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국방부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직업 공무원이란 게 참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참 그렇다’ 함은 어떤 형용사를 붙여도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한숨이나 쉬게 된다는 뜻일 뿐 공무원이란 신분 자체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시잖습니까. 공무원들 입장이라는 거.”

넉 달, 그러니까 백 일이 훨씬 넘었는데도 잊히지 않는 목소리였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면 그냥 칵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식의 협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십대? 아니 어쩌면 오십대인지도 모른다. 중앙 부처 과장 직급이라고 했다. 실제로 과장인지 여부는 내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기자가 그렇게 불렀으니 나도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과장님, 말씀해 주시죠. 다 알고 왔습니다. 제가 이미 알고 왔다는 거, 아시죠? 아시잖습니까.”

이런 방식의 질문을 아마 압박취재라고 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기자는 취재원의 초상권이라든가 개인 신상은 가능한 한 보호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무릎 아래 신발까지만 화면에 비쳐졌다. 소리는 가만히 남몰래 뿜어내는 한숨소리까지도 다 들렸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투의, 억양이 굵어졌는가 하면 가늘어지고, 천장이라도 뚫을 듯이 날카롭게 높아졌는가 하면 금방 땅속으로 숨어들기라도 할 듯이 낮아지는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나는 그이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있었고, 가슴 속 양심이 요란하게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었다.

나로서는 매우 이채로운 경험이었다. 묘사가 잘된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 같은 것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표정과 액션을 상상해본 적은 수없이 많았어도, 목소리만으로 그 사람의 표정과 눈빛, 자세, 심지어는 마음 상태까지도 읽어낸 경험은 없었다.

취재 결과를 일방적으로 시청자의 머릿속에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닌, 취재과정 자체를 통해 시청자가 스스로 결과를 도출하게 하는 방식의 취재였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거의 시도해본 바 없는, 품이 매우 많이 들어가는, 보는 사람도 지루해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아직은 실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소규모 인터넷 방송이었다.

 

땅을 밀고 올라올 때
땅을 밀고 올라올 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기자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에 새로 설치한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부터 한 가지 주제를 붙잡고 씨름 중이었다. 대통령 당선자 윤석열과 그의 아내는 왜 청와대 입주를 그렇게도 완고하게 싫어하는가. 왜 멀쩡한 대통령 전용 공간을 내버리고 밖을 떠돌며 돈은 왜 또 그렇게도 많이 쓰고 다니는가. 기왕 돈을 쓸 바에는 떳떳하게 당당하게 쓸 일이지 일반 상식으로는 도대체가 납득이 불가능한 태도를 취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기자는 한 가지 가설은 세워놓고 있는 것 같았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줄줄 흘러나오는 거짓말기계 같은 것이 저기 어디쯤에 있고, 기자 자신은 지금 그 기계 앞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 부처의 공무원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이 아이템은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 기자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다는 거, 해야만 된다는 거, 할 수밖에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드러나 있었다.

결연한 의지란 다른 말로 분노였다. 공분이었다. 기자는 분노하고 있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란 직위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알기에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였다. 무엇보다 기자를 분노하게 한 지점은 반칙과 변칙이었다.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정 국가에서 법을 무시하는 반칙과 변칙이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었다.

일례로 대통령이 머무는 공간은 그곳이 어디이건 1급 보안구역이기 마련이었다. 대통령이 날마다 근무하는 사무실도 당연히 1급 보안구역이었다.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고, 화장실 변기 하나를 교체하자고 해도 그 방면의 최고 권위자가 엄격한 심사를 거친 뒤에 참여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런데 국방부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을 새로 만들면서 해당 분야 최고 권위는커녕 변변한 경력도 자격도 증명되지 않는, 동네 가게 인테리어 공사나 몇 번 했을 뿐인 것으로 밝혀진 신생 업체가 들어와서 해치우고 있다는 정황증거가 잡혔다.

 

꽃무릇 한 송이
꽃무릇 한 송이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게다가 공개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었고, 그마저도 공식 계선을 거친 계약도 아니었다. 당연히 거쳐야 할 조달청 심사 과정이 완전 생략돼 있었다. 이거 너무 이상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고, 질문공세에 시달리던 조달청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관련 카테고리를 아예 비공개 처리해 버렸다. 왜 관련 항목이 사라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달청 관계자는 홈페이지 개편 중이라는 황당한 답을 내놓았다. 이쯤에서 대부분의 기자들은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취재를 포기했지만, 내가 즐겨 찾아보는 소규모 방송사 기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자세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 카테고리만 콕 찍어내서 공사를 한다는 거죠?”

기자는 관련 부서 담당자에 질문을 했고, 담당자는 으레 나올 법한 답을 내놓았다.

“콕 찍어낸 게 아니고요. 문제가 발견돼서 고치는 겁니다.”

“언제나 끝나죠?”

“문제가 해결되면 끝나지 않겠습니까.”

기자는 매일 한 번씩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매일 한 번씩 같은 답을 했다. 기자는 매일 한 번씩 같은 답을 듣는 한편 수의계약을 직접 진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중앙부처 해당 부서에 취재협조를 요청했다. 해당 부서 담당자는 총책임자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친절하게 답했다. 기자는 총책임자의 비서실로 전화를 했고, 비서실 직원은 다음 날 몇 시까지 오시라고 역시 친절하게 안내했다.

다음 날 기자가 약속 시간에 맞춰 찾아갔을 때, 비서실 직원은 총책임자가 지금 회의 중이니 잠시 뒤에 다시 오시라고 했다. 기자가 잠시 뒤에 다시 비서실을 문을 열었을 때 비서는 총책임자가 오늘 외부 행사로 출근을 안 하셨다고 했다.

“아니 아까는 회의 중이라더니 출근을 안 했다고요?”

황당해 하는 기자의 반문에 비서실 직원은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출근 안 하셨습니다.”

기자와 비서실 직원의 같은 질문 같은 답변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내용은 같았지만 기자의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비서실 직원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비서실 직원은 못 살겠다는 듯이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에 기자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날 아침부터 이른바 ‘뻗치기’를 시작했다.

 

꽃무릇집단
꽃무릇집단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총책임자를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기자의 결연한 의지, 라기보다 차라리 분노는 깊었다. 하지만 기자는 총책임자라는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는 몰랐다. 때문에 온갖 기이한 기술을 개발해야만 했다. 기자가 주목한 것은 총책임자의 집무실이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총책임자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돼 있었다. 기자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첫날은 실패하고, 다음 날도 실패하고,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잡았다. 퇴근 시간이었다. 전용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멈추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대로 쭉 내려왔다. 그리고 한 남자가 내렸다. 한눈에 척 봐도 총책임자임이 분명했다. 관록이 충분하게 붙은 공무원은 걸음걸이와 손짓 등 태도에서 그 직급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총책임자님?”

기자는 뒤를 바싹 따라가며 소리 높여 불렀다. 그러자 왜? 하고 반문이라도 하는 투로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기자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총책임자는 오른손을 번쩍 들고 훠이, 훠이, 하고 새라도 쫒듯이 휘둘러대면서 빠르게, 빠르게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기자는 총책임자의 옆으로 바싹 붙어서며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 관저 수의계약과 관련해서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뭐, 실무 과장을 찾아가서 알아보세요. 저는 모릅니다. 안다 해도 답변할 의무가 없어요.”

기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열 번 이상의 질문이 나왔고, 총책임자는 담변의 의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어느 순간 총책임자의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보폭도 커졌다. 때를 같이 해서 자동차 한 대가 스르르 굴러왔다. 자동차가 멈추고, 운전석에서 남자 한 명이 튀어나오고, 총책임자가 운전석으로 재빨리 올라타고, 기자의 앞을 가로막은 남자가 당신 뭐야 하고 윽박지르기 시작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렇게 총책임자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는 하늘을 향해 허허, 웃기를 한참이나 했을 뿐, 자기 앞을 가로막은 남자에게는 말 한 마디 붙이지 않고 그날은 일단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여기저기 온갖 부처의 실무 담당자를 찾아가서 질문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 공사는 왜 공개경쟁 입찰 방식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처리했는지, 저 공사는 왜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취하면서 공고를 낸 지 불과 세 시간여 만에 벼락처럼 계약을 체결해 버렸는지,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 초대한 내빈 명단은 왜 없는지, 파기했다던 명단이 나돌아 다니는 까닭은 또 무엇인지, 명단 자체가 대통령 기록물법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는지, 등등 기자의 질문은 끝이 없었고, 기자의 질문을 맞받아치지 않고, 또는 못 하고 우회로를 통해 달아나고자 하는 공무원들의 안타까운 노력 또한 끝없이 반복되었다.

잡히지 않는 술래잡기였다. 찾아낼 수 없는 숨바꼭질이었다. 계산을 정밀하게 해보자면 양쪽 다 무의미한 열정이었다. 생산성은 영점 일도 없고, 낭비만 잡히는 노력이었다. 안 해도 될 일이었고,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무의미한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을 열심히 찾아서 보고 있는 나 또한 생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터무니없는 수렁에 빠지고 말았는가?

 

멀리서
멀리서 본 꽃무릇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여름 한철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우리 집 마당 도처에서 꽃무릇이 쑥쑥 올라오는 모습을 며칠 전에 문득 발견하고서야 그것을 알았다. 그렇다. 꽃무릇이 꽃대를 쑥쑥 밀어 올리면 여름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안다.

무척이나 당당하게, 씩씩하게, 기운 생동하게 땅을 밀고 쑥 올라오는 꽃무릇, 이 녀석의 생김새와 기세는 완전 독보적이어서 그 어떤 꽃과도 비교를 불허한다. 이파리 한 장 없이 꽃대만 갑자기 흙을 밀고 쑥 올라와서 금방 활짝 피어나는 것이 마치 갑옷도 투구도 없이 맨주먹으로 전장에 나타나서 이놈들, 하고 호령하는 무적의 장수와도 같다.

만개했을 때의 꽃 모양은 수백 개의 화살을 좌우사방으로 동시에 쏘아 보내는 것만 같은데 이 세상 그 어떤 악귀라도 다 쓰러트릴 것만 같다. 게다가 색깔마저 붉디붉은 것이 글쎄, 이런 붉음을 무슨 기호로 표기해야 하나, 다홍인가 하면 다홍은 아닌 것 같고, 선홍인가 하면 선홍도 아니고, 진홍이라 하기에도 뭔가 석연찮음이 남는, 하여튼 엄청나게 자극적으로 빨갛다. 아니 새빨갛다.

이 새빨간 꽃을 넋 놓고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홀연 거짓말이 생각나면서 정신이 확 돌아온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특히 강조하고자 할 때면 ‘새빨간’을 붙여서 쓸까. 언제부터, 무엇이 계기가 돼서 그런 언어습관이 생긴 걸까. 금방 알 것도 같고, 이미 알고 있는 것도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모르겠다.

별난 기억으로 각인돼 있는 얼굴이 하나 있긴 하다. ‘새빨간 거짓말’, 하면 자동으로 그냥 떠올라오는 얼굴, 나중에 결국은 자기 재산으로 밝혀진 재산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기며 썼던 그 말, “이거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라고 마치 피를 토하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박수갈채를 받아내고,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던 남자, 국가를 개인의 수익창출 창구로 파악한 까닭에 결국은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남자.

그 남자를 생각하노라니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 그 대통령 시절에도 공무원들은 지금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날마다 곤혹스러워 했을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인사권자가 거짓말을 너무 잘하면 공무원들이 괴로워진다는 거. 그래서 불쌍해 보인다는 거.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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