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위기론’

[위클리서울=이유리 기자] 한가위를 맞는 집권여당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당 안팎에선 ‘위기론’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직격탄도 나오고 있다. 급기야는 법원 결정을 놓고서도 사실상 불복 움직임까지 연출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결정에 대한 후속 조치로 비상대책위원회 재추진, 이준석 전 당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등의 방침을 밝히자 당은 또 다시 발칵 뒤집혔다. 연휴를 전환점으로 준비 중인 여권 내 분위기와 이후 상황을 점검해 봤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당도 대통령도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국민의힘은 분위기는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이 대표 책임론에 대한 입장차와 현 지도부인 권성동 원내대표 체제에 대한 비판 등이 분출됐을 뿐이다. 더구나 친윤그룹 주도하에 비대위 재추진이 결의되면서 내홍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이른바 ‘윤핵관’ 그룹이 불협화음의 핵심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8월 27일 법원 결정 하루 만에 의총을 소집해 네 가지 결론을 내렸다. 법원에 이의신청 등 불복 절차 진행, 당헌당규 정비 후 새 비대위 구성, 이 대표 '막말' 추가 징계, 권 원내대표 거취는 사태 수습 후 결정 등이다.

박정하 당 수석대변인은 "비대위원들 회의에서 직무대행 역할을 누가 할지, 당헌 개정안을 어떻게 만들지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분위기 전환을 꾀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는 분위기다.

당에선 법원 결정이 주 위원장 직무만 일시정지시킨 것이라 비대위는 위원장 공백 상태로 유지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모든 사안은 본안 판결을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법원 결정문엔 '비상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비대위 출범이 정당 민주주의 정신 등을 훼손했다는 점도 명시됐지만, 당은 정치적 결정이었던 만큼 절차를 손봐 다시 비대위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의총에선 '전당대회를 열어 아예 새로운 지도부를 꾸리자' '이전 최고위로 돌아가자' 등의 주장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주 위원장이 선임한 비대위원 8명은 직을 유지하며, 권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사태 수습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

당 내부에선 '법치주의'를 강조해온 집권 세력이 오히려 법원 결정과 민심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설렁탕을 주문했다가 취소했는데 '공깃밥과 깍두기까지 취소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이라면서 "법원 결정 취지를 몰각시키는 해석"이라고 했다.

3선 하태경 의원은 "우리 당 망했다"고 토로하며 "당이 법원과 싸우려 하고 이제 국민과 싸우려 한다"고 했다.
 

‘내부총질, 체리따봉’ 문자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가 누구냐다.

당내 친윤계와 비친윤계의 입장은 확연히 엇갈린다. 결의문에 담긴 '이준석 탓'과 이 대표 추가 징계 요구는 박수영 의원 등 친윤계가 의총에서 내놓은 제안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쪽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유승민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그는 "비대위 탄생의 원인은 대통령의 '내부 총질, 체리 따봉' 문자 때문이었다"며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라고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은 또 "2024년 총선 공천을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이 마음대로 할 거라고 예상하니 권력이 시키는 대로 바보짓을 한다. 당도, 대통령도, 나라도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선 권 원내대표 거취를 둘러싼 찬반 양론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5선 조경태 의원은 "국민과 당원을 졸로 보는 것이냐"며 "현재의 지도부가 그대로 있는 한 무능적 공백 상태와 갈등은 장기화될 것이다. 새로운 지도부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윤상현 김태호 의원 등도 일제히 권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현 상황을 수습해야 할 구심점으로 권 원내대표 외엔 대안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박 수석대변인은 "당에 대한 충정에서 하시는 말씀이란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적인 방안도 제시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의 거취를 두고선 윤핵관 그룹 내에서도 이견이 감지된다. 권 원내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윤한홍 의원은 "연판장을 주도했던 의원들도 나와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배현진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직후 박수영 의원 주도로 연판장을 돌렸던 소위 '신핵관 그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의원은 이 대표 징계에는 찬성하지만 권 원내대표 대행 체제에서 무리한 비대위 전환이 사태만 더 악화시켰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더욱 깊은 곳으로 흐를수록 권 원내대표 그룹과 장제원 의원 그룹 사이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불협화음의 가운데에 있는 이 전 대표는 언론 공개 인터뷰 등을 삼가며 경북 칠곡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그는 의총 결의 등에 대해선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법률대리인단은 당 비대위가 존속하기로 한 데 대해 추가로 비대위원들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할 방침이다.
 

‘원내사령탑’ 운명은?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도 관심을 모은다. 이 전 대표, 유 전 의원 등은 ‘내부총질, 체리따봉 문제’를 집중 겨냥하며 목소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취임 초기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들은 결국 대통령이 윤핵관을 이용해 당무에 개입하려다 벌어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5선인 조경태 의원은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며 “현 지도부는 그 실력이 다 드러났다. 당초 이 전 대표에 대한 처리 방식이 세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당과 국가를 사랑한다면 결단을 하셔야 한다”고 권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4선 윤상현 의원도 “의총에서 네 가지를 결정했으나 제가 보기에는 네 가지를 죽인 결정”이라며 “정치, 민주주의, 당, 대통령을 죽였다”고 했다. 이어 “권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게 정치를 살리는 길이고, 민주주의와 당과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당 혁신위원장인 최재형 의원은 이 전 대표를 ‘토끼몰이’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뒤 사실상 내쫓았다는 취지의 날 선 지적을 했다. 최 의원은 “가처분을 둘러싼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양두구육’이 아니라, 징계 이후 조용히 지내던 당대표를 무리하게 비대위를 구성해 사실상 해임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모든 것이 빈대 때문이라고 하면서 초가삼간 다 타는 줄 모르고 빈대만 잡으려는 당”이라고 했다.

일단 당 내에선 뚜렷한 대체 방안 없이 권 원내대표가 사퇴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정기국회가 다가온 상황에서 원내사령탑의 공백은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최종적으론 윤 대통령의 의중으로 관심이 모아진다. 권 원내대표의 최종 거취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결국 윤심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당무 불관여 원칙을 견지하고 있지만, ‘내부 총질’ 문자로 인해 입장이 무색하게 됐다.

원내 사령탑을 놓고 윤 대통령의 의중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관심이 모아진다. 여러모로 추석 한가위를 맞는 집권여당의 속내가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