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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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돈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뭐든 다 하겠다는 각오로 충만한 사람이 점차 늘어간다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우울과 연동돼 있어서 웃음을 갉아먹는다. 마치 상하좌우가 온통 습기로 가득한 감옥에라도 갇힌 것 같은 기분인 것이다.

돈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아무래도 돈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것 같기도 하다. 돈이 없으면 하루를 살아내기도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돈을 모르다니 이게 뭐냐.

돌아보니 나는 주식이나 복권 같은 것에 희망을 걸고 덤벼본 적이 없었다. 경마장이나 경륜장 같은 데를 드나드는 사람을 옆에서 보면서도 따라가 본 적이 없었고, 적금이나 계를 들어본 적도 없고, 보험은 의무 사항인 자동차 보험과 건강보험 외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딱 하나 주택청약 예금이던가, 부금이던가, 정확한 명칭은 잊었지만 하여튼 유행 따라 어쩐다고 주택은행에서 하는 그런 어떤 예금에 가입했다가 이런 짓을 내가 왜 하고 있지? 하는 강렬한 의문 때문에 해지해버린 게 내가 했던 소위 재테크 사업의 전부였다.

뭐랄까. 불안이나 걱정이 나를 피해 갔다고나 할까. 아니면 너무 이른 나이에 돈을 한 번 ‘왕창’, 무슨 계획도 계산도 소망도 없이 얼떨결에 마치 돈벼락이라도 맞듯이 벌었다가 얼떨결에 날려버린 경험으로 인한 시건방짐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돈으로 인한 불안을 심각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돈이 필요할 때 없으면 누구한테 빌리고,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공사장이든 뭐든 하여튼 사람을 필요로 하는 데 가서 한두 달 날품을 팔고 돌아오는 그런 태평한 삶에 나는 어느새 길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도 여유로웠던 내가, 돈 모으기를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워서 혀 차기나 서너 번 하고 말았던 내가 돈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스레 붙잡았으니 이것은 진화인가 퇴행인가.

우연히 마주한 옛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런 신기한 문제가 나를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에 잠시 알았던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 잠시 알았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된 동기가 또 재미있다.

건강보험 공단에서 이메일이 왔었다. 문자도 왔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 내가 대장암 검진 대상이었는데 안 받았다고, 이번에는 꼭 받아야 한다는 문자가 여러 번 오고 이메일도 잊을 만하면 오곤 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 로고가 찍힌 우편물도 여러 차례 왔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병원이었다. 이름도 낯선 병원에서 내 개인정보를 어떻게 갖고 있는지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매번 무시해 버렸다. 그런데 이게 뭐랄까, 하도 반복되니까 무시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성가셔서 안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결국 병원 문턱을 밟았다.

처음 가보는 큰 병원이었다. 검진센터가 따로 있는데 규모가 어마무시했다. 어마무시한 검진센터 여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났을 때, 그녀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지금 바로 돌아가시면 안 되고, 잠시 기다렸다가 부원장님과 면담을 하셔야 한다고, 그런 뒤에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목소리도 친절하고, 표정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나는 이게 뭔 소리냐, 싶었다. 그러면서도 묻지는 못했다. 입이 안 열려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로봇처럼 말없이 그저 고개나 끄덕거리고, 대기 의자에 앉아서 내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그냥 멍하니 앉아나 있었다.

두려웠을까? 내가 마침내 대장암이라는 지저부한 병에 걸려서 죽게 되나 보다 하는 뭐 그런 기분으로 넋이라도 나가버렸던 것일까? 직접적인 표현은 한 단어도 없었지만, 여직원이 내게 심어준 것은 분명 그런 어떤 것이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지만 머잖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것.

아무런 생각도 해볼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그냥 앉아나 있을 뿐이었다. 와중에도 내 이름 석 자는 또렷하게 들렸다. 벌떡 일어섰다. 아까와는 다른 여직원이 나를 보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나는 역시 로봇처럼 말없이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여직원은 내 앞에서 한참을 걷다가 문 하나를 열고, 두 손으로 들어가라는 모션을 취하고, 내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문을 닫았다.

“김수복씨?”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을 것이다. 백발의 깡마른 사내 하나가 나를 쳐다보며 자기 앞의 의자를 손짓해 보였다. 마치 사형 집행인 같았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서웠다. 그렇지만 지시에 순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순하게 하라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대장암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게 발생하면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기본검사와 정밀검사 두 가지 방식으로 대장암 발발 유무와 그 정도를 확인하는데 기본검사는 말 그대로 기본이라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 정확도가 떨어지는 기본검사는 공단에서 비용을 부담하지만 정밀검사는 정확도가 높은 만큼 개인부담이라는 등등, 너무도 한가한 이야기를 그는 약 오 분간에 걸쳐서 상세하게, 친절하게 마치 내 귀에 집어넣기라도 하듯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어느 순간 불현 듯이 혼자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사기꾼들의 수법인데?

강렬한 의문부호가 튀어나오고, 거의 동시에 요놈 잡았다 하는 느낌이, 의기양양 같은 것이 내 안에서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순간 나는 아마 강력한 적개심으로, 나를 속여 먹으려 드는 종교 관계자라든가 무당 혹은 다단계 업체 관계자 등등 예비 사기꾼을 대할 때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벌떡 일어서고 있었을 것이다. 일어서는 나를 그가 다시 간단하게 붙잡아서 앉혔던가.

“김수복씨, 서울 종로2가의 행정고시학원 기억하시죠?”

행정고시학원이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도로 주저앉았다. 아니 그것은 내 의지로 내가 앉은 게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늘어져 있던 느슨한 줄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나를 걸어 넘어뜨렸다고 보는 게 옳았다. 나는 시신경이 터질 듯이 바싹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먼저 알아본 자 특유의 여유가 만만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네. 맞지?.”

“어헛 참 내.”

라면과자와 소주가 떠올라 왔다. 밤 9시에 시작하는 행정법 강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서 밖으로 나오면 머릿속이 콘크리트 덩어리 같았다. 소주라도 한 잔 마셔야지 안 그러면 그대로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술집에 들어가서 마실 만한 돈은 없었다. 구멍가게에서 라면과자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서 들고 굳이 종각 옆으로까지 가서 나란히 앉아 홀짝거리곤 했다.

그는 그때도 이미 공무원 신분이었다. 공무원 중에서도 말단, 그나마도 임시직이었다. 그 서글픈 신분을 그는 한 번에 뒤집어엎고자 했다. 그래서 필사적이었다. 반면에 나는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일 뿐이었다. 우연히 한 번 치른 하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보니 간땡이가 부어올랐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고시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아마 집요하지 못했을 것이고, 집요하지 못하다 보니 중도에서 그만두고 잊어버리는 것도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내가 그만둔 뒤로도 그는 삼 년 이상을 더 매달렸다고 했다. 어쩌면 1차 시험에 합격을 하지 못했다면 쉽게 그만두고 생활 형편상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섰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두 번째 본 시험에서 덜컥 1차 합격을 해 버렸다. 이것은 끊을 수 없는 마약이었다. 좋으면 2차에 이어 3차까지 통과해서 5급 사무관이 되는 것이고, 나쁘면 십 년 넘게 고시낭인 소리를 듣다가 폐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세상의 길이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어느 하루 수업 시간에 행정학 교수가 그 길을 알려주었다. 고시 1차 합격도 경우에 따라서는 꽤 쓸 만한 이력이 될 수 있다는 조언에 따라 그는 고시낭인의 길을 접었다.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보는 시대가 되었다는 현수막이 도처에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에 그는 그 조직에 특채되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기관이라 조직구성도 아직 제대로는 안 돼 있었고,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던 시기였다.

그는 그 조직에서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눈에 띄게 못나지도 않았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전국 방방곡곡 안 가 본 데가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순환근무를 했고, 승진도 꾸준히 해서 지사장 명함을 십 년 남짓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그 나이가 되었다. 몸도 마음도 아직은 팔팔한데 그만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본인은 아직 실감도 못 하고 있을 때 다른 데서 먼저 알고 섭외가 들어왔다는 거였다.

“그게 지금 이, 부원장?”

“그렇지 뭐.”

“다들 그런 식으로 팔려가나?”

“그렇지 뭐. 제약회사도 있고 의료기기 회사도 있고, 많아.”

“수입은 공무원 신분일 때보다 훨씬 많겠지?”

“그렇지 뭐.”

“그런데 의사도 아닌 사람이 병원에서 부원장 신분으로 하는 일은 뭐야?”

“법치국가의 법률은 정교한 것 같지만 허술하거든. 놀랍도록 허술해.”

그는 거기서 입을 다물고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그런 웃음은 자기도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옳을 것이고, 더 이상은 그런 질문 받고 싶지 않다는 완강한 거부의사이기도 할 터이었다. 하긴 그런 질문을 던진 내가 바보였다. 병원장이 관료 출신을 부원장으로 영입한 목적이 수익의 극대화 외에 다른 무엇이랴. 환자를 많이 유치해서 수입을 늘리기로 하자면 관료 출신 따위는 아마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각종 법령과 시행령, 규칙 등등 속에 숨어 있는 허점, 빈틈, 그런 것들을 찾아내서 급여를 비급여로 돌리거나 공단에 청구하는 금액을 늘리거나 뭐 그런 목적 아니겠는가 말이다. 심한 경우에는 당당하게 불법을 감행할 동기로 활용하기도 할 것이었다.

전직 관료의 불법행위는 현직 관료들이 무마해줄까? 공식적으로는 당연히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은 당사자들 외에 다른 아무도 모른다. 고로 그들은 법정에 설 일이 거의 없다. 일이 잘못 돼서 법정에 선다 해도, 판사나 검사를 거친 이른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승률 90퍼센트 이상이다. 고로 이런 변호사는 가격이 엄청 비싸다. 그 대목에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삼십 년 넘게 공무원 노릇 했으니 연금도 꽤 나올 테고, 설마 먹고살 일 때문에 이런 일 하는 건 아니겠지?”

“그야 뭐.”

“그토록 오랜 세월 국민 세금으로 먹고살았으면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도 좀 해보고, 뭐 그럴 수는 없는 건가?”

“은혜?”

“이를테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그래서 일 원이라도 손해를 덜 보게 하는 보람찬 일 같은 것 말이지.”

순간 그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눈가에 물기가 잡힐 정도로 한참을 박장대소하다가 뚝, 멈추더니 눈을 갸름하게 뜨고 나를 짯짯이 훑어보는 그의 표정이 뭐랄까, 너 지금 누구한테 그런 비천한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무안했고,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어서 더 이상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희망이 억류된 세상을 내가 지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어떻게 돌아왔는지 알 수도 없게 집으로 돌아오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렇겠지. 가슴을 설레게 하는 희망이 없으니 즉물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는 돈에 집착하는 것이겠지. 자본주의의 핵심은 도덕이 아니요 윤리도 아니고 인성은 더더욱 아닌 오직 하나 돈일 테니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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