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제대로 알면 좀 더 행복할까?
꽃을 제대로 알면 좀 더 행복할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2.07.2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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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카라 무리
카라 무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세상의 모든 꽃들은 나를 심각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며,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서 한꺼번에 마구 쏟아질 때도 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혼란이 극에 달한 그런 날은 어디로든 목적 없이 길을 나서야 한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처음부터 시장을 목적으로 집을 나선 건 아니었다. 마당에 잔뜩 피어난 카라, 꽃은 꽃이되 도무지 꽃 같지가 않은 그 꽃들이 나를 밖으로 몰아낸 것일 뿐이었다. 멀리서 보면 대단히 고고하고 우아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가까이서 보면 색종이 한 장을 뚜르르 말아놓은 것처럼 너무나 단순명료해서 어리둥절해져 버리는, 보고 또 봐도 이해가 불가한 그 꽃을 정신없이 보고 있던 어느 순간 뭔가 참을 수 없다는 마음에 그냥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시장 바닥에 늘어놓은 화분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탁 친다. 누구냐?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모르지만, 그는 나를 알고 있음이 명백해 보인다. 반갑다는 듯이 눈웃음을 치면서, 악수를 하자고 손을 쓰윽 내미는데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얼떨결에 악수까지 하고 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알 수 없어서, 기억해 낼 수 없어서 내심 허둥거리고 있었다. 아주 낯선 얼굴은 아니었다. 어디서 보기는 본 사람이었다. 활터에서 안면을 익힌 사람 같긴 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하지는 않았다. 거기가 어디인가. 누구지? 어디서 만났지? 오 맙소사, 이 무슨 낭패스러움이란 말인가.

“그 왜 천양정 연못 앞에서.”

그가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역시 그랬다. 그의 입에서 전주의 국궁장 천양정 연못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아아 거기,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고, 그리고 이제야 본격적으로 반가움이 샘솟는다는 기분으로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카라
카라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사실 뭐 그렇게 반갑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나의 인연은 딱 그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그게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활터를 처음 드나들던 시기의 나는 뭘 몰랐던 까닭에 천방지축이었고, 그 바람에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활이란 그 자체가 살상무기인 까닭에 활터는 언제나 살짝 긴장감이 흐르고, 걸음걸이나 자세 또한 경직돼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야말로 무식한 까닭에, 호기심만 가득해서 여기저기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니면서 기웃거리고,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붙잡고 온갖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조금이라도 맞으면 술잔을 기울이고,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진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척하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 시절에 나는 용감했고, 그래서 거침이 없었다. 활터 사람들은 무식한 나를 보면서 그놈 참 웃기네 했을 것이고, 웃기는 인간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는 사이 기억에 새겨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몇 사람은 활터의 오랜 관행을 사정없이 깨트리고 있는 나를 그럭저럭 좋은 눈으로 보고 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을 뜬금없게도 시장 바닥에서 만난 것이었다.

그는 그날 고등학교 동창회 때문에 대전에서 고창까지 왔다고 했다. 선운사 인근 장어구이 집에서 동창회 모임을 갖기로 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장어 굽는 냄새가 너무 독해서, 뭔가 참을 수가 없다는 기분이어서 슬그머니 빠져나오고 말았대나 어쨌다나.

“그나저나 요즘은 통 볼 수가 없던데?”

어디 가서 냉커피나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누자고, 커피 전문점을 찾아 가는 길에 그가 넌지시 물었다. 질문이 애매하긴 했지만 나는 금방 알아들었다. 고창의 활터 사람들도 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으레 묻는 질문이 그것이었다.

요새 왜 활터에 안 나와? 달리 뭐 좋은 일 생겼어?

그게 벌써 삼 년인가 사 년인가, 하여튼 꽤 오래 전부터 그런 질문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그렇게도 열심히 활터를 드나들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코빼기도 안 비춰주니 의아하고 궁금하기도 할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할 말이 궁색해서 허둥거렸고, 허둥거리다가 핑계랍시고 내놓는 단어가 꽃이었다. 꽃에 빠졌다고, 꽃에 미쳐서 다른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고, 그렇게 둘러대고 있노라면 “꼬옷? 꽃 때문이라고?” 어이가 없어도 지나치게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는 투의 그런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작약 한 뿌리
작약 한 뿌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맞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아주 거짓은 아니라 해도, 통으로 진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건 사실지만 꽃 때문에 활터를 안 나가는 게 아니고, 못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활터를 드나들기 전의 내가 활에 대해서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선망이랄까 관념이 무너지면서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고 보는 게 아마 정확할 것이었다.

모든 운동 경기가 그렇듯이 국궁 또한 전국 단위와 시도 단위 그리고 군 단위 협회가 결성되어 있고, 협회 차원의 각종 정기대회가 있으며, 유명 관광도시나 자랑할 만한 특산품이 있는 고장에서 개최하는 특별대회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대회장에는 상장과 트로피와 우승기 그리고 돈이 있었다. 돈은 명목상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상이 아니었다. 본상 이상의 위력이 있었다. 상금만을 목적으로 전국의 모든 대회장을 순회하는 사람 또한 부지기수로 많았고, 치열한 승부욕으로 무장한 각자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틈만 나면 도박성 짙은 게임을 벌였다.

외부자의 눈으로 보면 뭔가 대단한 게 있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엉망진창인 경우가 세상에는 더러 있기 마련이었다. 또한 어떤 조직의 내부에서 그 조직의 작동원리를 알고 나면 실망이 생기고, 실망이 반복되면 환멸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이런 거 안 좋아한다, 환멸스러워서 그만두겠다, 하고 말하기는 또 어려웠다. 그 정도로까지 내 마음이 강고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죄 없는 꽃을 핑계로 대는 것이었다. 그러면 대개의 사람들은 질렸다는 투로 슬그머니 돌아설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날 시장에 만난 그는 달랐다.

“꽃 때문에 활터 출입을 접었다? 정말로? 야아 그 서정성이 참 부럽네, 부러워요.”

그가 정말로 부럽다는 듯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접하는 반응이어서 일단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금방 의기가 양양해져서 꽃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당에 양귀비가 피어날 때면 양귀비 외에 다른 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작약이 꽃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하면 작약 외에 다른 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등등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마구 지껄이고 있는 참인데 그가 문득 전화기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작약
작약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아 이것 참, 동창들이 난리가 났네요.”

그제야 나는 정신이 돌아와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아 그렇지 참. 이 사람은 지금 동창회 모임에 왔다가 일탈을 한 거지.

우리는 다음을 약속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럭저럭 유쾌한 기분으로 별다른 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의식을 확 사로잡은 것은 자스민이었다. 멀리서 보면 꽃 같지도 않은 꽃을 피워내는 자스민, 그 꽃 같지도 않은 꽃이 뿜어내는 향기는 대체 왜 그렇게도 강렬한 것인가.

꽃이 밀어내는 향기를 아무나 간단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테면 저울의 눈금을 보듯이, 온도계나 습도계의 숫자를 보듯이, 달리는 자동차의 계기판을 보듯이 그렇게 꽃이 뿜어내는 향기를 가끔 육안으로 확인해 가면서 내가 임의로 그 순도와 밀도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문 밖에 내놓은 화분에서 자스민이 꽃을 피워내기 시작하면 나는 습관적으로, 버릇처럼 그런 백일몽 같은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향기는 내가 굳이 음미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그냥 방으로 슬슬 들어와서 게으름에 빠져 있는 내 의식을 깨워놓곤 한다.

꽃도 작은 녀석이 향은 어찌 그리도 유난스러운지, 마치 향기가 독자적으로 살아서 개구쟁이처럼 뛰어다니는 것만 같다. 어찌나 깊고 넓고 진하게 자극적인지 가까이서 코를 들이밀면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아진다. 그래서 방안에 들여놓을 수가 없다. 밖에 내놓고 창문을 살짝 열어놓으면 향이 스스로 알아서 방으로 들어온다.

6월 말쯤부터 7월, 8월까지, 한 송이가 피어서 이틀이 채 안 돼 떨어지면 그 옆에서 다른 꽃이 피고 또 피는 식으로 꽤 오랜 세월 향기를 무기로 나를 공격한다. 그 바람에 나는 책을 뒤적이다가도 책을 잊어먹고, 영화를 보다가도 영화보기를 망각한 채 콧등만 벌렁거리며 여기가 어디지? 나는 무엇인지? 하는 뭐 그런 비몽사몽이랄까, 인사불성이랄까, 하여튼 마약에라도 취한 것 같은 혼몽 상태로 빠져들곤 한다.

 

자스민
자스민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창문 앞의 자스민
창문 앞의 자스민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런데 이 녀석은 그 진한 향기와는 달리 꿀이 없다. 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술도 없고, 꽃가루도 없다. 벌도 나비도 그 어떤 곤충도 유혹하지 않고 사람만 유혹한다.

아니다. 어쩌면 사람조차도 관심이 없이,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향해 달리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씨앗도 맺지 않는 녀석이 어디의 무엇을 목적으로 자꾸만 향기를 뿜어내는 것인가. 도대체 거기 어디에 무엇이 있는 것인가.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답답하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될 것 같지도 않다. 도대체 이 녀석은 왜, 무엇을 목적으로 그토록 집요하게 오랜 시간 향기를 발산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나는 이상하게도 뭔가 사무친다는 느낌이어서, 까닭도 모르게 애달파져서 금방이라도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진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알고 싶다. 꽃을 좀 더 많이,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알고 싶다. 알고 보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꽃은 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를 속인 것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속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꽃이 나를 속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슨 할 일이 그리도 없어 나 같은 사람 따위를 속여먹으랴.

나 같은 사람 따위-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나는 쿨쩍, 하는 심사가 되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말았다. 나는 꽃을 전혀 모르지만, 꽃은 나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마음은 무한히도 참혹해지고 있었다. 그 기분 그대로 벌떡 일어서서 마당을 왔다갔다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다가 사람 따위로 태어났더란 말이냐. 슬픔이 눈앞을 가렸던 모양이다. 앞으로 달팍 엎어져서 코피를 흘린 뒤에서야 나는 내 정신머리가 일시적으로 혼미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궁금하다. 알고 싶다. 내가 만일 꽃으로 태어났다면, 사람일 때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까? 아니 그보다도 꽃을 제대로 알면 내 행복이 지금보다 두 배쯤 더 행복할까? 모른다. 이것조차도 나는 모른다. 이게 뭐냐. 뭐냔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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