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탐방기] 6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위클리서울/ ENA 채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우리는 판타지를 원하지 않는다

하마터면 우영우를 좋아하지 못할 뻔했다. 1화 때문이었다. 송무팀 직원이자 친절함의 대명사인 이준호(강태오 배우)는 출근하며 모든 동료들과 활기차게 인사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 친한 동료와는 요란법썩하게 하이파이브까지 한다. 함께 드라마를 보던 연인과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우리는 저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부분이 자리를 채운 걸 보면 이준호의 출근은 이미 늦었다. 많아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그리 높은 직급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얼른 자리에 앉아 세팅부터 하고 눈치를 살피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뛰어난 사내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에서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동년배끼리 같은 사무실을 쓰며 수평적이고 친밀하게 지냈던 이전 직장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을 내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장애인 변호사의 이야기다.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것이 현실임을 바라면서도 여전히 판타지에 가깝다는 걸 안다. 그러니 더욱 현실과 밀접한 핍진성으로 무장해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삶의 풍경이라는 걸 상세히 보여주길 바랐다. 아침에 저런 인사를 주고 받는 직장부터가 판타지인데,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현실로도 가능하다고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사소한 아침 인사만으로 더이상 드라마를 기대할 수 없었던 이유다. 당시 내가 푹 빠져있던 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이었다. 거기선 사랑을 시작한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아침 인사를 건네자, 낯설음을 느낀 후배가 왜 그러냐며 진저리를 치는 장면이 있다. 그게 너무 현실적으로 웃겨서 좋았다. 친절함도 선을 넘은 이준호에게 그 말을 돌려주고 싶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판타지가 아니라고.

우영우는 이 시대에 기록되어야 마땅할 문화 현상일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넷플릭스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금방 식을 줄 알았던 우영우의 화제성은 날이 갈수록 불이 붙었다. 생전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던 지인들마저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미국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박사 친구는 우영우가 이 시대에 기록되어야 마땅할 문화 현상이라며 힘주어 말하기까지 했다. 영화 공부한다는 애가 이렇게 중요한 컨텐츠를 보지 않을 수가 있나. 친구는 그렇게 말한 적 없지만 거센 열풍에 괜한 압박을 느꼈다.

함께 시청을 중단했던 연인도 은근슬쩍 다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연출부로 일하는 그도 콘텐츠 종사자로서 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무시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거기다 2화까지만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언니의 말이 결정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일단 보고나서 정 아니면 다시 이탈해도 되는 것이었다. 저런 출근이 말이 되냐며 열을 올렸던 것이 무색하게 나도 은근슬쩍 다시 재생을 시작했다.

중간부터 다시 시청한 1화는 느끼하면서도 청량했다. 아직 좋아하기엔 알쏭달쏭했다. 일단 대부분 드라마의 1화는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강약 조절 없이 모든 요소에 힘을 준다. 우리가 준비한 게 이렇게 많으니 채널을 바꾸지 말아달라는 물량공세를 벌이는 것이다. 마치 TMI(Too Much Information)가 난무하는 소개팅 같다. 상대방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풀어내기도 전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가족사를 줄줄 읊는 것이다. 우리 아직 그 정도로 친한 건 아니잖아요. 시작하자마자 모든 인물을 등장시키는 1화는 촘촘한 인과 없이 중구난방이다. 이야기의 전개에 맞춰 천천히 인물들을 소개하기엔 마음이 급한 것일까. 성급하게 당기기보다는 은근한 밀당으로 매력을 어필했으면 좋겠다.
 

너무 좋아서 더 아쉽다

서운할 팬들을 위해 미리 얘기하자면, 나는 이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 1화가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특히 과거 장면은 어김없이 느끼했다. 아직 영우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자폐 진단을 받고 법률을 줄줄 외는 장면이었다. 박은빈 배우가 아무리 동안일지언정 어린 아이를 연기할 순 없으므로 어린 영우는 아역이 맡아 연기했다. 그런데 영우의 아빠 역을 맡은 전배수 배우는 영우가 어릴 때와 다 성장한 이후의 15년이 넘는 간극을 홀로 감당했다. 성인이 된 영우의 아빠, 그러니까 중년의 역할을 맡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젊은 시절도 연기하게 된 것이다.

중심 인물인 영우를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하니, 주변 인물인 아빠는 한 명이 연기해야 시청자의 혼란을 줄이고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살과 25살의 차이는 인간의 성장기와 맞물려 극대화되지만, 35살과 55살은 몸은 그대로지만 얼굴의 주름이나 흰머리가 생기는 정도의 차이다. 그 정도는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맞다. 합리적인 캐스팅과 연출 방식이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실제 배우는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미 나이가 들은 배우가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것이 무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멋쩍은 배우의 쑥스러운 분위기가 전파를 타고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드라마 <신사의 품격>(SBS)에서 불혹을 넘긴 4명의 남자 배우가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 시절을 연기할 때도 도저히 드라마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는 과거 장면이 시작됩니다. 대놓고 고지하는 것 같은 뽀얗고 노란 필터도 너무 쉬운 선택이다.

삶은 계란 뒤에 사이다가 따라오듯, 주인공 영우가 성장해 어른이 된 이후는 달랐다. 모든 장면이 선명했다. 변호사 우영우와 정명석은 고래가 뛰어오르는 바다처럼 청량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건 해결보다 진정 의뢰인을 위하는 길을 생각하는 변호사의 마음은 그동안 봐온 치열한 법정 장르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나와 다른 동료에게 배우고 반성하는 자세, 경쟁하고 패널티를 주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차이를 좁혀가려는 의지야말로 신성한 법정과 어울렸다. 직업을 소재로만 이용하고 일단 로맨스가 더 중요한 여타 드라마들과 달리 열심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인물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위클리서울/ ENA 채널

봄날의 햇살은 언제나 돌아온다

일단 2화까지만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은 정확했다. 2화의 중심 사건은 결혼식 도중 웨딩드레스가 벗져진 신부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가 그랬듯 이혼을 앞둔 부부가 중심이 될 줄 알았는데,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참신함에 절로 눈이 이끌렸다. 부부의 갈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박유림 배우가 웨딩 업체의 직원으로 등장했다.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이렇게 작은 역할도 공들여 캐스팅하는 드라마라면 믿고 볼 수 있었다. 봄날의 햇살 최수연을 연기한 하윤경 배우도 영화 <경아의 딸>(2022)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터라 배우들의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했다. 드라마의 신드롬이 배우들의 이전 필모그래피까지 이어지고 있다던데, 아직 드라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팬이 있다면 두 작품도 꼭 보기를 추천한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이미 드라마가 종결됐다. 너무 늦게 보기 시작해 글까지 늦어졌다. 고민 끝에, 아직 11화까지 본 상태를 솔직하게 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11화까지 본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한번 더 뛰어넘는 순간이 계속 나타났다. 봄날의 햇살 같은 캐릭터도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것을 지키려 욕심내고, 거창한 희생 따위는 하지 않으면서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배려했다. 그래서 허무하지 않았다. 아무리 겨울이 와도 꼭 돌아오는 봄처럼, 무리하지 않았기에 지속가능하게 따뜻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갈등을 유발하는 빌런도 우리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설정을 모아 만든 캐릭터라서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사회에서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 나머지 모든 판단 기준이 자본주의에 입각한 사람 말이다. 구조적 모순이나 인간적 가치는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한 기준만이 정의롭다고 믿는다. 나쁘다며 손가락질하기엔 그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고, 시야를 넓혀 사회의 구조와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때로는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소외와 배신이 더 아프기도 하다.
 

안녕, 우영우

영우의 사회 생활과 사건 이야기들을 지켜보며 오랜 시간에 걸쳐 구상하고 공들여 다듬은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적장애인의 관계를 두고 자기결정권과 폭력을 오가는 예민한 주제는 이견도 충분히 소개하며 균형을 맞추려는 섬세함과 현명함이 돋보였다. 참 착하고 똑똑한 드라마였다. 아직 끝까지 보지 못한 입장에서 함부로 판단하긴 어렵지만, 21세기에 걸맞는 드라마가 드디어 나왔다고 생각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로 극장을 찾는 발길은 줄었지만, 집에서도 좋은 컨텐츠를 소비하려는 시청자들의 욕심과 안목은 높아진 것 같은 요즘이다. 재밌고 뛰어난 작품을 골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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