내게 말했다. 무슨 말을 했는데 온다는 거야? 내가 묻자 지크란은 이렇게 대답했다. 터키의 명예를 깎아먹지 말고 어서 손님을 대접하러 오라고 했어. 곧 비가 내릴 듯 흐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지크란이 얼굴에 맨 히잡이 가벼운 바람에 흔들거렸고,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이슬람 사원의 아잔 소리가 쨍하게 흘러 나왔다.

 

오마르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오마르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반(van)은 호수의 도시였다. 동쪽의 아르메니아인이 살아오기도 했던 이 땅은 지금은 쿠르드족의 도시였다. 큰 지도로 놓고 봐도 눈에 띄는 거대한 호수가 이곳에 있었다. 그 호수의 이름 역시 도시의 이름과 같은 ‘반’이었다. 푸르고 거대한 호수는 조금 높은 곳에 오르면 쉽게 눈에 띄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이 세웠을 첨탑 같은 교회들은 거의 사라지고, 이슬람 사원들이 그 자리를 채운 도시. 반 호수의 중간에 떠있는 아르메니아 교회만은 그대로 잘 있었다. 그 교회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성지라서, 1년에 한 번인가 그들의 예배가 허락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오마르는 그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터키 국적의 쿠르드족이었던 오마르와 지크란은 아르메니아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크란
지크란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그들이 우리 형제들을 죽였어. 그들과 싸우기 위해 우리 형제들이 죽고 있어. 오마르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고, 지크란은 크게 괘념치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들의 복잡한 역사를 다 알 수 없어서 잠자코 듣다가 오마르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서쪽의 터키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나라에 사는 쿠르드족을 어떻게 느끼는지, 나중에 하고 싶은 게 뭔지, 등등. 어쩌다 화제가 그렇게 되었는지 나는 그에게 징기스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게 되었다. 내가 여행한 대부분의 땅은 징기스칸의 몽골 군대가 지나쳐갔던 곳이었고, 그들이 터키의 동쪽 역시 지나쳐 갔다는 것을 떠올렸다. 오마르는 질문을 듣고 좀더 심각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악마야, 징기스칸은 정말로 악마야. 그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 죽여 버렸어. 우리는 그들을 증오해.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카라코룸

옛 몽골 제국의 수도였다는 카라코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관광객을 위해 다시 세워진 듯한 거대한 성곽만 황무지에 남아 있었다. 성 안에는 몇몇 티베트 불교 사원들이 있었고, 오방색 깃발들이 바람에 조금씩 펄럭였다. 궁 없이 벽만 있는 경복궁 같았다. 카라코룸인지, 하라호룸인지, 그 사이에 있는 발음이었는데 내가 제대로 붙잡지 못하는 그 발음 사이로 무언가가 빠져나가버린 느낌이었다. 성벽 앞으로는 기념품을 파는 작은 매대들이 늘어섰다. 황량한 풍경 속에서 이곳만이 먼지와 목소리로 북적거렸다. 봉고차를 타고 내린 관광객들을 부르는 상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매대에는 염주나 팔찌나 열쇠고리 같은 것들이, 전리품처럼 구매될 냉장고 자석들이 가득했다. 징기스칸은 그 빛나는 냉장고 자석으로 반짝거렸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지금의 몽골 동쪽에서 부족을 규합해 거대한 세력을 이룬 징기스칸은, 거의 모든 방향을 향해 정복전쟁을 시작했다. 그들의 말은 작고 빨랐고, 말 위에서 자란 유목민들은 활을 잘 쏘았으며 해가 지날수록 쌓이는 전쟁 경험을 통해 그들은 금세 빠르고 강한 군대가 되었다.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계속 서쪽으로 나아갔다. 징기스칸이 죽은 후에도 그의 자식들은 정복을 멈추지 않았다. 서쪽의 유목부족들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왕국들을, 페르시아를, 아나톨리아의 튀르크를, 러시아의 공국들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그들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까지 도달했다. 다음 황제를 뽑는 쿠릴타이를 위해 그들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디까지 정복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여행 다녔던 곳마다, 역사에 몽골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아시아와 유럽이 하나의 무력으로 이어진 독특한 시대. 이 대제국은 한 세기 쯤 흐르고 사분오열 되었지만, 역사에 여러가지 흔적을 남겼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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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이를테면 오마르에게 남은 증오 같은 것도. 나는 그가 아직까지도 징기스칸을 그토록 증오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게 징기스칸은, 징- 징- 징기스칸이라는 노래로 남은 말 잘타고 싸움 잘하는 몽골 영웅이었을 뿐이었다. 동아시아인의 자긍심을 약간 자극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몽골인은 어딘지 강건하고 무해하고, 한국과 비슷한 핏줄이라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한국도 몽골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 일로 생각하는 데다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이도 없다. 고려에 내정간섭을 하던 몽골은 오스트리아까지 향하는 동안 저항하는 많은 국가들을 멸망시켰다. 거기 살던 많은 이들을 수없이 죽였다. 그렇게 죽음을 겪은 이들에게 징기스칸은 악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르게 찾아와 사람들을 다 죽이고 사라진 악마. 800년이 지났는데도 오마르가 진지한 눈으로 증오를 이야기하게 할 만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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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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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이 악마인지, 영웅인지 따져 묻는 것이 지금 의미가 있을까. 그는 서쪽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악의 화신으로 남아 있고, 어느 곳에서는 명언을 던지는 위인으로, 몽골인들에게는 민족의 뿌리가 되었다. 독일 밴드의 노래가 된 징기스칸은 유치원생들의 입 속을 뛰어다닐 수도 있다. 징-, 징-, 징기스칸. 이제 여러 기억으로 남은 그 남자를 생각한다. 말로 길을 이어버린 사람. 하지만 카라코룸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고, 그 근처 공원에는 거대한 크기의 징기스칸 동상만이 기세등등히 멈추어 있다. 텅 빈 평원을 내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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