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들개’라는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스물을 조금 넘긴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어느 날, 자신을 야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어깨너머로 수 십 권은 되어 보이는 책 보따리를 짊어진 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 왔다. 사무실 밀집 지역을 돌면서 책을 대여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며 책을 읽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이동식 도서 대여 서비스 같은 개념일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자는 어깨에 걸친 책 보따리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상체가 휘어진 채 서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같은 게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동화책을 전집으로 들여 놓으면서 성적이 오르면 책을 읽게 해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머리도 둔하고 공부도 지지리 못했기 때문에 동화책 전집은 한 쪽 벽면을 차지하는 소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전집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손가락에 꼽기도 민망할 정도이니 말이다. 눈앞에 책을 두고도 읽을 수 없었던 기억때문인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이라면 그냥 좋기도 하고 갖고 싶기도 한 그런 감정이 있다. 회사를 다니긴 했어도 책을 사서 읽을 형편은 아니었다. 책보다는 집에 생활비를 보태어야 했고 월급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빌려 준다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말은 마치 꽃을 향해 날아가는 꿀벌마냥 혹은 잘 생긴 남성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지남철 이끌리듯 끌려가는 여심마냥 현혹되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어 보지 않겠냐고 나에게 도서대여 영업을 한 야간 대학생의 외모가 잘생겨 보인 것은 물론 당연한 이야기이다. 책 보따리의 무게 때문에 휘어진 그의 상체는 보따리에서 해방이 되자 비로소 곧게 펼 수 있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얼굴이지만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환하게 웃음 짓던 그의 모습에 심쿵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들개’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권하여준 책들 중 하나였다. 다소 괴팍하고 기괴한 모습의 작가 얼굴을 배경으로 한 책 표지가 암울해 보였다. 무의미한 시간들의 연장선에 내던져진 내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들개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온통 잿빛에 둘러싸인 채 힘든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 주고 싶을 만큼 위로가 되지 못했다. 집안의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엄마와 아직은 어린 동생, 그 두 사람을 부양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의무감을 애써 모른 척 하며 의미없는 하루하루에 내 삶을 버려두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없고 미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없던 때에 들개는 내 인생을 흔들어 버렸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며 자신과 싸우는 모습들은 나약한 정신세계를 살고 있는 나에게 크나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들이겠지만 버림받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외부와 단절한 채 그 어떤 억압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들개를 그림으로 완성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감정이입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야생의 들개이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암울함을 벗어 던질 용기가 필요했을까. 이후로도 들개를 몇 번은 더 읽었을 것이다.

‘들개’의 초판도 소장하고 있었지만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도 고민할 것도 없이 구매하였고 지인에게도 읽어 볼 것을 권하며 선물도 해 주었다. 비번을 잊어버려서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비밀번호를 찾는 질문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며 대답은 들개이다. 그만큼 들개는 내 인생의 일부이고 늘 옆에 있는 존재이다.

당연히 작가의 팬이 되었다. 작가가 집필한 작품들은 모두 읽어 보려고 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들은 사람의 마음을 유려하게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바늘 끝이 되어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도 한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묶어 내린 채 거칠고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일이라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라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어눌한 말투였지만 단호함을 내뿜는 고요한 카리스마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의 주관적인 감정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작가의 말은 다 옳다고 느껴졌고 그의 글들은 내 마음의 보석으로 자리 잡았다.

그랬던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를 절망케 하였다. 영원한 불멸의 삶을 살아주기를 바랬다. 다시 일어나리라 믿었고,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말이다. 언제까지나 이 시대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계실 줄 알았는데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세상을 등지고 끝내는 그의 작품 속 들개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에만 해도 꽃이 피고 따뜻해진 봄날이 좋다고 떠들어 댔는데 잔인하게도 이 좋은 계절에 아까운 사람이 두 명이나 떠나갔다. 이 외수 작가가 타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견의 영화배우가 아직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 하였다. 삶과 죽음의 영역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하나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두 사람의 타계는 신을 원망하고 싶을 정도이다.

직접 본 적도 없고 말 한마디 섞어 본 적도 없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언행이나 행보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같이 웃고 감정을 공유했다. 동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써 정말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만물도 소생하고 어려운 시간들을 잘 버티어 낸 덕에 이제는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일으킬 때가 다가오는데 시리도록 눈부신 이 아름다운 계절이 정말 잔인하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일 뿐 우리는 곧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투병 중에 타계한 작가나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영화배우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이나 어록들은 무형의 자산으로 영원할 테니 그것들을 추억하고 기리며 살다보면 우리는 좀 더 순화되어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베토벤을 사랑한 사람은 베토벤을 위해서 울지 말고, 베토벤을 사랑한 사람은 베토벤을 위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니 나는 오랫동안 책장 한 켠에 꽂혀져 있던 소설 ‘들개’를 꺼내어 다시 읽어 보고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들도 한 번 더 봐야겠다. 분명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그 때 발견하지 못했던 활자들이나 순간들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 이것이 영면에 든 고인을 기리고 추억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홀연히 우리들의 곁을 떠나간 이외수 작가와 강수연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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