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크레이지(The Crazies, 2010)’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엄청난 화염 속에 타 들어가고 있는 저택. 한 남자가 불에 타는 집을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웃들은 아직 불 속에 갇혀있는 엄마와 아들을 구출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화를 내며 울부짖고 있다. 도대체 이 마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2010년도에 제작된 영화 ‘크레이지(The Crazies, 2010)’는 사스, 신종플루, 코로나19 등 계속되는 바이러스 팬데믹을 겪기 전의 우리가 얼마나 바이러스에 무지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교과서적인 영화다. 영화 속 배우들은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마스크’를 쓴다던가 감염자와 격리한다던가 하는 ‘상식’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활보하고 감염자와 동행하며 끝까지 함께 한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바이러스의 증세는 매우 특이하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람은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와 같이 변한다. 하지만 그저 미쳐 날뛰는 개와는 달리 인간이기에 섬뜩한 냉정함을 동반한 ‘광기’를 보인다. 그리고 그 광기는 살인으로 이어진다.
 

영화 '크레이지'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시작된 방화 살인 사건

다시 영화 속 집이 불이 타기 전 이틀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이곳은 미국의 작고 한가로운 외곽 도시 ‘옥덴 마쉬’라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야구를 즐기고 주변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다. 여느 때처럼 야구경기가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마을 주민 한 명이 총을 들고 경기장에 난입하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진다. 보안관 데이비드(티모시 올리펀트 분)와 보안관보 러셀(조 앤더슨 분)도 펜스 밖에서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총을 들고 들어선 남자에게 “로리, 야구 시합 중이잖아요. 술 마셨나요?”라며 말을 걸어본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리’. 그는 과거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지금은 술을 끊은 상태다. 평상시의 남자라면 데이비드의 말을 들을 법한데 이상하게 로리는 총을 데이비드 얼굴에 겨눈다. 일촉즉발의 상황. 데이비드는 위급상황으로 인지하고 로리를 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로리의 돌발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다. 혹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일까? 하지만 다음날 그의 알콜 농도는 ‘0’였다. 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사망한 로리에게서는 이러한 사고를 일으킬만한 별다른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 코피를 흘리며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는 점 외에는 말이다.

로리가 사망한 후 마을에는 또 다른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마을 주민 중 남편 빌(브렛 릭케비 분)이 아내 디어드라(크리스티 린 스미스 분)와 아들을 옷장에 가둔 채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빌은 이전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불러도 잘 듣지 못했고 멍하니 있었다. 데이비드의 아내 주디 더튼(라다 미첼 분)은 마을의 의사다. 빌의 이상한 증세에 가정방문을 해서 빌을 진단하지만 피곤하다는 것 외에는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주디는 빌의 아내에게 남편이 더 상태가 안 좋아지면 큰 마을에 가서 CT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한다. 그날 밤 빌의 아내는 남편이 밤새 창고에서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느낀 아내는 창고로 간다. 그러나 트랙터의 시동만 켜져 있고 창고에는 아무도 없다. 이때 갑자기 들리는 아들의 비명 소리. 디어드라가 집으로 들어가니 아들은 아빠가 칼을 들고 돌아다닌다며 덜덜 떤다. 디어드라는 남편을 피해 아들과 함께 옷장에 숨는다. 그러자 빌은 아내와 아들이 옷장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잠가 못 나오게 한 후 불을 지른다. 경찰서에는 화재 신고가 접수되고 데이비드가 도착하자 빌의 집은 이미 불타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빌은 태연하게 자신의 불타는 집을 바라보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갑자기 정신병자라도 된 것일까. 매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던 작고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서 48시간 만에 무려 3명이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 이 마을에는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크레이지
영화 '크레이지'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갑작스러운 살인마의 공격...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바이러스

데이비드는 보안관보 러셀(조 앤더슨)과 함께 사건을 조사하다가 한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생각해보면 마을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호수에 떨어져 죽은 파일럿. 그가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호수에 빠져 죽은 파일럿의 상태를 의심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 호수의 물을 상수로 이용하면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호수의 물은 제일 문제를 일으키고 죽은 로리의 집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증은 있지만 당장 물을 끊기란 불가능했다. 호수의 물이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서장은 물을 중단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한다. 이에 데이비드는 독단적으로 마을의 수도 공급을 끊는다. 그리고 그날 밤 갑자기 마을의 전기와 통신이 두절되고 마을 주민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게 된다. 이들이 끌려간 곳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의료 현장이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 방호복을 입고 얼굴은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마을 주민들을 맞이했다. 그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아니 묶여있었다.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열을 재고 데이비드와 주드를 분리시켰다. 발열이 감지된 주드는 데이비드와 분리되어 이동됐다. 이쯤 되면 주인공들이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전염병이 생긴 것이다. 이 와중에 주드는 설상가상으로 삼지창으로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 살인마까지 만나게 된다. 다행히 데이비드와 러셀이 주드를 구하러 온다. 이들은 ‘퀸 빌즈 휴게소’로 향한다. 데이비드는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 퀸 빌즈 휴게소에 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들었다.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지금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미친 상황이 무엇인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결국 이 모든 상황이 생화학무기를 싣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행기에는 뇌신경을 교란시켜 사람이 미치게 만드는 생화학 바이러스가 담긴 무기가 실려 있었고 비행기가 호수로 추락하면서 호수가 오염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이기로 한 것이다. 이때 이미 감염자가 된 러셀이 군인들의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끌기로 한다. 감염이 되었지만 러셀은 증세가 더 심각해질 때까지 함께 동행하자고 한다.

이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다. 마스크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감염자와 끝까지 동행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러셀의 작전이 성공하고 데이비드와 주드는 필사적으로 인근 도시로 탈출한다. 이렇게 해피엔딩인가 싶은 순간도 잠시. 영화는 이들이 포착된 위성 화면을 보여주면서 뉴스 방송으로 연결된다. 뉴스 방송 앵커는 “큰 불덩이가 하늘로 치솟았다”며 “이 때문에 인근 휴게소가 불에 탔고 옆 마을도 봉쇄되었다”라고 전한다. 그들이 향한 옆 마을까지도 봉쇄 예정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영화 속 정부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그저 도시를 봉쇄와 은폐만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자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니 이 영화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저 막기만 해서는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정부를 둔 국가들이었다면, 그리고 전 세계 유행이 되는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SNS가 활발해 모든 지구촌 소식이 바로 전해지는 디지털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 속 상황은 실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코로나 19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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