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셀축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셀축의 밤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밤 늦게 셀축에 도착했던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작은 소도시의 아늑한 풍경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이 작은 마을은 처음부터 편안하고 아늑한 구석이 있었다. 보통 한밤 중에 모르는 도시에 도착하게 되면 밤길에 낯선 사람을 마주친 것처럼 두렵고 어색했다. 큰 도시에 밤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길거리가 꼭 어지러운 미로처럼 보여서 자꾸 움츠러들었고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깨어나 화창하고 활발한 도시의 면면을 보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기웃댈 수 있었다. 그러나 크고 복잡한 도시가 아닌 은은한 조명이 빛나는 작고 아담한 소도시를 밤에 마주치니 두려운 마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와야할 곳에 알맞게 왔다는 마음만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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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시절의 유적이 그대로 남은 터에 자리 잡은 작은 소도시에는 군데군데 그리스식 기둥 모형들이 보였다. 모형에 지나지 않는지 실제 유적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아래에서 빛나는 붉은 조명이 기둥을 감싸고 있었다. 예약한 호스텔로 걸어가는 길에는 늦은 밤이지만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작은 식당가를 지나쳐 갔는데 모두가 편안하게 의자에 걸터 앉아 웃고 있었다. 오래된 관광지의 낡은 호프집에서 사람들이 단추를 풀고 웃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꼬치로 된 케밥을 먹었고 맥주를 선선히 들이켰다. 내가 지나가자 그들은 밝은 얼굴로 호스텔이 모여 있을 법한 길을 손짓으로 일러 주었고 이미 길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호의를 즐겼다. 졸고 있다가 깨어난 호스텔 주인을 따라 독특한 구조의 복도를 따라 내려가니 도미토리로 이어졌고 나는 그곳에 짐을 풀고 아무도 없는 12인실 내 몫의 침대에 누워 오늘 지나온 것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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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알게 된 터키 친구에게 그날 케밥 종류를 물어봤던 것이 떠오른다. 지역 명물 케밥이라도 있나 싶어서. 당연히 있었다. 전주비빔밥이 있는 것처럼. 그날 밤에 나는 지역마다 유명한 케밥 종류를 배우고 적어 놓았다. 그렇게 혼자 누워 케밥 생각을 하니 배가 고파졌다. 이 밤에, 이 늦은 밤에 무언가를 먹으려고 또 귀찮게 나가야할까?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멀지 않은 식당가에서 웃던 사람들이 떠올라 나는 결국 그 식당에서 케밥과 맥주를 시켜 먹었다. 쉬쉬케밥은 꼬치로 된 케밥을 뜻한다는 것도 그날 배웠다. 그렇게 덥지 않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고 터키 어디서나 잔뜩 보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내 발밑으로 자주 걸어다녔다. 식당 주인은 손님들 불편하겠다고 고양이들을 쫒아내려고 했는데 누가 봐도 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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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고양이가 있었을까?

셀축이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단연코 에페소스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리스의 향기가 나는 이 고대 도시는, 그때 그 시절-2000년도 더 지난 그 시절 그리스 문화권을 이루는 중요한 도시였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그때의 고대 도시들은 당연히 상당수 유실되었는데 에페소스만큼은 도시가 거의 통째로 잘 남아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실제로 살았고, 성경에 에베소로 등장하는 도시가 남아있으며, 그곳을 직접 방문할 수 있다는 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터키 맥주 ‘에페스’의 이름이 이곳에서 오기도 했다. 전날 에페스를 마시던 나는 들뜬 마음으로 에페소스를 향해 걸어갔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모든 풍경이 뚜렷하게 빛나고 있어서 한번 걸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에페소스를 향하는 길에는 지금은 기둥 하나 남았지만 오래전 세계의 불가사의로 기록되었던 아르테미스 신전 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기념품을 두 남자를 만났다. 한 사람은 중년, 한 사람은 청년. 둘은 부자지간이었다. 둘은 신전 터의 입구 바위에 걸터 앉아 적당하게 웃고 있었다. 굳이 꼭 팔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이, 소일거리나 하러 나왔다는 듯이 앉아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의 묵묵한 눈매는 어딘지 그늘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는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와 나는 한국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다가 내게 무학산을 아느냐고도 물었다. 대구에 있는 산인데 그곳에 종종 갔었다고, 대구 출신인 한국 여자친구를 따라서 한국에 잠깐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짧은 일화는 아무튼 지금은 헤어졌다는 말로 끝났다. 청승도 애절함도 없는 담백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나는 무학산에 종종 가기도 했던 터키 청년이 지금 아르테미스 신전 앞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가 내 앞에서 서늘하게 웃고있었으므로 그 신기한 날들이 내게도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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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에서 계속 걷자 조금씩 에페소스에 가까워졌다. 보통은 차로만 다니는지 경찰들이 서있는 차도의 검문소 같은 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불국사 앞의 풍경 같은 것이 펼쳐졌다.수학여행 버스에서 내리면 펼쳐질 것 같은 매대들.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꽤나 값비싼 표를 지불하고 에페소스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로 그곳에 에페소스가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무너지고 다시 세우고 복원되고 했을 테니, 정말 그때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에페소스 유적은 고대 도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얀 돌로 세워진 길들과 건물들, 그때 사람들이 이용했을 집터와 도서관, 화장실, 도서관, 극장 같은 것들이 오롯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오래된 유적을 본 적은 있어도 그들의 도시를 거의 그대로 마주한 것은 분명 처음이었다. 2000년도 더 된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길을 따라, 그들이 보았을 날씨와 나무들을 상상할 수 있었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갔을지, 이곳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싸우고 웃고 울었을지 너무나도 궁금하고 또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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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 쪽에 거대한 돌길은 원래 바다로 바로 이어졌다고 했다. 지금은 이곳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오래전에는 바다 근처의 항구도시였을 것이다. 고대의 사람들이 항구에 내려 도시의 중심부로 큰 길을 따라 걷고, 도시는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철학자들이 걸어다니고 바울이 신앙을 전파하러 왔다는 도시가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들이 도시의 지도 속에 그대로 남은 채. 나는 그곳을 마치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듯 매번 놀라워하며 걸어다녔다. 지중해의 햇볓이 그대로 내리쬐어 모든 것이 하얗게 빛났고, 책에서 읽은 그 도시가 바로 이 도시임을 나는 계속 신기해했다. 밤을 보내고 온 소도시 셀축에서처럼 이곳에도 고양이들이 누워서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양이 간식을 나눠주자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양이 간식을 고대 도시에서 먹는 터키 고양이. 2000년 전에도, 여기 고양이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어떤 얼굴로 이 뙤약볕을 바라보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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