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위클리서울/ ENA 채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얼마 전,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 드라마를 쓴 문지원 작가는 2018년도에 ‘증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배우 정우성과 김향기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교사를 하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친구 몇몇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는 뭔가 남다른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며 특정 소리(개 짖는 소리나 어린아이 우는 소리 등)에 공포심을 느끼는,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유연성을 갖지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으나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를 변호하고 도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지닌,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많은 사람들이 ‘우영우’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게 말이 되냐?’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자폐에 대한 이야기를 왜 이런 식으로 다루고 싶었던 걸까?

나의 짧은 소견으로 보자면, 자폐가 가진 독특함 속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을 끄집어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쓴 소설 중에 ADHD를 가진 인물들이 제법 많이 나오는데 나 또한 그들이 가진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ADHD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조금 더 이해하는 마음으로 봐주길 바래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와 닿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끔 말한다.

“제가 ADHD를 가지고 있거든요. 하하..하”

어렸을 때부터 나는, 뭔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했다. 엉뚱하고 산만하고 독특한 면이 있었다. 거기다 별 일 아닌 것에 미칠 듯이 화가 나기도 하고(분노조절) 소지품을 잘 잃어버리고 실수를 밥 먹듯 하는데다(주의력 결핍) 여자애 치고는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여(과잉행동?) 걸핏하면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 요즘에야 ADHD라는 것이 세상에 많이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30년 전, 그러니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거기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업시간에 유별나게 산만하고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아이들이 한 반에 몇 명씩은 꼭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ADHD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일컬어지는 이것은 남들이 봤을 때, 시끄럽고 산만하며 눈에 띄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지능이 높을 경우, 창의적이고 활달한 학생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말하자면 장애의 차이라기보다 지능의 차이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아이큐가 세 자리(100은 넘었다는 의미)였으므로 표 나지 않게 지금껏 (그럭저럭)살아올 수 있었다. 만약 내 아이큐가 두 자리였더라면 지금보다 나의 문제가 훨씬 더 도드라졌을 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우영우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뛰어난 지능(암기력) 덕분에 변호사도 되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도 척척 찾아낸다. 말하자면 ‘자폐 때문에’가 아닌 ‘자폐 덕분에’인 셈이다. 하지만 내가 보아온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일상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도, 바이올린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아이도 길거리에 나가면 단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경계선이 드러난다. 3차원의 세상에 살면서도 어쩔 땐, 2차원과 4차원을 넘나든다. 우영우처럼, 지하철에서 얌전히 헤드셋을 쓰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가진 현실적인 난관과 어려움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우영우라는 드라마는 한낱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영우를 보면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사실 있었다.

꼭 서울대 여야만 했나. 꼭 1등이 여야만 했나. 꼭 대형로펌이어야만 했나. 꼭 저렇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야만 했나. 멋진 남자가 우영우에게 반하고 열 친구 부럽지 않은 찐 친구를 갖는다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드라마가 의미 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자폐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고 현실과의 괴리감이 적잖이 느껴지긴 했지만 재벌이나 불륜, 성공 지향주의에 대한 드라마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관심 받지 못하는 주제를 끄집어 내 새로운 화두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그 화두가 사람들 속에서 자리를 잡아 나가기 전까진 과도기라는 게 있고 다양한 부작용과 오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에,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드라마를 쓰게 될 작가 중에는, 가족이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경험해 본(아스퍼거나 ADHD 같은) 이야기를 쓰려는 사람도 있을 거다(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하는). 예전엔 이런 주제로 드라마 대본을 썼을 경우, 제작되기도 전에 묵살 당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 드라마 이후로는 그나마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제로 히트를 칠 수도 있구나!!’

그렇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우영우’라는 이미지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자폐를 미화하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관점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하고 깊은 주제로 접근하기 위해선 이런 단계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우영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끝까지 재밌게 봤다.

남들과 다른, 그러니까 나처럼 ADHD 혹은 또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제일 힘든 건, ‘장애’ 그 자체보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인지도 모른다.

뭘 해도 잘 못 하고.

뭘 해도 미움 받거나 외면당하고.

뭘 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속에 살다보면 마음이 진짜 병 든다.

그게 정말 무서운 거다. 우영우가 부럽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자폐를 가지고 있어도 좋은 아버지와 좋은 친구들과 좋은 직업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노력하며 사는 인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천재 우영우’는 없을지 몰라도 현실 속의 ‘자폐 우영우’는 많다. 그들이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인 응원과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제가 어떻게 대해야 옳은 건가요?”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신이 존중 받고 싶은 만큼, 그들을 대하면 됩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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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3회. ‘펭수로 하겠습니다’에 나온 우영우의 말.>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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