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몽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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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에서

몽골 사람들은 어딘지 풍채가 좋고 단단해 보였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몸집이 위압적으로 컸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강건한 인상을 풍겼다. 단단한 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울란바토르의 시내를 지날 때면 한국인과 닮은 얼굴의 몽골 남자들이 서늘한 눈빛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적의 같은 것 없이 돌처럼 단단한 것 같은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투박하고 두터운 주먹을 가졌을 것 같은 사람들. 말을 걸면 세상 해맑게 웃기도 할 것 같은 사람들. 소련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콘트리트 건물과 그만큼 거대한 광장, 한국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카페베네가 성황 중이라는 울란바토르의 도심을 지나면, 도시의 구석으로 이어지는 흙길에서 묵묵한 얼굴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무감함과, 그 안에 있을 법한 다정함을 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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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는 분지였다. 고비 사막으로 향하기 전 잠깐 머물었던 소련식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보면 멀리 벽처럼 솟아 있는 메마른 산 같은 것들이 보였다. 투박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들이 곳곳에 모여있고, 공장의 매연이 뿌옇게 분지를 뒤덮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면 끝없는 벌판이 이어지는 도시 안에 사람들이 툭툭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 공항에 내려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트럭에 실린, 거의 늑대에 가까운 개들을 보았다. 아마도 허스키였을 그 개들의 눈은 푸른색이었다. 짖지 않고 목을 길게 빼 울 것 같은 그 개들을 보고, 몽골의 도시에 왔다는 것이 처음 실감났다. 개들을 태운 트럭이 지나가자 도시로 들어가는 초입에 몰려 있는 유목 텐트, 게르들이 보였다. 바람에 천이 펄럭거리고 있는 때 탄 흰색 게르들. 그 게르들을 지나면 현대적이면서도 투박한 도시가 그렇게 나타났다. 먼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밤에는 함께 온 일행들이 아파트에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이따금씩 발코니에 나가 울란바토르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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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물렀던 울란바토르에 대한 인상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여행 대부분을 일행을 제외하면 사람 하나 없는 사막에 있어서 였는지, 역설적으로 잠깐 머물던 도시의 느낌이 도드라진다. 울란바토르는 내게 침묵의 도시로 보였다. 말을 마구 쏟아내는 도시도 아니고, 말을 참고 있는 도시도 아니고, 그저 말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는 도시. 그 속에 사람들은 말 없이 있다가 이따금씩 웃고, 거대한 광장 앞을 무감히 지나가거나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지나갈 것 같은 도시처럼 여겨졌다. 침묵을 견딜 만큼 강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단지 도시의 투박한 첫인상에 압도된 여행자의 짧은 인상일 뿐, 울란바토르 역시 사람 사는 평범한 도시였을 것이다. 다만 나는 초원과 사막만 생각하고 도착한 이 나라에서, 처음 마주한 도시의 인상에 짧지만 깊게 빠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공장에서 계속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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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르거

테를지 국립공원에 방문하는 길에 잠깐 들렸던 울란바토르 근처 소도시에서는 긴또깡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일행들과 작은 식당에 앉아 양냄새가 나는 만두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식당 구석에 앉아있던 허름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채고 “긴또깡, 긴또깡!” 외치며 신난 얼굴로 격투 자세를 취했다. 싸우자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드라마 야인시대에 엄청난 팬이고, 그가 외치는 긴또깡은 김두한이라는 뜻이었다. 한국인을 만난 몽골 할아버지는 그만 야인시대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밖으로는 낮은 건물들이 있는 먼지 낀 흙바닥이 있어서 그랬는지, 정말 야인시대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긴또깡 할아버지는 아마도 술에 잔뜩 취해있는 모양이었고, 우리에게 자꾸 다가왔다. 몇몇 사람들이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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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곁에 있던 운전사 저르거가 할아버지를 식당 바깥으로 내보내며 일은 일단락되었다. 저르거가 말리지 않았더라도 별다른 일이 있었을까 싶긴 하다. 단지 긴또깡 할아버지는, 내게 몽골의 깊은 인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양냄새가 풍겨오는 가게에서 불콰하게 취해 긴또깡을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 솔직히 나는 그런 투박함이 싫지 않았고, 야인의 거리들을 며칠 더 겪어보고 싶기까지 했다. 순진한 생각이긴 하지만, 솔직히 들판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었다. 긴또깡 할아버지는, 가슴 속에 품은 거대한 돌이 이제 잘개 쪼개져, 어쩔 수 없이 마음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사람처럼 보였다.

고비 사막 투어 내내 우리 일행의 승합차를 몰았던 저르거는, 정말 돌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에 더불어 몽골인 세 명이 사막 투어에 동행했다. 여행사의 사장이자 가이드인 만다흐와 운전사인 저르거, 그리고 다른 운전사인 이름 모를 문신 아저씨. 만다흐가 한국말을 거의 한국인에 가깝게 구사하는, 이제 막 사업을 펼쳐나가는 기력 있는 사업가 같은 사람이었다면, 저르거는 내가 울란바토르의 시내에서 보았던 남자들처럼 묵묵해 보이는 편이었다. 그는 한국어를 조금 할 줄은 알았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 나절 흔들거리는 차를 계속 운전해 앞으로 나아갈 뿐. 가끔씩 다른 몽골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호방하게 웃을 뿐.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단단한 인상을 풍기며 저르거는 내내 차를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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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르거는 러시아식 승합차 푸르공을 몰았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문신 아저씨는 스타렉스를 몰았다. 문신 아저씨는 아마도 만다흐가 일정에 맞춰 구해온 외부인력인 듯했다. 문신 아저씨는 늘 스냅백에 선글라스를 끼고, 두터운 몸을 좌석에 밀어 넣고 힙합을 크게 틀었다. 몽골 힙합이었다. 그의 태도는 어딘지 조금 사무적인 데가 있어서, 그의 스타렉스에 타고 있으면 마치 히치하이킹으로 잡은 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 났다. 저르거 역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저르거의 차에 타있는 게 조금 더 편했다. 어쩌면 저르거가 웃는 모습을 많이 보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는 누군가를 속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와 제대로 된 대화마저 거의 나누지 않았지만 여행 내내 거의 차를 타고 이동했기에, 나는 여행 내내 저르거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던 셈이다. 몽골 하면 그의 묵묵한 뒤통수는 그래서 떠오른다. 나는 그 단단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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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행들과 게르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실 때, 저르거가 잠깐 함께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한국에 잠깐 다녀왔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는 아니고 조금 일하다 온 모양이었다. 고도수의 보드카를 훌훌 털어 마시며 저르거가 말했다. 처음 한국에 가서 술을 찾는데, 다들 소주라는 걸 먹더라고, 몽골 친구와 처음 사 마셔보았는데 물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둘이서 열 몇 병을 먹었다고. 그런데 다시 몽골에 돌아오니 그렇게는 못 마시겠다고. 요새는 보드카 한두 병 정도 먹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과장 좀 보탰겠거니 했겠지만, 저르거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그랬을 것 같았다. 앞을 향해 계속 운전하며 나아가는 저르거의 뒷모습. 나는 그런 묵묵함을 따라 평원과 사막을 지나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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