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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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나는 지난 10년간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라든가 절약을 위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귀찮아서였으니까. 딱히 옷을 예쁘게 입는 것을 싫어한 것도 아니고 남의 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쇼핑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서 간 옷가게에 가고 겨우 고른 옷들을 입어 보고 다시 벗고를 몇 번 하면 그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다. 그래서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꼭 필요한 옷을 한꺼번에 사곤 했다. 그렇게 한 번 옷을 사 놓으면 이제 한동안은 쇼핑을 안 해도 되겠지 하며 안도했었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내 일상 전반을 쭉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매일 하루 종일 입고 있는 것이 옷이고 그렇다면 음식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부분인데 나는 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기회에 옷에 대한 나의 관심을 좀 높여보기로 했다.

먼저 나는 스마트폰에 온라인 패션몰 앱을 몇 개 다운로드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온라인몰은 공간의 제약이 없다보니 엄청나게 많은 양의 다양한 옷들을 팔고 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옷이 있었다니, 그곳은 내게는 완전히 신세계였다. 지금까지 바지라면 긴 바지, 짧은 바지, 청바지, 면바지, 추리닝 바지 등 밖에 몰랐던 나는 온라인상에서 슬랙스, 원턱 혹은 투턱 바지, 치노팬츠, 버뮤다팬츠 등 온갖 바지들의 이름들과 그 옷들을 입는 방법을 배웠다. 온라인 쇼핑몰의 또 다른 장점은 많은 옷을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상품과 모델 이미지를 보면서 나는 내 취향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보다 보니 사고 싶은 옷도 조금씩 생겼다. 나는 부담이 되지 않는 저렴한 옷부터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다 할인에 혹하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엉뚱한 옷을 사버리기도 했다. 반대로 때로는 좋은 옷을 ‘득템’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쇼핑의 기술을 늘려갔고 옷장에는 새로운 옷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한편으로 나는 도서관에 가서 옷에 관한 실용서들을 긁어모았다. 사실 요즘은 온라인상에서 검색만 하면 옷에 대한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도서관을 찾은 것은 나 같은 심각한 옷무식자, 일명 ‘패알못’에게는 옷입기와 패션에 대한 기본 개념들을 머릿속에 어느 정도는 넣어두는 일이 필요하겠다 싶어서였다. 내가 모은 책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옷입기, 또 하나는 옷정리에 대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적절한 옷을 맵시있게 입는 것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 전후의 다양한 준비작업과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맞는 옷을 사고, 입은 후에는 세탁과 건조를 마치고, 접거나 옷걸이에 걸어 옷을 보관하고, 그것을 다시 꺼내 손질한 후 입는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집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 시스템이었다. 옷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그 옷을 기분 좋게 입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이어지는 세탁과 관리와 보관이라는 지속적인 사이클 속에 하나의 과제를 더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사이클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구입한 옷의 성격을 알아야 하고 적당한 세제 선택과 건조 방법 등 필요한 온갖 기술도 익혀야 한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별생각 없이 무신경하게 그저 집에서 배운 대로 해왔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옷에 대한 나의 오랜 무지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리를 못해 마구잡이로 걸거나 쌓아놓은 옷들과 커다란 비닐봉지에 쑤셔 넣어 올려둔 지난 계절의 옷들 때문에 붙박이장 속 행거가 쿵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린 것이다. 달려가 보니 무너진 행거 밑에는 오래된 원피스들이 그대로 깔려 뭉개져 있었다. 몇 년 전 남자친구 부모님을 뵈러 갈 때 급하게 구입해 몇 번 입지도 않은 옷들이었다. 구겨져버린 원피스들을 보며 나는 내가 매일 입는 옷에 대해서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느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솔직히 나는 내 옷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옷을 입을 때 이 옷 저 옷 꺼내 보다가 다 흐트러진 옷장은 그 상태로 며칠씩 방치되곤 했다. 때로 날을 잡아 기껏 정리를 해도 어느샌가 다시 지저분한 모습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혼란을 내가 수십 년을 반복해왔다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망이 된 옷장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일단 나는 급하게 인터넷에서 옷수납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곤란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옷을 상품으로 다루는 의류업계 종사자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결국 그 옷의 주인이 되는 일반인인 우리들조차 왜 쇼핑과 옷입기를 무의식적으로 세탁과 옷정리와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었을까? 쇼핑과 옷입기는 패션이고 심지어는 예술이지만 세탁과 정리는 그저 귀찮고 고단한 집안일이라는 생각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현실에서 쇼핑의 결과는 예쁜 옷차림만이 아니다. 옷을 살 때 나는 옷의 색깔과 핏이 내게 어울리는지를 주로 보았지만 사실 그 옷을 계속 잘 입으려면 세탁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그 옷을 다른 옷과 맞춰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나의 삶에서 옷입기가 세탁과 수납의 문제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것은 패션이라는 이름만을 남기며 비현실적인 꿈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꿈이 평소 나의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해 주는 빨래 같은 작업을 ‘시간만 잡아먹을 뿐 없으면 좋을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옷의 현실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기에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게 현실에서 멀어지면 나는 자기다움을 잃게 되니 정신적으로도 건강치 않다. 나도 오랫동안 예쁜 옷을 입은 나라는 환상과 일상의 옷더미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옷을 사는 일이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이쯤 되니 옷을 구입하는 일은 거의 거대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프로듀싱하는 작업의 일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삶의 형태라는 프로젝트 말이다. 나는 이번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세탁과 수납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라는 한계가 옷쇼핑에 주는 제한이 실은 내 삶을 튼튼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제한은 나를 고민하게 하고 그 고민이 남과는 다른 나 다운 삶의 방식을 이뤄가게 만든다. 나는 행거가 무너진 내 옷장을 삶의 방식을 새로이 하는 시작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너진 행거는 고맙게도 손재주 좋은 남동생이 와서 튼튼하게 고쳐주었다. 하지만 나는 가진 옷의 수를 한 번에 대폭 줄이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옷의 양이 아니라 옷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아무튼 매일 옷을 입을 것이다. 죽기 전까지 옷과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옷 입는 생활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자신에 대한 이해, 옷과 패션산업의 성격에 대한 파악, 그리고 나의 현실적 삶에 맞는 세탁과 수납 방법에 대한 연구도 포함된다. 그 모든 것들을 배워 결국 내 일상에 녹여내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옷을 입는 생활이 더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 될 때까지 나는 즐겁게 이 과정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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