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쓸수록 빠져드는 인생이라는 수렁
애쓸수록 빠져드는 인생이라는 수렁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2.06.21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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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울분'/ 필립 로스, 문학동네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필립 로스의 '울분' ⓒ위클리서울/ 문학동네

권, 희철

언젠가 한번은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작가 목록에 있던 필립 로스. 좋다는 책과 잘 쓴다는 작가는 왜 이렇게 많은지. 예전엔 영미권 소설의 말투가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져 잘 읽지 않았는데 요새는 자주 손이 간다. 그들의 소설을 읽다보면 잘 다듬어진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다. 책으로 쓰인 인물의 삶을 읽다보면 정돈되지 않은 일상에 골조가 잡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삶은 이런 골격으로 세워져 있구나. 대개는 직접 겪는다면 버티기 힘든 종류의 이야기들이지만, 그들이 어딘가에 부딪혀서 드러낸 하얀 뼈는 마치 나의 어지러운 일상을 잠시 지탱하는 흰 목발 같다. 일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소설가 황정은은 "자신이 어떤 소설 속 인물이라면, 어떤 인물이 되고 싶냐"라는 질문에 "결코 소설 속 인물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되고는 싶지 않지만 알고는 싶은 삶의 면면이 소설에는 충분히 많다.

'울분'의 초반을 읽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따라 붙었다. 읽고 있는 것은 나인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다행히 환청은 아니었고, 기억을 돌이켜보니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목소리였다. 예전에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권희철이 몇몇 소설들을 소리 내 읽어 주는 걸 자주 들었다. 목소리 톤이 좋아서 요새도 무언가를 낭독하면 권희철 톤으로 따라 읽곤 한다. 그런데 그때 무슨 책을 읽어주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정도? 몇 년 전에 '소리와 분노'를 읽는데 자꾸 권희철 목소리가 들려서 그의 목소리가 지워질 때까지 쉬었다 읽은 적도 있다. 통으로 한 소설을 다 읽어주었다면 그걸 들었겠지만 긴 소설을 다 읽어주는 법은 없었다.

이것도 시간이 조금 필요하려나 싶었을 때쯤 권희철의 목소리가 사라져서 그냥 쭉 읽었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또 좋은 목소리로 읽어준다는 점에서 낭독은 참 좋은데, 때로 이게 문제다. 읽기를 돕다가도 방해한다. 그래도 출퇴근 길에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검색해 그가 읽어주는 소설을 찾아들어보기를 권한다. 권, 희철.

 

ⓒ위클리서울/ pixabay.com

그 아이의 울분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필립 로스의 책 중 가장 먼저 검색되는 걸 집어 들었다. 읽고보니, 막 대학생이 된 고지식한 유대계 미국인 남자 애가 아버지의 지나친 걱정에서 벗어나 탈주하다 끝내 좌초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핵심으로 돌아본다면, 왜 고작 스무 살쯤 되었던 모범생 남자애가 한국 전쟁의 포화 속에서 어이없게 죽게 되었는지를 포화 속에서 '스스로' 되감는 이야기다.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는 1부의 소제목 ‘모르핀을 맞고’에서 드러나듯 소설은 주인공 마커스가 지난 생의 1년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짜여 있다. 다만 방금 총을 맞고 쓰러져 모르핀을 주입당한 마커스는 스스로도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른다. 갑작스럽게 멈춘 의식 속에서 끝없이 생각이 이어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지난 날들을 계속 되감는다. 일종의 ‘주마등 소설’인 셈. 마커스의 짧고도 길었던 죽음 직전의 주마등이 끝이 날 때 소설도 함께 끝난다. 독자들은 소설의 끝에서야 지금까지의 소설이 전선에 쓰러져 있는 마커스의 주마등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줄 알았다. 마커스도 그랬을 것이다. 정육점을 운영하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해오던 성실한 아버지는 마커스가 대학에 진학하자 병적으로 걱정에 빠져든다. 아들이 자기 품을 떠나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떤 수렁에 빠질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마커스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국 집 근처 대학 생활에 만족하던 마커스는 아버지를 피해 집과 멀리 떨어진 중부의 대학으로 편입한다. 마커스는 단지 열심히 공부해서 적절한 성취를 이루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근처 대학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던 마커스는 아버지를 피해 대학을 옮기자 조금씩 문제를 겪는다. 대학을 제대로 못 마치면 한국 전쟁에 징집되어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꾸준히 따라다닌다. 주말엔 밤새 일하고, 유대인이라고 멸시를 받는다. 학점을 잘 받아 학교 대표로 졸업할 생각만 가득하다.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숙사 생활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질리고,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는 중부 학교 문화에 질리고, 고지식한 채플 강사들의 연설을 들으며 세계대전 중에는 아군이었던 중국 국가를 속으로 되낸다.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듯하더니, 완전히 잠겨 버린다. 적극적이었던 데이트 상대 올리비아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의 고지식함까지 그를 옥죈다. 발을 한번 접지른 것뿐이었는데, 삐걱거리는 일이 계속 생긴다. 그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점점 벌거 벗겨지는 듯하다가, 고지식한 학장과의 대화에서 완전히 폭발한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점점 더 미쳐가고, 어머니는 이혼을 결심하고, 올리비아는 (마커스 입장에서는) 영문을 모르게 없어지고, 결국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채플 대리 출석 시킨 것으로 퇴학 당해 결국 한반도에서 모르핀을 맞게 된 처지까지 간다. 지겨운 채플 시간을 버티려고 외웠던 중국 국가를 부르는 중공군들이 쏜 총알에 한반도에서 죽는다. 그들의 가사에 나오는 ‘울분’을 남긴 채.

벗어나려고 애쓸수록 더 빠져드는 인생이라는 수렁. 결국 아버지의 걱정이 정말로 이루어졌다. 멀쩡하게 살아오던 아버지는 갑자기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보았기에 미친 사람처럼 걱정의 수렁에 빠졌을까. 어떤 시점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겠으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인생이 얼마나 터무니없게 연약한지 체감했을 것이다. 체감을 넘어, 완전히 사로잡혔을 것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사는 삶의 연약함을 그렇게 마주한 사람에게, 아들의 앞길은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찬 것이었으리라. 자칫 사소한 일들로 인생이 완전히 좌초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아버지를 덮치고, 벗어나려는 아들은 벗어나려 할수록 결국 그 수렁의 길을 아주 착실히 밟아 죽는다. “거봐, 이렇게 됐잖아...” 아버지의 말. 수렁이 먼저인가, 걱정이 먼저인가? 삶은 끝내 대답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뻣뻣하고 영민한 소년이 가려고 하는 곳으로 갈수록 반대로 가게 되는, 삶의 지난함. 그게 쌓이고 쌓여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년의 마음 자리가 무겁다. 왜 그랬지, 왜 이렇게 됐지, 되감아도 남는 것은 이 터무니없는 죽음. 그의 삶을 잠시 함께 통과한 독자들은, 여전한 물음을 나누어 갖는다. 이 어지러운 삶의 무게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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