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커피·빵 등 가격 인상 불가피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낙농가와 유업체 간 협상 결렬에 따라 원유값 결정이 10월 말로 미뤄졌다. 인상폭과 적용 시점을 두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다만 ‘원유값을 올려야 한다’는 점에는 양측 모두 동의하고 있어, 재협상 이후엔 흰 우유를 비롯해 유제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위클리서울/ 디자인 이주리 기자

시한 내 합의 불발…흰 우유 얼마나 오를까

원유는 젖소가 생산한 정제하지 않은 우유 원료를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낙농가와 유업체들은 6월 경 원유 가격 협상에 돌입해 8월부터는 새 가격을 정한다. 하지만 올해는 가격 결정 체계를 기존 ‘생산비 연동제’에서 ‘용도별 차등제’로 개편하기로 하며 일정이 미뤄졌다.

생산비 연동제는 원유 가격을 낙농가의 생산비 증감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으로 2013년 도입됐다. 원유를 만들기 위해 드는 젖소 사료와 연료 등 생산비가 오르면 이에 ±10% 범위에서만 원유 가격을 정할 수 있는 제도다.

대부분의 식품들은 수요나 기후, 국제 시세 등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지만, 원유는 생산비 연동제로 인해 실제 우유 소비량과 상관없이 가격이 유지되거나 더 오르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우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낙농제도 개편안을 1년 넘게 추진해왔다.

당시 낙농가 단체는 농가 소득이 줄어든다며 개편 추진을 강하게 반대했다. 낙농육우협회와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는 농식품부와 낙농진흥회에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법적 다툼도 불사하겠다며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지난 9월 16일 개편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에 내년부터는 용도별 차등제로 원유 가격이 결정된다. 새 제도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누고 음용유 가격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을 더 낮게 책정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유업체에서 농가에게 가공유를 더 싼 값에 사들여 유가공 제품 가격을 낮추고, 값싼 수입산과의 경쟁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는 우유 자급률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 결정 체계가 용도별 차등제로 변경될 예정이나, 올해까지는 현행 생산비 연동제가 적용된다. 이에 낙농가와 유업체들은 새 원유값 인상폭과 시기를 협상하고 있다. 애당초 양측이 합의한 가격 결정 시한은 10월 15일. 그러나 원유 가격 결정 체계를 개편한 지 1달 만에 이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10월 말로 일정을 미뤘다.

양측은 인상폭과 소급 적용 시기 등으로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농가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 유업체는 우유 소비량 감소에 따라 인상폭을 낮추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올해까지 적용되는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우유 가격이 500원 가량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원유 1리터 당 21원이 올랐을 때, 흰 우유 가격은 약 10배인 200원이 올랐다는 점을 고려한 전망이다.

지난 2년간 생산비는 리터 당 52원 올랐다. 여기에 ±10%를 감안하면 새 원유값은 리터 당 47~58원 사이에서 인상폭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흰 우유에 적용하면 약 500원이 인상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흰우유 3000원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동시에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원유 가격 인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원유 가격 인상폭이 우유값 인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원유 가격이 오르더라도 흰 우유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유업체에 요청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상태다.

지난 9월 19일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우유 가격이 반드시 원유 가격의 약 10배 만큼 오르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유 가격이 원유 가격 인상분 그대로 오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업체에 가격과 관련해 지시할 순 없다”면서도 “다른 식품의 원료가 되는 흰 우유 가격은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올리더라도 물가에 영향이 적은 가공유 제품 가격을 조정하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속되는 가격 인상 속 ‘밀크플레이션’ 우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 코로나19로 영향 등으로 인해 최근 식품·외식 품목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여기에 원유값까지 상승하면 우유를 원재료로 하고 있는 빵과 커피, 아이스크림, 빙수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인상돼 장바구니 물가에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서울·경기지역 400여개 유통업체에서 판매 중인 35개 생활필수품을 조사한 결과, 33개 제품이 1년 전보다 평균 10.4% 올랐다. 식용유(32.8%)와 밀가루(42.7%), 설탕(20.9%) 등 원재료가 되는 품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가격이 내려간 품목은 달걀과 고추장 두 개에 불과했다.

협의회는 “밀가루, 식용유, 설탕은 소비자에게 매우 기초가 되는 식재료”라며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외식 물가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품목”이라고 말했다. 실제 마요네즈(6.8%)의 경우 식용유 가격 상승 영향을, 햄(5.9%)은 국제 곡물 사료 가격 상승 영향을 각각 받았다.

식품업계는 최근 라면과 과자 등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오뚜기는 10월 10일부터 라면 가격을 평균 11% 올렸다. 이에 ‘진라면’은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 620원에서 715원으로, ‘진비빔면’은 970원에서 1070원으로 인상된다.

빙그레는 ‘야채타임’, ‘쟈키쟈키’ 등의 편의점 판매가격을 평균 13.3%, 삼양식품 ‘사또밥’, ‘짱구’, ‘뽀빠이’ 등을 평균 15.3% 올렸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은 지난 추석 이후부터 라면 브랜드 26개의 가격을 평균 11.3% 상향 조정했다. 인상 폭은 신라면 10.9%, 너구리 9.9%, 짜파게티 13.8% 등이다. 이에 신라면 한 봉지의 편의점 판매가격은 900원에서 1000원으로 변경됐다.

오리온도 지난 9월 15일부터 초코파이, 포카칩 등 16개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인상했다. 오리온의 가격 인상은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소맥·팜유·밀가루 등 원자재와 물류비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제품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며 “소비자가를 올리지 않으면 회사가 적자를 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오는 11월부터는 우유 가격도 조정된다. 원유값 제도 개편과 정부의 인상 자제 권유에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우윳값은 결국 오를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지난해 역시 원유 가격 인상 이후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이 주요 제품 가격을 올렸다. 올해는 생산비 인상 폭이 큰 만큼 우유 가격도 크게 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원유나 우유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치즈, 버터, 빵, 커피,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다. 이미 서울우유는 10월 초 대표 제품인 체다치즈 200g, 400g의 출고가를 약 20% 인상했다. 이번 가격 인상은 치즈의 원료로 쓰는 국제치즈 시세 급등 및 원·달러 환율 상승 등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제품의 주요 원재료가 되는 국제 원료치즈 시세가 폭등했고 환율 급등, 부자재 가격 등의 상승에 따라 불가피하게 인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양유업은 지난 3~4월 발효유와 치즈 제품의 출고가를 인상한 바 있다. 이는 지난해 21원 오른 원유 가격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불가리스’와 ‘떠먹는 불가리스’, ‘불가리스 위쎈’ 등은 3.5%, 치즈 제품 ‘드빈치 자연방목 체다 슬라이스’는 9.9%, ‘드빈치 뼈가튼튼 고칼슘’ 제품은 9.8% 상향 조정됐다. 남양유업이 치즈 가격을 올리는 것은 약 15년 만의 일이었다.

매일유업도 지난 6월 가공유 제품 가격을 한차례 인상한 바 있다. ‘소화가 잘되는 우유’ 가공유 3종의 출고가는 4.9% 올라 소비자가격은 기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변경됐다. ‘우유속에’ 시리즈 3종 출고가 역시 10% 인상돼 소비자가격이 1500원에서 1650원으로 인상됐다.

한편, ‘흰 우유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대해 유업체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우유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원유뿐만 아니라 환율과 원부자재, 운송비, 포장비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며 수익성 또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매일유업은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약 28.2% 줄어든 30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남양유업은 올 상반기 42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유업체 관계자는 “원유를 제외하더라도 각종 제반 비용 인상으로 소비자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요청을 감안해 원가절감에 대해서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우유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