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느끼며
가을을 느끼며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2.10.26 0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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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정다은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맑고 청명한 가을의 하늘이 흐르고 있다. 어느새....

머리 꼭대기를 향해 내리꽂던 한 여름의 태양이 힘겨웠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계절은 또 바뀌어 간다. 희한하게도 지난 계절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오직 더웠다는 맹목적인 사실만 뇌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태어나서 철이 들고 계절의 순환을 수 십 번씩 겪으며 살다 보니 이제는 특별히 기억할 것도 남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시간들이고 세월들인가 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계절은 서늘한 바람을 동반하고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이 계절을 놓칠새라 요즘 지역마다 축제와 행사가 한창이다. 2년 간 기다리고 참아 온 설움이 폭발한 것 같다. 각 동마다 비슷한 이름과 성격을 지닌 축제들이 주말마다 펼쳐지고 있는데 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직무 단체나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이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다. 초고령사회를 향해 고속 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지극히 당연한 장면인지도 모르겠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여생을 즐기는 모습은 머지않은 미래에 나에게도 닥칠 현실이다.

나는 비교적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흡연도 하지 않고 채식위주의 식습관을 즐겨하며 무엇보다 면역력 강한 체질을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도 한 몫 하고 있는 듯하다.

어렸을 때에도 크게 병치레를 하지 않았으며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았다. 이맘때쯤이면 주변 지인들은 독감 예방 접종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여태껏 독감 예방주사도 맞은 적이 없다.

이는 주사바늘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성향도 있고 무엇보다 밥이 온 우주 최고의 보양식임을 강조하며 애초에 병원갈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는 지론을 펼친 엄마의 영향도 있을 터이다. 국민의 절반을 거쳐 갔다는 코로나로부터 아직은 무사하니 무쇠같은 이 몸뚱이가 감사하기는 하다.

이렇듯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 온 내게도 평생을 따라 다닌 지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술병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미친듯이 조우하게 된 음주문화는 즐거우나 슬프거나 시와 때를 가리지 않았다.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던 나의 청춘시절은 남자에 끌려 연애를 하는 것 보다 음주를 더 사랑하고 갈망하였다. 그러나 주도(酒道)에 무식했던 나머지 간혹 술독에 빠진 다음 날은 전날의 기억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유체가 이탈이 된 상태로 온종일을 견디며 반 강제로 다이어트를 감행해야 했다. 감기를 비롯한 잔병치레 대신 간헐적 술병을 앓은 셈이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간헐적이라고는 하나 술병이 더 큰 병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도 이제는 음주에 슬슬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식사량이 준다고 하던데 나는 주량도 함께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삶을 지속해 오긴 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나이에 근접하다 보니 슬슬 건강이 걱정되고 실제로 몸뚱이 이곳저곳에 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간혹 할머니들이 집안일을 하거나 물건을 집으려고 할 때면 다리를 접지 않고 엉덩이를 하늘 향해 치켜세우는 몹시 볼썽사나운 자세를 유지하곤 한다. 할머니들의 그러한 자세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리를 조금만 접으면 굳이 엉덩이가 하늘을 향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왜냐하면 어느새 나의 엉덩이도 하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싱크대 하부장에 있는 조리도구를 꺼내려고 할 때였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불편해서 다리를 접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하늘 향해 치켜세우게 되었다. 아마 예전에 목격했던 할머니도 무릎이 불편했을 터이다.

잠든 시간 동안 나의 의식은 무력화되고 구들장 틈을 스미고 올라오는 연탄가스에 의식이 나도 모르게 점령당하는 것처럼 아직은 건강하다고 믿었던 몸뚱이가 서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앉으면 앉은 다리가 불편하고 서 있으면 서 있는 다리가 불편하다. 장시간 운전을 하고 나면 재대로 걷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동작을 설명하기 위해서 허리를 뒤로 젖히다가 무릎이 시큰거림을 느끼고 멈춰야 했다. 독감은 지나쳐도 간헐적 술병에 힘들었던 때가 그립다. 무릎 통증은 절망으로 밀려나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몸뚱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지는 좀 되었다. 어깨가 결리는 증상부터 시작해서 두통이 왔다가 노안으로 연결될 때도 그런가보다 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 이상 스스로에게 특히 무디고 미련하여 어디가 아파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말겠지 라는 밑도 끝도 없는 무심함으로 병원도 잘 찾지 않았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주 최강 보약인 밥만 잘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며 버텼다. 그런데 무릎이 불편하고부터 알게 되었다. 그냥 괜찮아지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과연 건강한 몸뚱이로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지난 주말에는 우리 동네 축제에 다녀왔다. 남편이 우리 동(洞)의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서열이 막내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부하직원을 거느린 엄근진 상사이지만 여기서는 어르신들을 보필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막내의 신분이란다. 상상이 안 된다.

우리 동네 축제는 아이를 동반한 부모님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준비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시설과 부스를 운영하는 등 알찬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젊은 세대와 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게임을 통해 세대의 통합이 이루어진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르신들의 비중이 많았고 행사 보조를 하는 대부분의 봉사원들도 어르신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의 날들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다.

100세 시대도 이제는 옛말이라고 한다.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욕심인가.

나는 100세도 버겁고 영생은 더군다나 꿈도 꾸지 않는다. 초고령사회의 일원이 될 것 같은 머지않은 미래에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리며 간헐적 술병을 앓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나의 미래에 다시 맞이하게 될 가을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맑고 푸르른 하늘과 그 하늘 사이를 가로 지르는 바람을 느끼고 그 바람결에 흩날리는 낙엽들의 바스락거림을 감사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내일은 당장에 병원부터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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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2022-10-27 22:13:38
면역력 강한 체질을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 독감 예방 주사도 맞지 않는 건강 체질, 밥(정확히는 채소)이 우주 최고의 보양식, 무쇠같은 몸뚱이, 술을 좋아하는 천성. 오늘은 참 공감 요소가 많네요. 그리고 100세는 버겁다는 말씀보다 소박하게 150세 정도를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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