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몽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유목에 가까운 날들

몽골의 평원과 사막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일행들은 점차 말이 없어졌다. 차창 바깥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평원이 있었고, 때로는 사막이, 가끔은 지나가는 양떼나 낙타의 모습이 보였다. 창문을 열면 모래바람이 몰려 들었고 운전사가 커다랗게 키워놓은 음악 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마치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을 배운다는 듯, 하루를 건너 잠깐씩 멈추고 다시 이동하는 유목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각자의 이유로 몽골에 모여든 우리들이 상상했던 것은 아마도 광막한 풍경 속에서 느끼는 어떤 해방감일지도 몰랐는데, 낭만이 으레 중요한 것을 빠뜨리듯,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종일 평원을 멀거니 바라보아야 할지는 누구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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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기름져 가는 머리카락을 대충 묶거나 모자를 눌러쓴 채로 바라본 초원은, 초원 그대로였다. 긴 유목의 세월은 제대로 된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그래서 그 힘센 유목민들이 마주했을 거의 똑같은 평원을 우리 역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의 떠도는 삶은 변변한 건물 하나 남기지 않았지만, 그들의 흔적을 보고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또한 같은 평원을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초원의 삶을 넘겨 보았다. 물론 일주일을 조금 넘는 짧은 시간 동안 유목하는 삶의 어떤 면모나 제대로 보았을까 싶지만, 이토록 이동하기만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이 아니라, 광막한 풍경에 어울리는 묵묵한 침묵이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짐짝처럼 실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쉬고 싶을 때는 내려서 사람들과 노래를 불렀고, 한국인이라면 의무적으로 그래야한다는 듯이 작은 돌탑들을 세웠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지나온 삶에 대한 짧은 대화가 이어지고, 수평선까지 이어진 풍경을 지나면, 그날 새로 묵을 곳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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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도착했던 곳은 지난 날들과는 다르게 몸을 씻을 만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작은 단지였다. 매일 묵던 게르가 아니라, 흐르는 강 옆으로 통나무집 몇 채가 이어져 있었다. 만다흐는 몽골에는 강이 거의 없다고, 오늘 강을 많이 봐두라고 말했다. 비가 내리던 날 만다흐가 기뻐하던 표정이 떠올랐다. 일행들은 강보다는 샤워에 관심 있었다. 물이 콸콸 나오고, 거기에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내심 설레했다. 물에 몸을 완전히 적시고 싶었다. 물티슈와 드라이 샴푸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찝찝한 기분을 홀딱 내려보내고 싶었다. 다만 대충 통나무집에 짐을 풀고 샤워실에 들어갔을 때, 한 가지 거대한 난관에 부딪혔다. 물은 정말 만다흐의 말대로 콸콸 나오는데, 온도 조절이 되지 않아 아주 차갑거나, 아주 뜨겁거나 둘 중 하나였다.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머리가 시릴 정도의 찬물이, 왼쪽으로 돌리면 끓는 듯한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도저히 어느 쪽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계속 오른쪽과 왼쪽의 물을 번갈아 맞으며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몸을 씻었다. 도무지 중간이 없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일행들 역시 넋이 나가 있었다. 밤 공기가 유독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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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 일지

그 중간이 없는 샤워처럼, 4월의 몽골은 종종 뜨겁거나 차가웠다. 우리는 꽤 여러 숙소에 묵었는데, 숙소마다 상황이 각기 달랐다. 정말 현지 유목민들이 머물 듯한 게르부터, 관광객들에 조금 더 맞춰져 있는 게르, 그런 게르들이 함께 모인 단지, 통나무집 단지, 아예 현대식으로 개량된 게르까지. 다양한 몽골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던 가이드 만다흐의 설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여건이 되는 한에서 잡아 놓은 숙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몽골에서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따라가는 대로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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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게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열조절이었다. 게르 중간의 화로에 낙타똥이나 땔감을 넣어 태우는데, 조절이 불가능했다. 아예 꺼지기 일수거나, 미친 듯 타올랐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몽골의 4월 밤은 꽤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불이 꺼지자 낙타똥을 보충해서 넣고, 그러면 계속 타오르고, 난로 위를 덮고 있는 솥뚜껑 닮은 철제 뚜껑은 시뻘게졌다. 타이밍이 잘 맞으면 적당히 타오르는 불에 편안한 밤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연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게르를 가득 채우기도 했고, 말 그대로 불가마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난로가 꺼졌을 때는 머리를 시려하며 깨어났다. 사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는 한 마리의 염소처럼 모든 것이 웃기고 신기했는데, 같이 온 직장인 일행들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초반에 초원을 보며 즐거워하던 일행들은 게르에서 자다가 질식사 할 뻔 했다며, 힘든 상황을 버티기 위해 밤마다 보드카를 들이켰다. 우리가 마시던 그 보드카의 이름은 ‘에덴’이었는데, 다들 술을 먹고 잠들어 진짜 에덴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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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머물 때에는 모두가 점차 나아졌다. 숲으로 가는 언덕길은 롤러코스터를 세 시간 넘게 타고 있는 것마냥 괴로웠지만, 그곳에는 온천이 있었다. 적당히 큰 게르들이 몇 개 모인 온천 단지였고, 드물게 비탈 한쪽에 있었으며, 이번에는 나무가 쭉 이어져 숲을 이루었다. 몽골에 평원과 사막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만다흐가 말했다. 서쪽에는 더 다양한 지형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막이 아니라 숲을 택했다면 더 많이 만났을 나무들 사이에서, 우리는 작은 온천에 몸을 담가 웃었고, 아껴 놓은 맥주를 마셨고, 괜히 별 보러 가자는 노래를 불렀고, 뜨끈뜨끈해졌다. 그리고 다시 게르에 돌아왔을 때, 이번 게르에는 뚜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둥근 게르의 정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어떻게 대처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온천의 훈기에 모든 걸 잊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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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낸 테를지 국립공원의 게르 단지는 최신식이었다. 무늬만 게르고, 바닥에는 온돌마저 깔려 있었다. 만다흐가 세심하게 고른 숙소였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조성된 국립공원에는,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 갖추어져 있었다. 멀쩡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었다. 일행들은 모든 피로를 잊고 기쁨에 젖어 낮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가만가만 서있는 소들이 있었고, 관광객을 태우고 일렬로 걷는 조랑말들이 있었다.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어색할 정도의 공간에서 일행들과 함께 웃었다. 우리가 지나온 초원과 사막과 숲의 날들이 전부 지나가버린 후였다. 우리는 낡고 찝찝한 얼굴을 지우고 다시 말끔해졌다. 더 이상 낙타똥이 없었다. 먼지 날리는 게르의 뜨겁거나 차가웠던 공기도, 널빤지 아래가 아득한 화장실도 없었다. 그렇게 사라진 것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야만 했고, 돌아가기 직전의 온돌에서 몸을 녹였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하루만은 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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