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변심과 배신 두 단어를 나란히 세워놓고 들여다보면 느낌이 묘해진다. 같은 듯이 다르고, 다른 듯이 같아 보이기도 하는 것이 흡사 인간의 삶을 축약해놓은 것 같다. 슬퍼서 좋다고 말할 때의 느낌 같은 뭐 그런 것. 그래서 재미있다. 흥미롭다.

변심은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되듯이’라는 투의 서정적인 문장으로 해설이 가능하지만 배신은 다르다. 그것은 속임수라든가 전략, 전술, 또는 상술 같은 이미지와 얽히면서 비즈니스화 돼버리기 때문에 서정이 끼어들 틈은 없고, 그냥 살짝 우울해져 버린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 사람으로 산다는 건 슬픈 일이다. 슬픔은 어느 순간 놀라운 힘으로 변환돼서 기쁨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정치나 종교 등 강력한 힘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배신과 속임수가 춤을 추는 또 다른 차원의 슬픔 속으로 빠져들어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니, 사람으로 산다는 건 아무래도 슬픈 일인가 보다.

속임수와 배신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은 속임수와 배신에 능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신뢰하다 못해 종교처럼 의지하며, 중요한 모든 일을 맡긴 결과 또 하나의 배신과 속임을 당하고 몰락해 간다는 교훈을 정치는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는 꽤 어린 시절부터 정치행사에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구경해 왔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중에 한 사람을 친구로 둔 아버지의 영향 때문, 이라기보다는 덕분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란 퍽이나 마술 같은 직함이었다. 평소에는 아무 하는 일도 없는 장삼이사 중에 한 사람일 뿐이지만,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박정희를 선출할 시기가 되면 온갖 잔치와 행사를 주도하는 실력자로 부상하는 것이니, 어린 내 눈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란 베일 속의 귀족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를테면 박정희교의 열렬한 신도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셈이다. 물론 사실을 직시할 만한 정신연령에 도달했을 때의 배신감 플러스 분노의 크기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왕성한 호기심에 따른 모험의 강을 몇 번이나 건너고 났을 때 나는 어느새 스무 살이 넘어 있었고, 세상의 모든 권위적인 것들을 향해 비웃음과 조롱을 날리는 머리통을 장착하고 있었다.

국민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라는 따위 그런 어처구니없는 잔머리 굴리기 짓으로 죽는 순간까지 대통령 소리를 듣고 싶어 했을까, 하는 문제에 이르면 나는 지금도 머릿속이 뜨거워지고,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그런 잔망스런 짓은 열 번 스무 번 아니 천 번 만 번을 생각해봐도 인간에 대한 배신이고, 무지와 무식과 무례로 구성된 야만 그 자체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런 야만의 시대는 이제 갔다고 여겼다. 내 생전에 다시는 그런 끔찍한 야만 따위가 출몰해서 사람의 희망을 망가뜨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다운 세상을 살아가게 됐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설레는 가슴으로 여행을, 길고도 긴 여행 시간표를 짜기 시작했다.

한반도 남쪽 끄트머리에서 섬진강을 따라 오르다가 낙동강으로 빠졌다가 한강으로, 거기서 다시 임진강을 건너 개성, 평양을 거쳐 대동강, 두만강으로, 거기서 다시 블라디보톡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하바롭스키를 지나고 치타를 거쳐 바이칼 호수, 그 광대한 호수 안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알흔섬에 이르면, 마침내 짐을 풀고 차분하게 책상다리로 앉아서 여기가 내 집이다, 하고 선언을 하는, 그런 길고도 긴 여행을 설계하고 있을 때의 나는 그야말로 평범한 내가 아니었다.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게 뭐냐. 새로운 야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끼고 두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새로이 등장한 야만은 그 방면의 선수였고, 그는 선수 중에서도 선수인 것 같았다. a의 죄를 c에게 뒤집어씌우는 기술이 체화돼 있었고, 잔머리 굴리기 또한 과감하게 거침이 없었다. 설마 이것까지야, 하는 순간에 선수는 이미 그 설마를 실행해서 사람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선수는 마침내 사람들의 희망과 설렘 같은 긍정적인 부분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로 우뚝 솟아나 버렸다.

그 선수가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한다는 2022년 5월 9일, 그날에 나는 여행 계획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두 권의 소설을 꺼내들고 있었다. 쥴리언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오른손에 들고,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왼손에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그날의 내 모습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었다면 아마 꽤나 우스꽝스런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

소설을 읽지는 않았다. 어쩌면 읽을 수가 없었다고 말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하도 여러 번 읽어서 읽고 싶지 않았다기보다, 읽기는 읽어야겠는데 어떤 것을 먼저 읽어야 할지 선뜻 결단을 못 내린 까닭에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투덜거렸다.

내 머리가 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네 개에 머리가 둘이어서 한꺼번에 두 권의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냔 말이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시간과 예감이라는 두 개의 주제였다. 시간은 80년대의 서울역 시계탑을 배경에 깔고 있었고, 예감은 파괴와 죽음의 냄새를 향불처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무거웠다. 그리고 불안했다. 너무 무겁고 불안해서 숨이 막히고, 그대로 질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우리는, 인간은 이렇게 거꾸로 달리는 열차를 타고 몰락해 가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존재인 것인가?

아니다. 살아야지. 결심하고 소설은 팽개친 채 음악을 골랐다. 음악 중에서도 탱고를, 탱고 중에서도 피아졸라의 그것을 하루 종일 듣고 밤에도 들었다. 그냥 듣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릇 탱고라 하는 것은 귀로만 듣게 돼 있지를 않으니 어쩔 것인가. 나도 모르게 동동걸음 위주의 탱고 비슷한 흉내를 내고 있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구경했던 온갖 탱고 장면을 기억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자의 뾰족한 하이힐 굽이 남자의 발등을 콱 찍는 장면을 상상하며 웃어대기를 수도 없이 했다. 밤새 그 짓을 하고 나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피곤해서 잠도 잘 왔다.

그날 이후 틈만 나면 탱고를, 탱고 중에서도 피아졸라의 그것을 무한반복 재생 모드로 맞춰놓고 온갖 ‘지랄발광’을 떨었다. 뭐라고나 할까. 피아졸라의 탱고를 듣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근심걱정, 불행, 슬픔, 무력감 따위는 하나도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눈이라도 살포시 감고 귀를 기울이면 내가 제일 예뻐, 내가 제일로 잘났어, 너는 저쪽으로 비켜, 비키란 말이얏, 하는 소리가 음악 사이사이에 코러스로 깔려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바야흐로 겨드랑이에 깃털이 생기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깃털은 곧 날개가 되고, 날개는 팔랑, 팔랑,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나비는 어느 순간 어마어마한 크기의 새가 되어 있었다. 장자에 나오는 붕새가 그만이나 할까? 하여튼 엄청나게 큰 새였다. 한쪽 날개의 길이가 서울의 성수대교보다 길어 보였고, 입은 어찌나 큰지 나 같은 사람 따위 단숨에 두꺼비 파리 삼키듯 해버릴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은 물론 환상이거나 공상이거나 착각 등등 현실도피성 용어를 빌려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최신 뉴스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지만 정치 관련 동영상도 꾸준히 찾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 사나이에 관한 뉴스를 접했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은 지 석 달째 되던 즈음이었을 것이다. 홀연 부상해서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그 사나이의 얼굴을 보고, 이력을 훑어보고 있던 어느 순간 나는 어금니를 콱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매우 불행하게, 비참하게, 슬프게 생을 마감해서 오랜 세월 그 이름을 남기겠구나 하는 그런 예감,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그 사나이는 경찰대학 출신이 아니었다. 경찰간부 후보생 시험을 통과한 사람도 아니었고, 4년제 대학에 설치된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찰의 최정상이라 할 수 있는 치안감 계급장을 달았다. 경찰 계급의 말단이라 할 수 있는 경장으로 특채되어 치안감에까지 오른 것이니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인 셈이었다.

특별 채용된 이후 특별 승진에 또 특별 승진을 거듭해서 경찰의 최정상에까지 오른 남자. 그는 무엇을 그리도 잘해서 특별 채용이 되고, 무엇을 그리도 잘해서 특별 승진을 거듭하며 표창도 여러 번 받았을까. 강도나 사기꾼 등 민생치안에 발군의 실력을 보인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는 특채된 이후 줄곧 악명 높은 공안부서 근무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사나이의 옛 친구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사회운동을 꽤나 열성적으로 했다. 사회운동 중에서도 특히 다함께 잘살자는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뛰었다. 그의 열정과 진정성을 인정한 동료들은 그를 지도자로 추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로 노동운동가들은 속속 잡혀가기 시작했다. 잡혀가서 잔인한 고문을 받고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고, 우울증과 치욕감으로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탄압하던 80년대의 일이었다.

갑자기 사라졌던 그 사나이가 2년쯤 뒤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놀랍게도 경찰관이 돼 있었다는 게 당시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경찰도 말단 순경이 아니라 한 계급 높은 경장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는 거였다.

아, 저놈이었구나, 노동운동가들은 그렇게 직감했지만, 근거도 증거도 없는 까닭에 말 한 마디 못 하고 안으로만, 안으로만 분노와 슬픔을 깨물어 가며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삼십여 년 세월이 흘렀다.

삼십여 년 동안 거의 잊고 있었던 그 사나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조용히 나타난 것도 아니고, 각종 매체에 그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노출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잔악한 인권유린 등 국가폭력의 최대 본산으로 지목돼서 사라졌던, 사라져야만 했던 경찰국을 삼십여 년 만에 부활해서 그 조직의 장으로 앉힌다는 거였다.

만약에 경찰국이 실제로 부활된다면 십사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 경찰 전체의 예산과 인사권을 관장하게 될 것이고, 예산과 인사권을 무기로 조금이라도 덜 잔인한, 조금이라도 인권 친화적인 경찰간부를 골라내고 솎아내서 경찰, 하면 누구라도 이를 갈고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던 80년대의 야만적인 상황이 재현될 것이다.

그 사나이는 아마도 그 일을 노련하게, 능숙하게 잘해낼 것이다. 특채로 들어가서 특별 승진을 거듭한 처지이고 보니 조직 내에 시기와 질투의 눈길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고, 그런 소외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누가 얼마나 깊이 독재를 싫어하는가 따위 염탐과 분석이었을 테니, 잘해내고 싶지 않아도 잘해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에게는 이른바 인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기 자신까지 속여내지는 못 한다고 믿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그는 아마도 매우 치욕스럽게, 매우 비참하게, 매우 절망스럽게 인간의 탈을 벗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이름 석 자는 경찰 역사에 아로새겨지지 않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의 이름 석 자 또한 그 언저리 어딘가에 비열한 이미지로 보태질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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