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터키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첫 번째 터키 방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향하던 여름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뜬금없이 터키였다. 이왕, 이라는 말이 여행지를 계속 늘렸다. 처음에는 그저 횡단 열차나 한번 타보려던 계획에 덧살이 붙었다. 이왕 모스크바까지 간 김에 근처에 다른 곳도 둘러보면 어떨까 싶었고, 마침 모스크바에는 다른 유럽으로 향하는 값싼 항공편이 많았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좋았고, 북유럽으로 들어갈 방법도 있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대략의 계획을 세우던 친구와 나는 왠지 여름의 지중해가 보고 싶었다. 이미 2000년이나 흘렀지만 우리가 대학에서 전공한 학문이 시작되었다는 그리스에도 가보고 싶었으며,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하얀 온천에 물이 푸르게 빛난다는 터키의 파묵칼레에도 가보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여행지에 끌린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러시아를 지나 그리스로 넘어가서 배를 타고 터키로 들어간다는 기묘한 계획에 흡족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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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생각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좋았겠지만 결국 우리는 터키에 가지 못했다. 열차 타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동안 터키 공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인 IS가 곳곳에 테러를 일삼았던 해였다.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았던 횡단 열차에서 간신히 인터넷을 잡아 터키의 상황을 계속 알아보았다. 나는 한번 테러가 일어났던 곳이 차라리 더 안전하다는 안일한 논리로 친구를 설득해 계획을 강행하려고 했다. 이미 짜놓은 계획을 바꾸기 싫기도 했고, 예매 해놓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내 뜻만 고집해 안전이 달린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었기에 끝내 터키로 가는 배편을 취소하고 여행지를 변경했다. 3주쯤 지나, 터키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미수에 그쳤다. 터키에 안 간 게 다행인가 싶었을 참에 우리가 가려던 독일의 뮌헨에도 테러가 발생했다. 어딘가를 가려고 하면 계속 위험한 일이 생겼다. 안 그래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와 날치기를 당해 지쳐 있던 우리는, 귀국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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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가지 않기 위해 다른 곳을 빙빙 돌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장 저렴한 항공편은 테러가 났던 터키 공항을 경유하는 편이었다. 테러 때문인지 가격이 훨씬 싸서 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터키에 머물렀나. 가지 못하게 되니 더 가보고 싶었던 터키를, 여행 막바지에 결국 오게 된 셈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공항의 모습은 대개 비슷해서 터키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깜깜한 공항의 밤, 여기가 터키임을 알리는 것은 매대에 케밥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급한 환승 일정 덕분에 먹어보지 못했다. 비행기 창밖 너머로 이스탄불의 야경만 겨우 훔쳐 보았다. 거대한 모스크의 둥근 지붕이 얼핏 보였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눈앞에 있는데 갈 수가 없었다. 문앞까지만 갔다가, 황급히 떠나는 기분이었다. 러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케밥을 매일매일 먹었는데, 케밥의 본고장을 앞에 두고 나는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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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의 나라

다시 터키에 방문한 것은 몇 해가 지난 뒤였다. 그때 잠깐밖에 있지 못했던 게 마음에 남았고, 결국 터키를 한 달 정도 돌아보는 계획을 세워 돌아왔다. 그때 지붕만 겨우 넘겨 보았던 거대한 모스크를 직접 보았고, 먹지 못했던 케밥을 마음껏 먹었다. 케밥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케밥은 그냥 ‘구운 고기’라는 뜻이었고, 내가 알던 케밥은 보통 ‘뒤룸’이라고 불렸다. 어떤 케밥이든 한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저렴한데가가 아직도 케밥이라고 쓰면 배가 고파지는 내게 터키는 식문화의 천국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국교가 없는 세속 국가라고 해도 이슬람이 대부분인 곳이라 돼지고기는 거의 없었지만 먹을 만한 케밥들은 이미 충분히 많았다. 거의 한 달 내내 이 케밥 저 케밥을 다 먹어보았던 것 같다. 고기를 갈아 꼬치로 끼워 놓은 쉬쉬케밥,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와 요거트를 얹어 먹는 이스켄데르 케밥, 매운 맛으로 유명한 아다나 케밥, 한국의 떡갈비와 비슷한 괴프테, 우리가 흔히 케밥으로 부르는 뒤룸 등등, 기억에 남는 케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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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이스탄불에 들린 한국인들에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고등어 케밥은 유명세만큼이나 맛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과연 어울리는 조합일까 의심스럽지만 잘 구운 고등어를 얇은 빵에 싸먹으면 전혀 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맛있었다. 고등어 케밥을 파는 곳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갈라타교 근처에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원조라고 소문난 에밀 아저씨의 케밥이 유명했다. 그가 실제로 원조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인에게 친절했던 모양이었다. 웬만하면 원조를 찾아야할 것 같아 고등어를 열심히 굽는 여러 가게들을 지나 에밀 아저씨를 찾아갔다. 에밀 아저씨는 소문과는 다르게 상당히 지친 얼굴로 비슷한 한국인을 한트럭은 보았다는 듯이 나를 응대했지만, 그 고등어 케밥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짠맛이 적절하게 감돌다가 고등어의 감칠맛과 빵의 고소함으로 마무리되는 훌륭한 맛이었다. 나는 결국 이스탄불에 머물렀던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그를 방문했다. 끝내 혼자 다시 돌아온 이스탄불은 여행에 적응이 덜 되었던 내게 조금 어지럽고 또 외로운 도시이기도 했는데 그때 먹었던 케밥은 괜히 타지까지 와서 심란해하는 여행자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래서 여전히, 터키는 나에게 케밥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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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었을 테지만, 터키는 여행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나라였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섞인 특이한 곳이라는 말을, 터키에 직접 가서 이해했다. 터키가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서양의 역사가 지층처럼 쌓인 곳이었고, 그 땅에 동양에서 기원한 유목 민족이 서서히 정착해 갔던 땅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절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성경에 나오는 도시들이 그곳에 있었으며, 동로마제국 시절의 기독교 유산이 있고, 대제국이었던 오스만 튀르크의 흔적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이 외에도 너무나도 굵직하고 다양한 문화적 흔적들이 뒤섞여 알고 보면 흥미로운 곳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긴 역사의 지층들이 지역마다 남아 있었다. 이 모든 문화적 유산들을 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쪽의 유럽과, 남쪽의 아랍, 동쪽의 페르시아 등등의 문화권이 터키로 모여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터키를 여행하면서 마주쳤던 많은 것들 기억에 남는다. 나는 결국 터키에 다녀왔고, 이제는 케밥과 함께 그 수많은 얼굴을 가진 터키를 그리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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