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몽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짐짝처럼 실려

나는 처음부터 푸르공,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이 귀여운 이름의 뚱뚱한 차는 이름만큼이나 귀엽게 생겨서, 어쩐지 계속 푸르공, 푸르공 입속에서 굴려보며 놀고 싶었다. 푸르공은 소련 시절 만들어진 군용 승합차였는데, 울퉁불퉁한 지형에서 무던하게 잘 굴러가는 차인 모양이라 몽골에서 지금까지도 잘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도 주변을 제외하면 몽골은 대부분 평야나 사막, 숲과 같은 지형이었다. 큰 도로들을 제외하면 아스팔트 깔린 도로들이 거의 없었다. 있는 도로마저도 수도 바깥으로 가면 군데군데 파여 있어 위험한 구덩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운전을 조심해야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다니기 위해 털털하게 잘 굴러가는 푸르공은 딱 알맞은 차여서, 몽골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자주 택했다. 물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게 펼쳐진 지평선 보이는 들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는 운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짐짝처럼 실려 가는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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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정말 짐짝이 된 줄 알았다. 장기 이동에 퍽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오프로드에 가까운 길에서 하루 여덟 시간가량을 덜덜거리며 이동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행 초입에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졌던 일행들의 얼굴은 조금씩 구겨졌고, 그들은 점차 말하는 짐짝이, 시간이 지나고는 점점 말도 하지 않는 묵묵한 짐짝 그 자체가 되어 갔다. 우리가 택한 일정은 7박 8일 동안 몽골 남부의 고비 사막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둘러본다’는 것의 의미를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모른다. 넓고 광막하게 펼쳐져 있는 땅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끝없이 차를 타고 가야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한국의 여행 카페에서 일행을 구해 만나 생판 초면인 우리들은, 함께 땅의 진동을 겪는 사이가 되었고, 고난을 함께한 자들이 얻는 재빠른 우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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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총 8명이었다. 함께 푸르공 좌석 옆에 달린 손잡이를 붙잡고 시간을 보내다가, 입에 양떼가 몰려오는 듯한 양젓 아이스크림을 먹고 같이 메슥거려했다. 그리고 이곳이 그 유명한 포인트야,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가이드 마기가 차를 세우며 말했을 때 창밖을 보면 사막에 깔린 거대한 협곡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몽골 여행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워낙 넓으니 어디를 택하냐에 따라 퍽 다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수도 바깥의 자연을 둘러보는 여행이라면 아마 비슷할 것이다. 길도 없는 이런 곳들을 혼자 둘러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한국에서 미리 팀을 구해 여행사를 물색해야했고, 아니라면 몽골 현지의 여행사에서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단지 엄청나게 많은 별을 내 눈으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몽골 여행 카페를 뒤적거리다가, 운 좋게 나를 받아준 나보다 몇 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팀에 막내로 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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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나절을 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러다보면 가이드 마기의 계획대로 들려야 하는 자연 포인트에 도착한다. 그곳을 둘러본다. 숨을 크게 쉬고 감탄한다. 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한참 맞는다. 낙타 인형을 팔러 나온 행상 한두 개를 본다. 근처에 있는 몽골식 유목 텐트인, 게르에서 묵는다. 그리고 다시 반복. 어느 날은 협곡, 어느 날은 모래산, 어느 날은 울창한 숲. 차에 실려 갈 때면 언제나 광막한 평야. 이어지는 차체의 떨림과 모래바람. 생각해보면 그 아무것도 없는 듯한 평야에 어떻게 게르가 숙박업을 하고 있는지 신기하다. 꽤 큰 게르 단지도 있었지만, 정말 게르 두 개쯤 되는 곳도 있었다. 모든 방향에 수평선이 보였고, 나를 기준으로 한 수평선까지의 거대한 원에 우리를 뺀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게르의 중앙에 타는 난로에 낙타 똥을 연료 삼아 불을 태우고, 불 조절이 되지 않는 게르는 지칠 줄 모르고 뜨거워지거나, 아예 차갑게 식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옆 게르에서 불타는 난로 덕분에 얼굴이 시뻘게진 누나들이 나와 쪼그리고 앉아 바람을 맞았다. 그 뒤로는 지평선 가까운 곳에서 낙타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야생 낙타인가요? 내가 물었을 때 가이드 마기는, 주인 있는 낙타들이라고, 알아서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는 낙타들이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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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밤일 따름이다

고생스러운 여행이었나. 세상에 더한 고생이 얼마나 많은데 자연 풍경을 그대로 겪어내는 이 여행이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사실 고생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그 고생이 지나치게 위험하지도, 버티기 불가능할 정도가 아니라는 선에서. 모험의 안전한 부분만을 돈 주고 사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고생하면 무언가를 겪었다는 기분이 들고, 겪어낼 때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서 하는 고생이 가장 편안한 거 아니겠나. 최소한 내가 산 거니까. 그래도 이 여행 대부분을 차를 타고 가며 할 줄은 왜인지 상상을 못 했기에 짐짝처럼 실려 가는 여행이 약간 당혹스럽기는 했다. 나만큼이나 함께한 누나들도 이런 여행을 예상을 못 했는지, 그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어둡고 피로에 절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 하고 함께 보낸 시간을 지내며 쌓은 남모를 우애 속에서, 말을 잊는 일행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여행 중 내게 사소한 즐거움이었다. 원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귀엽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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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명씩 나눠서 차를 바꿔 탔다. 하나는 푸르공이고, 하나는 스타렉스였다. 몇 번 갈아타보고 나는 두 승합차의 거대한 차이를 느꼈다. 푸르공은 노면의 상태를 그대로 따라 덜컹거리고, 스타렉스는 최대한 덜 흔들리고자 스스로 노력한다. 당연히 스타렉스가 더 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파여 있기는 해도 아스팔트였던 큰 도로에서는 스타렉스가 편안했으나, 들판을 달릴 때면 스타렉스는 어차피 흔들릴 땅에서 억지로 버티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불안했다. 반면 푸르공은 들판이 생긴 그대로 같이 흔들렸고, 흔들릴 때 같이 흔들려주어 되레 안정적이었다. 때로 버티는 일보다 함께 흔들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같은 감상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소한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함께 흔들거리며 웃었다. 들판은 계속 이어졌고, 양들이 자주 지나갔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4월의 평야는 조금씩, 조금씩 푸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 반쯤 푸른 들판을 우리는 공처럼 튀기며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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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몽골에는 별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은 조금 더 극적인 밤하늘이었다. 은하수가 장대하게 펼쳐 있고 빼곡한 별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밤을 상상했다. 사실 그런 하늘은 당연하게도, 노출을 길게 뺄 수 있는 카메라로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인간의 눈으로는 그저 촘촘히 박힌 많은 별이 보일 따름이었다. 내 눈으로는 은하수의 흔적 같은 것 정도만 보였다. 이게 밤이구나, 이게 밤일 따름이구나, 생각하며 일행들과 미리 사온 몽골 보드카를 잔뜩 마셨다.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안주로 과자 같은 것을 먹었던가. 혼자 바깥으로 나오니 그 많은 별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조금 더 화려하게 변한 그 밤하늘을 바라보다 게르에 들어가 불을 쬐며 잤고, 다음 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리는 채 흔들리는 푸르공 안에서 어떻게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창문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움켜 쥔 손이 풀릴 때쯤 새로운 곳에 도착했고, 그곳 역시 감긴 눈으로 낙타가 지났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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