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그날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 여자가 도망갔다는 최신뉴스를 나는 어쩌면 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포인트는 그것이었다. 도망. 그 뉴스를 전해준 사람은 분명히 그녀가 도망갔다는 표현을 썼다. 주인 여자가 집을 나갔다거나, 가출을 했다거나, 행방이 묘연해져서 식당이 문을 닫았다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도망의 이유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는 묘하게 에로틱한 미소를 얼굴에 흠뻑 담았다. 그 미소로 인해서 우리는 그녀가 소위 바람이 났다는 것을, 그래서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포기하기로 결심했나 보다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그동안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여자의 도망이라고 하는, 이런 주제는 흥미롭다. 심각하면서도 미소가 어설피 지어지는, 웃고 싶으면서도 심각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덤으로 주어지는, 이런 복잡한 주제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냥 그 문제에만 매달려 있고 싶어지게도 한다. 딱히 흥미로워야 할 이유도 없고, 재미있어야 할 까닭도 없지만, 뭐라고 설명을 보탤 만한 이유가 따로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공자가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시경’을 보자.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시편들 중 절반 이상이 남녀상열지사이고, 남녀 간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헤어짐의 서사를 압축적으로 서정화 시켜놓은 까닭에 그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시간 단위가 아닌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년을 투자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이런 흥미로운 의문을 가끔씩만 허용한다. 머릿속에 착실히 저장해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꺼내 들여다볼 만한 시간은 여간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고나 할까. 표면상의 이유가 물론 없지는 않다. 바쁘다는 거, 정신없이 바빠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도망이고 뭐고 그딴 데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거.

무슨 일로 그렇게 바빴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내가 왜 바빴지? 하는 새삼스런 의문에 사로집하기 마련이다. 바쁜 일을 굳이 열거하기로 하자면 천 개, 만 개, 아니 어쩌면 십만 게가 넘을지도 모르지만, 멀쩡하게 잘 살던 여자의 도망이라는 주제와 대비해보면 너무나 시시해져 버리고,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그냥 대충 고개나 갸웃거리고, 눈이나 깜빡거리다가 침묵 모드를 취하고 만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단골로 드나들던 중국 음식점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멀리서나 가까이서 손님이 왔을 때, 집에서 밥을 해 먹이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마땅치도 않아서 만만한 게 뭐라고 습관적으로, 관행적으로 드나들던 식당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 멀리 서울 강동구에서 먼 친척이 왔을 때, 얼큰한 짬뽕에 탕수육을 안주로 고량주나 한 잔 마실까? 하고 갔는데 이게 뭐냐.

 

고사리
고사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시커멓다. 마치 얼마 전에 불이라도 났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불이 났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출입문에 폐업, 두 글자가 푸른색 매직펜으로 씌어 있고, 창문 유리는 안에서 죄다 썬팅을 아주 짙게 해버린 탓에 멀리서 보면 시커먼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폐업을 하면 했지 왜 이런 식으로 음산하게 했을까. 의문이 강하게 일어나긴 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서 다른 식당으로 들어가는 순간 잊어버렸다.

그때가 만일 선거 정국이 아니었다면 그 문제를 그렇게까지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선거, 그것은 확실히 대단한 관심사였다.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세상에 태어난 뒤로 선거 정국을 수도 없이 거쳤지만 그렇게도 아이러니하게 희극적으로 괴상망측한 선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후유증도 깊었다.

언론은 자기들이 진실을 추구한다고 선전하면서 왜 항상 부자들이나 권력자들 편에 서는가.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집단의 논리에 그리도 쉽게 빠져드는가. 등등 따위 사회학에서는 오래 전에 이미 답을 내놓고 있는 문제를 나는 새삼스레 붙잡고 매달렸다.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매달렸다기보다 그냥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 때의 노래란 대개 회한이요 서글픔의 정조를 띠기 마련이다. 그런 노래나마 흥얼거리지 않으면 내가 그만 죽을 것 같으니까, 살고자 하는 의지를, 에너지를 축적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자구책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것일 터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해가 뜨는 줄도 몰랐고, 해가 지는지도 몰랐다.

그런 어느 하루 오전 일찍 그들이 왔다.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이게 뭔 짜증나는 일이냐, 하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왈칵 열어 보니 소형 트럭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 즈음 사람조차 못 알아볼 정도의 폐인이 돼 가고 있었던 셈이다.

고사리를 꺾으러 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우리 집 뒷산에서 고사리를 꺾어가곤 했었다. 그들을 보고서야 나는 고사리 철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고사리, 이제 막 땅을 열고 나온 그 여리여리한 것들, 너무 약해서 아직은 고개도 제 힘으로는 못 들고 있는 것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그 여린 것들을 꺾어 왔던가.

고사리를 꺾으러 다닐 때면 으레 그런 생각을 한두 번씩은 했었다. 이렇듯이 약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뜯어 먹힘을 당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뭐 그런 생각 말이다. 어쨌든 그들과 함께 고사리 꺾기를 나섰다. 산은 작년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나무는 굻어졌고, 찔레나 냉감 같은 가시덤불은 보기만 해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그악스러워졌다.

 

산이 너무 깊어졌어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산이 너무 깊어졌어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아이고 힘들고 배도 고프고 죽겠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소리가 나왔고, 누구는 짜장면을, 누구는 짬뽕을 불러대며 식당이 군집해 있는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때 불현 듯 생각이 났다. 아 그 중국집 문 닫은 것 같던데? 나의 그 말에 왜에? 설마. 말도 안 돼.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터졌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그 중국 음식점은 사오 년 전부터 유례없는 호황을 누려오던 참이었다. 음식 맛이 별나게 훌륭해서 얻은 인기는 아니었다. 공중파 방송에서 진행자와 스텝 등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우우 몰려와서 양장피에 깐풍기에 짜장면에 짬뽕을 먹어가며 한 시간도 넘게 이른바 ‘먹방’ 라이브를 송출한 것이 손님을 끌어들인 이유라면 이유였다.

공중파 방송에서 특별히 그 집을 선정한 이유가 지금 생각하면 또 아이러니하게 재미있다. 그 집의 최고 어른격인 할머니가 하루 종일 양파를 까고, 아들은 국수 뽑기 등 요리를 하고, 며느리와 손녀딸은 홀 서빙과 주방 일을 교대로 거들고, 손자며느리는 계산을 담당하는 한편 주문전화를 받고, 손자는 배달을 하는 등 완전 백 퍼센트 화목한 가족 사업장으로 오래 전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집안이 화목하다 보니 보기에 좋았고, 보기에 좋다 보니 음식 맛 또한 좋은 것처럼 인식됐다고나 할까, 뭐 그랬다.

“어쨌든 지금은 안 해. 문 닫았더라고.”

“어쨌든 한 번 가서 보자고.”

그리하여 우리는, 어쨌든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생각을 하고 또 해도 폐업의 이유가 발견되지 않아서, 그래서 대단히 궁금해져 버린 거였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한때 잘 나가던 중화요리 전문점은 시커먼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다. 아마 건물주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보았다. 건물주가 따로 있다면 이미지를 그렇게도 시커멓게 방치하지는 않을 터이었다.

우리는 그 시커먼 이미지의 건물 앞에 한참을 서서 공론을 펼쳤다. 돈을 왕창 벌었나? 그래서 이제 식당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나? 아니면 큰 도시로 나가서 새로 빵빵하게 문을 열었나? 아닌데, 그냥 망한 것 같은데? 망한 게 아니라면 뒷정리가 이렇게도 우울하게 시커멀 까닭이 있겠어? 하긴 그렇기도 하네.

결론 같지 않은 결론을 내리고 우리는 한 블록 지나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고사리에 관한 잡담을 잠깐 하다가, 반찬을 내온 남자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저기 중국집 왜 폐업한 거예요?

그 순간 남자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얘기할 수 없다는 듯,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듯, 혼자서만 재미있어 보이는 미소를 띤 채 묵묵히 반찬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고, 그리고 돌아서면서 한 마디 슬쩍 흘렸다. 주인아줌마가 도망을 갔다나 봐요.

 

목이 탄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목이 탄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도망’이란 표현을 듣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 또한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었다. 뭐랄까, 그것이 가령 불행이라면, 남의 불행을 소재로 시끄럽게 입담을 펴서는 안 된다는 묵계가 작동됐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우리는 더 이상 그 일을 소재로 입담을 펴지 않았다. 고사리 얘기를 하다가, 반찬 얘기를 하다가, 마치 우리들 자신이 뭔가 민감한 부위를 드러내고 만 것처럼 두서도 뭣도 없는 얘기를 중언부언하다가 밥을 다 먹고, 그리고 헤어졌다.

아마 오십 나이를 넘은 지도 한참일 것이었다. 어쩌면 육십 나이에 근접했거나, 넘었을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기존의 가족관계로부터 이탈해 나간 그 행위를 우리는 축하해야 하는가 아니면 비난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는 낼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렇게도 내심 허둥거리는 마음이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한식집의 그 남자는 왜 도망했다는 표현을 썼던 것일까.

나는 이제 그 점이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표현 도망, 하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없었던 도망, 그 단어의 쓰임이 이제는 아주 크게 이상했다. 도망의 어원은 무엇이지?

우선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노예였다. 도망간 노예를 잡으러 다니는 전문가들도 있었다지 아마? 만약에 도망의 어원이 거기에 있다면, 우리는 지금 결혼한 여성을 노예와 동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결혼한 남자가 집을 나갔을 경우에는 도망이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지?

아 어렵다. 어려워서 흥미가 부쩍 당기고,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가 느껴진다. 아하 참, 이런 신통한 문제의식을 내가 이 나이에 갖게 될 수도 있다니. 내가 나를 칭찬해야 하나? 아니면 소갈머리 없다고 비난해야 하나? 어쨌든 뭐 그렇다. 문제는 도망이다. 도망이란 대체 뭐냐.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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