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싱어송라이터 배영경 인터뷰-1

싱어송라이터 배영경 ⓒ위클리서울/ 배영경 제공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짙도록 맑고 서늘한 가을 하늘, 어둑할 정도로 선명하고 깊은 바다, 마음 안에 다 잡아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부푼 희망이나 포부, 초여름 식물처럼 생기가 왕성한 아이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푸른’ 이미지들이다. 국어사전을 뒤져봐도 최소 7가지 뜻을 가진 ‘푸르다’는 단어의 핵심은 무엇일까? ‘푸른 너’를 그리는 싱어송라이터 배영경의 언어와 목소리에 담긴 초연함이야말로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까.

제2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자, 데뷔 후 9년 만에 내놓은 첫 앨범과 동시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앨범 노미네이트, 블루스 기타리스트, 세션 맨, 밴드 마스터, 기타 교습 강사, 작곡가,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그 어떤 타이틀로도 배영경과 그의 ‘푸른’ 음악을 명확히 수식하기는 힘들다.

2집 앨범 ‘푸른 너’를 발표한 뮤지션 배영경을 자양동 ‘푸른 꿈과 당신의 기타 교습소’에서 만났다.

집값이 널을 뛰는 도시 한복판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자양동의 어느 주택가.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배경음악 처럼 새어 나왔다. 배영경의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는 며칠 전 같이 한잔하고 헤어진 동네 형 같은 친근한 얼굴로 맞았다.

‘오늘의 메뉴를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라던 그는 대뜸 아차산 근처의 어느 두부 음식점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두부 밖에 안 파는 두부집이 있어요. 메뉴는 모두부, 순두부, 콩국수, 딱 세 가지. 너무 좋아해서 어제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후배 장들레랑 갔는데...”

‘두부’는 인터뷰의 첫 화제로 충분했다. 꾸준히 일상과 계절, 자연, 사람의 인연을 노래해 온 그의 음악이 그의 말에서 묻어났기 때문에. 그의 입에서 ‘성동‧광진구 힙한 가게 베스트 5’ 같은 단어가 흘러나왔다면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지 모른다.

 

배영경의 '푸른 너' 자켓 ⓒ위클리서울

배영경의 두 번째 앨범 ‘푸른 너’

“1집은 좀 심해 같았죠. 되게 멀고 깊은 바다 속. 2집은 그에 비하면 수면 위에는 올라온 느낌이랄까요. 말하는 투도 조금 달라졌고, 여러 의미로 ‘확장’에 중점을 뒀어요. 1집은 나일론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표현했는데 2집에선 밴드 구성 곡들을 많이 넣었죠. 저를 처음 알게 된 분들은 ‘원래 어쿠스틱 기타 치는 사람인가?’ 하시기도 하거든요. 사실 제가 밴드에서 기타 치던 사람인데.”

“기타 처음 잡게 된 중학교 때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쳤고, 서른 살 전까지 어쿠스틱 기타 쳐본 적이 없어요. 20대 즈음 기타리스트 세션 일을 하다 보니, 기타 종류는 가리치 않고 다 잘 쳐야 해서 서른 살이 돼서야 어쿠스틱 기타도 죽어라고 쳤어요. 2집에 흐르는 ‘밴드 사운드’는 저에게 낯설거나 새로운 시도가 아니고 지극히 ‘배영경스러운’ 음악이에요. 새 수레에 담는 게 아니고 내 수레에 있던 걸 꺼내는 거죠.”

배영경 2집 ‘푸른 너’는 명확한 서사를 가졌다. 1번 트랙 ‘푸른 너’에서부터 댐핑 감 있는 나일론 기타 소리로 시작해 이륙하듯 풍부한 밴드 사운드로 상승한다. 마지막 구간의 베이스 코드 변화마저 사랑스러운, 경쾌한 2번 트랙 ‘솔직하게’를 지나면 상대적으로 톤 다운된 무드로 바뀐다.

익숙한 담백함을 찾아가는 듯 끌리는 후렴구의 ‘사랑해’, 포르투갈 북부지방의 작은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기타 같은 전주가 인상적인 드리미한 넘버 ‘오후의 꿈’, 로맨스 장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언젠가 나에게 사랑이 온다면’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좋다.

최소한의 음 사용으로 배영경식 사색의 효과를 극대화한 ‘작은방’, 훌륭한 후렴구가 담긴 ‘그땐 우리 모두 다 사랑을 했네’, 제대로 밴드 사운드를 구사한 록 넘버 ‘우리’가 서사의 고점을 찍으면, 김광석 시대 포크의 향수가 담긴 듯한 ‘그 길 위에 다시 새벽’이 희망과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 짓는다.

자유롭고 다채로운 곡 구성과 음색의 장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보컬 음의 쓰임, 직관적 제목들은 배영경의 2집 앨범을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일종의 브릿팝의 기분마저 느껴지는 2번 트랙 ‘솔직하게’가 가장 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솔직하게’는 포크 록을 표방하는 곡이고 전에 발표한 곡들과는 차이가 있어요. 이전 곡들에서 어떤 ‘파장’을 전부 안고 가려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 노래의 경우 ‘굵은 선’을 그으려고 했달까요. 그에 맞게 가사 스타일도 직선적으로 바꿨어요.”

“이번 앨범은 밴드 구성 곡 비율이 반이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첫 곡도 밴드 곡으로 넣고 싶었어요. ‘푸른 너’가 첫 번째 트랙인 이유죠. ‘푸른 너’는 심지어 곡에 들어간 코드 자체가 적어서 어떤 사람은 ‘이걸 이렇게 가지고도 곡을 쓰네?’하기도 하더라고요.”

록 장르 중에서도 곡 구성으로 따지면 가장 미니멀한 펑크록도 코드 3개는 쓰는데. 그에 못지않은 파격으로 들렸다. 물론 ‘함께 걸으면 행복한 사람’, ‘마음이 열리면 사랑할 순간들’, ‘푸르른 숲을 이루어 서로의 위안이 되어 사랑한 날들’을 노래하는 그에게 ‘파격’이란 단어는 송라이팅에 한정 지어야 겠지만.

한편, 2집 ‘푸른 너’의 앨범 재킷은 배영경을 닮은 청초한 소년의 사진이다. 그는 ‘조카를 통해 내 유년을 투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한 적 있다.

“앨범 재킷을 구상하면서, 처음엔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회화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렸어요. 구상한 것들을 가져가 회사와 얘기했더니 대표님이 보고는 ‘어디 네덜란드에서 약 먹고 EDM 하는 애들 같지 않아? 그것도 끝까지 간 애’라고 하더라고요.”

“앨범 제목인 ‘푸른 너’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떠올렸을망정 서사는 구체적이었어요. 내 곁에, 내 굴레에 함께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조카 사진을 앨범 재킷으로 고른 이유는 단순해요. 원래 우리가 앨범 작업 끝나면 그 음악도 잘 안 듣고 안 꺼내 보고, 창피하고 아쉬워하기도 하잖아요. ‘아 왜 이만큼 밖에 못했지’하면서. 근데 조카 사진이 들어간 앨범 재킷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뒷면에 조카가 ‘후~’ 하고 부는 듯한 이 포즈도 연출한 게 아닌데도 ‘얘가 앨범 재킷 쓰라고 이렇게 해줬나?’ 할 정도로 맘에 들었어요.”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음원 스트리밍 시대로 진입하면서 CD나 LP로 앨범 전체를 듣기보다는 원하는 곡을 선택해 듣는 트렌드가 생기게 됐다. 그러면서 음반 제작사들과 뮤지션들은 자의든 타의든 앨범 단위의 결과물보다는 싱글 단위로 음원을 발매하는 쪽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배영경은 앨범을 택했다.

“1집을 2020년에 발매했지만, 사실 그전까지 싱글은 열 몇 곡을 발매했어요. 그걸 모아서 앨범을 낼까 생각도 해봤지만, 막상 하나하나 들어보니 이게 그 시절과 분기와 계절의 내 마음의 봉우리인 거예요. 한 곡 한 곡이 저에게는 그 시절에 꿈꾼 어떤 빛나는 지점을 찾으려고 한 제 마음속 타이틀곡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내 마음의 꼭대기 지점에 있던 ‘애’들을 모아놓으니 되게 부자연스럽더라고요,”

”싱글과 달리 앨범은 그 한 곡에 ‘꼭짓점’만 담는 게 아니라 산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거잖아요. 봉우리만 들어갈 게 아니라 산자락도 있고, 산 듬성이도 있고. 예를 들면 9번, 10번 트랙쯤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도 좀 줘서 ‘D 튜닝으로 한번 쳐볼까?’하기도 하고. 앨범은 곡 배열도 가능하죠. 내가 아침이라고 생각하는 무드, 오후, 밤, 새벽의 순서대로. 이번 앨범도 제가 생각하는 무드 대로 배열했고요. 그렇다고 ‘싱글을 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건 전혀 아니지만 내 음악 듣는 사람들이 앨범 전체를 들어줬으면 많이 고마울 거 같아요.”

 

음악을 ‘쓴다’는 것

배영경의 음악에는 일상과 여행을 통한 사색과 풍경들이 필름 사진처럼 펼쳐져 있다. 1집 앨범 제목은 ‘여행 기록’. 앨범에 실린 ‘대방동’, ‘겨울 in otaru', '미하루의 아침’엔 구체적 지명과 풍경이 담겼다. 그의 소재들은 어떤 것들이 되는 걸까? 배영경은 초연한 소년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의미 없는 발걸음이란 건 없어요. 일상이 여행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면, 부산이나 제주도로 떠나는 길도, 오늘 광주 집에서 자양동으로 출근하는 길도 전부 의미가 있는 거예요. 간혹 집이 광주고 자양동으로 출근하는 저를 보고 ‘여기까지 어떻게 다니세요?’하시는 분들께는 ‘그냥 제일 가까운 광주에요’라고 해요.”

“거리의 차이는 그 사람의 마음의 거리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광주에서 서울까지 타는 빨간색 광역버스가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죽겠는 일이겠고, 누군가는 사색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거겠죠. 보이는 어떤 풍경도 재료가 될 수 있겠죠.”

“가장 중요한 건 뭘 기계처럼 써나가는 게 아니라 ‘뭐에 대해 써야겠다’하고 느끼는 거예요. 자연이나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면서 더 많은 걸 느끼기도 하고요. 운동 삼아 아차산에 자주 오르는데 어떤 사람들은 산 아래서 만날 때는 색이 탁한데 산에서 만나면 달라요. 사람이 투명해져요. 이런 것들도 다 재료가 되는 거죠.”

2집 ‘푸른 너’의 가사들은 풍경화보다는 세밀한 묘사의 인물화나 회화에 가깝다. 배영경은 “노래에도 어투가 있듯 돌려서 말하던 방식을 직선으로 말하는 구간도 있어야 한다고 판단 했다”고 했다.

“노래방을 거의 가지 않지만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가게 됐는데,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 가사가 보였어요. 술도 마셨겠다 모니터의 가사들이 약간 번져 보이더라고요. 무슨 대단한 가사가 아니고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가사인데 그 순간 이게 너무 주옥같이 보였어요. ‘아, 가사 저렇게 써야지.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하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엔 거창한 게 다 좋은 줄 알았는데 말을 좀 편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영경은 ‘가사는 글이 아니고 말’이라고 했다. 시적인 가사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시를 가사로 치환한다면 전문용어로 ‘달라붙지’ 않는다. 좋은 글과 좋은 가사는 같은 뜻이 아니다. 시를 좋아하는 뮤지션은 있어도 훌륭한 작사가인 시인은 드물다. 배영경은 부연했다.

”전문적으로 가사만 쓰는 사람들은 또 느낌이 달라요. 예를 들어, 첫 음이나 말미 있는 가사 ‘~흐’, ‘~크’, ‘진~’ 이런 글자들이 어울리는 음을 그들은 정확히 알기 때문에. 어떤 음에는 ‘흐’가 맞고 ‘으’는 덜 어울리고 이런 구별을 정확히 하죠. 작사가 박주연 누님 같으신 분은 가사 작업 전에 가수들과 말을 해보더라고요. 이 사람 구강구조가 어떻고 어느 발음이 어울리거나 취약하고 전부 다 맞춰서. 와 역시 하고 감탄했죠. 가사에 관해선 저도 이제 그런 지점을 고민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쉽게 쓰자는 생각은 여전하고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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