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봉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내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 사람은 소설 ‘좀머씨 이야기’의 주인공 좀머씨를 연상케 하는 케릭터였다. 아니 어쩌면 좀머씨보다 열 배는 더 강력한, 열 배는 더 독창적으로 완벽한 자기만의 삶을 설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만나볼 계기도 없었거니와, 딱히 만나거나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처음에는 없었던 사람이었다. 소방차가 열 대나 출동했다는 화재사건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내 의식 속으로 헤집고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화재사건과 거의 동시에 사라진 그가 누구인지, 무슨 족보와 무슨 이력을 갖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족보와 이력은 고사하고 얼굴조차도 가까이서 본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성별조차도 사실은 불분명했다. 조금 더 과장된 비유를 들자면 그가 사람인지 여부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억하고 있는 것은 딱 하나 1,5톤짜리 트럭 한 대뿐이었다. 밤늦게 소형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가 새벽이면 나가곤 했다는 것이었다.

두세 달에 한 번이나 지나칠까 말까 할 정도로 나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마을이었다. 숨기다가 미처 못다 숨기고 들켜버린 것 같은 집이었다. 낮은 산등성을 배경으로 올망졸망 들어선 마을에서 백여 미터쯤 떨어진 모퉁이에, 거기서 다시 오십여 미터쯤 뒤로 물러선 자리에, 고독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그 무엇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집은 거기에 있었다. 어쩌면 쫓겨난 것 같기도 하고, 버려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 집을 처음 보았을 때는 글쎄,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소품들이 있었다. 담장을 타고 올라간 호박넝쿨에서 호박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담장에 바싹 붙어서 봉선화 꽃이 오글오글 피어나기도 했고, 어떤 때는 해바라기 꽃이 두세 송이 담장보다 높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그런 풍경이야 뭐 시골에서는 눈만 크게 뜨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볼 때마다 정겹다는 느낌이나 가졌을 뿐 그리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한 마디로 말해서 무심 그 자체였다. 그렇게도 무심했던 내가 그 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바라기도 봉선화도 호박꽃도, 그 어떤 생기발랄한 것도 안 보인다는 느낌이 들던 그 어느 날이었다. 차를 몰고 지나는 길에 힐끗 스치듯이 보인 그 집이 내게 준 느낌은 뭔가가 무너졌다는 그것, 마당에 잡초가 우거진 폐가였다.

비었구나. 빈 집이 되었구나. 할아버지가 혼자서, 또는 할머니가 혼자서, 아니 뭐 굳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도, 하여튼 누군가가 생을 마감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머니가 생생하게 떠올라 왔다.

어머니가 조수석에서 조심해라 조심해, 하고 있었고,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음과 동시에 머리를 찧고 엎어졌다. 돌아가신 지도 오래인 어머니가 왜 그날 그 자리에서 그렇게도 생생한 모습으로 떠올라서 나를 놀라게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 마을 앞길을 애써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둘이서 함께 살던 시절의 이런저런 각종 에피소드가 끝도 없이 떠올라 오는데 그것 참, 이상하게도 내가 잘못한 일만 새록새록 떠올라 오고 잘한 일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찾아보면 잘한 일도 꽤 있었을 텐데 왜 잘한 일은 하나도 안 생각나는 것이지?

내가 아무래도 불효자식이었던가 보다 하는 성찰이랄까 자각 같은 것, 그것은 생각 자체가 마치 강력한 바이러스인 것처럼 나를 아프고 쓰라리게 하는 것이어서, 대충 잡아도 아마 2년은 족히 그 마을 앞길을 피해 다녔을 것이다. 피해 다닌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해 다닌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하루 아무 생각 없이 오랜만에 그 마을 앞길을 가고 있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아 이런, 내가 2년 가까이나 이 마을 앞을 피해 다녔구나. 그때 그 이상한 풍경이 보였다. 너무나 낯설어서 어리둥절하고, 여기가 어디인가 싶어 좌우사방을 정신없이 돌아보게 하는 그것, 고물 수집상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는데 마치 성을 쌓은 것 같았다.

 

이것은 쓰레기가 아니다
이것은 쓰레기가 아니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 사이에 무슨 고물상이 생겼나? 처음 봤을 때는 처음 본 것이라서 고개만 잇달아 갸웃거리며 지나쳤다. 두 번째는 뭔가 참을 수 없다는 기분이어서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서 보았다. 세 번째는 아예 차를 세워놓고 주변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아따 참말로 뭔 저런 낯도깨비가 다 있는지 우리도 모르요 야.”

아주머니는 몸서리를 쳤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나도 또한 몸서리가 처진다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는 그 집에 살고 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이십 년도 넘게 소식이 끊어진 채로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할머니라고 했다. 딸 둘은 서울에서 잘 살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는 딸들이 주도해서 치렀고, 화장을 했는데 큰딸이 불쌍한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유골함을 자기 집으로 모셔갔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었다. 서너 달 뒤부터 특이한 현상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리에서 구경하기도 힘든 모델의 고물 트럭 한 대가 마치 탱크라도 굴러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을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또 지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뭐 그런가 보다 했을 뿐 딱히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 두 달, 그것도 늦은 밤 아니면 아침 일찍 지나다니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고물 트럭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으로 밥 늦게 들어가고, 아침 일찍 나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했을 뿐 수상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큰딸이나 작은딸 중에 누군가가 지인에게 빈 집을 빌려준 것이려니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또 몇 달인가 흐른 뒤의 어느 하루 큰딸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던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나서, 사무치게 그리워서 어머니의 유골함을 조수석에 앉히고 정신없이 차를 몰고 집을 나선 것이라고 했다.

 

수집품
수집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정신없이 집을 나와서 고향을 찾았던 큰딸은 그날 그야말로 정신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추와 아욱, 상치 등을 가꾸던 마당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던 어린 서절을 추억하겠다는 그녀의 소망은, 희망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게 돼 있었다.

방이 세 개에 재래식 부엌과 대청마루로 구성된 본채와 창고 하나, 아주 옛날에 돼지를 길렀던 우리 하나로 구성된 집을 빙 둘러서 담을 치고 소박하나마 대문을 단 집이었다. 마당도 제법 넓어서 거기에 따로 집을 한 채 지을 정도였다. 그 모든 공간이 버려진 시계와 텔레비전, 세탁기, 프라이팬, 깡통 등등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어서, 큰딸은 추억이 잠자고 있는 마당으로 들어설 엄두조차 내볼 수가 없었다.

정나미가 떨어져도 너무 깊게 떨어진 큰딸은 집안을 그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종이상자 하나를 찢어서 큰 글씨로 경고문을 쓴 다음 대문에 붙여놓고 서울로 가버렸다.

내가 이 집 주인인데, 한 달 안에 원상복귀 해놓지 않으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수사기관에 고소할 테니 그리 아세요.

대문에 붙여놓은 이런 경고문이 무슨 효력을 발휘할까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효과는 거의 즉각적으로, 마치 경고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밥 늦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오고, 아침 일찍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가는 것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날마다 조금씩 잡동사니들이 집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집안에 있던 온갖 것들이 집밖으로 나와서 집을 중심으로 산처럼, 성채처럼 높이 쌓이기까지는 글쎄, 아주머니의 얘기로는 한 달도 훨씬 넘게 걸렸을 거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면서도 환상인 것만 같아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호박꽃
호박꽃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런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았다. 거리는 차로 이십여 분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문제는 그 사람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 사람은 밤늦게 들어와서 아침 일찍 나간다. 나는 밤이 깊어지기 전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일찍 정도가 아니라 새벽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뒤적거리는 습관이랄까, 취미랄까 하여튼 그런 것을 십 년도 넘게 누려온 참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포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든 한 번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생각뿐이었다. 내일, 또 내일, 그렇게 미루기만 하던 어느 하루 뜻밖의 얘기가 들렸다. 어디에서 어떤 ‘미친놈’이 남의 빈 집 주위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는 얘기였다. 그 어디란 곳이 바로 거기, 내가 알고 있는 그 빈 집이 있는 마을이었다.

얘기를 듣고 그날 바로 찾아가 보았다. 정말이었다. 집을 성채처럼 둘러싸고 있던 잡동사니도, 집도 사라지고 없었다. 목재와 석유화학 물질은 모조리 타버리고 남은 것은 보기에도 끔찍한, 냉장고라든가 책상 같은, 철체 프레임을 갖고 있어서 불에 타지 않고 불이 지나간 흔적만 시커멓게 남아 있는 것들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미친놈’이 쓰레기를 치우다가 힘들어서 그만 불을 질러버렸을 거라고 자신이 만만하게 주장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 주장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딱히 무슨 근거도 개연성도 찾아볼 길은 없다 해도, 힘들어서 불을 질렀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그 사람은 그 많은 잡동사니들과 더불어 미증유의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잡동사니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엄청나게 행복해 했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어쨌든 화재가 난 이후 고물트럭은 더 이상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다 된 지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다른 차원의 생각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혹은 그녀는, 지금쯤 다른 어딘가에서 똑같은 취미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크게 굴절된, 변형된 자본주의 체제의 한 모형이 혹시 아닐까? 돈을 산처럼 쌓아놓고 있어도 만족이 안 되고, 황금송아지를 백 마리 천 마리 갖고 있어도 만족이 안 되는, 그래서 계속 더 많은 다른 무엇인가를, 심지어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소유하고자 안달에 복달을 해대는 부자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돈과 황금송아지는 언감생심 꿈도 꿔볼 수 없는 사람이 쓰레기 수집에 탐닉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