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박석무] 인류의 이상사회라던 요순시대는 특별한 정책을 펴서 이룩된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처럼 높고 권위가 대단하던 황제가 엄하고 강한 위풍을 짓지 않고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천한 농부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는 일에서 요순정치는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시경』에는 ‘순우추요(詢于芻?)’라는 구절이 나오고, 『논어』에는 그 구절을 인용하여 요순이 요순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노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꼴 베고 나무 베는 백성들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서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정치를 한다면 요순시대가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반 백성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일이야 쉽지 않기 때문에, 궁중에서 함께 벼슬하는 신하들의 진실한 의견을 제대로 받아들여서 하는 정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 조선 후기의 위대한 성군(聖君)이던 정조대왕이었습니다. 정조대왕의 신하로는 훌륭한 신하가 많기도 했지만, 역시 다산 정약용이라는 신하가 특별했습니다. 신하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던 정조의 의중을 제대로 알아차린 다산은 곳곳에서 정조의 그 훌륭한 소통정신을 자세하고 아름답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다산의 글 「부용정시연기(芙蓉亭侍宴記)」에 정조의 진정어린 소통의 예를 아름답고 자상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지금의 임금 19년(1795) 봄에 임금께서 상화조어연(賞花釣魚宴 : 꽃구경과 낚시질 잔치)을 베풀었는데, 신(臣)이 규영부 찬서로 글씨 쓰는 노고가 있다고 하여 특별히 명하여 잔치에 참석하게 하였다. 이때 대신?각신(閣臣)으로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10여 명이었다. …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고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안일하게 유희나 즐기려고 온 것이 아니다. 오직 경들과 함께 즐김으로써 마음을 서로 주고받아 천지의 조화에 응하고자 함이다. …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 것과 같다고 하였으나 임금의 도가 너무 굳세기만 하고 마음씨가 미덥지 못하면 모든 정사가 좀스러워지고 육기(六氣)는 어긋나게 되어 재앙과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 임금께서는 평소에 뜻이 공손하고 검소하시어 여색은 좋아하지 않으시며 진신사대부들 중에 문학과 경술에 밝은 사람만 좋아하여 그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어 즐기신다. 음식을 내려주고 온화한 얼굴빛으로 대해주어서 친한 이를 친하게 대해줌이 마치 집안사람들이나 부자(父子) 사이와 같아서 여러 신하들도 각각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민생의 질고와 여항의 말 못할 답답한 사정을 모두 환히 들을 수 있었다.…”

정조의 위대한 소통정신, 그것을 제대로 알아본 신하 다산의 뛰어남이 합해져 어떻게 소통하는 일이 진정으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세상의 질고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아낼 수 있는 소통인가를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서, 소통을 잘 한다는 말을 듣기 위한 수단으로 진정성 없이 아무나 만나서 지나가는 식으로 듣고, 해결책은 건성으로 대답해버리는 소통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묻고. 진실한 마음과 간절한 뜻으로 답해주는 소통이라야 참다운 소통임을 정조가 보여주고 다산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며 하고 싶은 말을 부모나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뒤, 민생과 국계(國計)를 위한 어떤 내용의 이야기도 거리낌없이 대화할 수 있는 소통, 그런 소통만이 참다운 소통임을 알려준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과연 정조처럼 진정한 소통을 위한 소통인가를 되돌아 봐주기를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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