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풍납 도깨비시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천호동과 풍납동 사이.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이 지나는 천호역에서 내리면 가장 가깝지만 진짜 ‘호적’은 ‘풍납동’인 시장, 풍납 시장은 60여 년 한 곳에 뿌리 내린 전통 시장이다. 그런데 풍납 시장은 보통 평범한 시장이 아니다. 풍납 시장은 도깨비시장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바로 과거 풍납 시장은 상인들이 낮에 좌판을 깔고 영업을 하다가 밤이 되면 사라지는 도깨비시장 형태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의 풍납 시장은 천호동 상업지구와 연결되어 화려한 밤을 책임지는 진정한 밤의 도깨비시장이 되었다.
 

풍납시장을 상징하는 빨간 풍차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낮에는 좌판으로 밤에는 사라지는 도깨비시장

풍납시장은 송파구 주민들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며 오랜 시장 자리를 지켜왔다. 한국 관광공사에 따르면 풍납 시장은 천호동 로데오 거리와 거리가 가까워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젊은이들의 왕래가 빈번하다고 한다. 다양한 농수산물과 먹거리, 볼거리도 많다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내 눈으로 한번 확인해보자.

어떻게 가야 할까? 이름은 풍납 시장이지만 신기하게도 천호역과 매우 가깝다. 10번 출구로 나서니 건너편 현대백화점 천호점이 보인다. 시장은 현대백화점을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지하철 5, 8호선 천호역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차량으로 가려고 하면 풍납1동과 풍납2동 사이 ‘풍납동 152-81(바람드리길 50)’로 가면 된다. 역에서 내려 코너를 돌면 맞은편에는 풍차가 반긴다. 갑자기 시장 앞에 무슨 풍차냐고? 풍납 시장은 지난 몇 년간 재개발 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시장의 안팎을 손질했다. 풍차는 풍납 시장을 대표하는 현관과 같은 존재로 풍납 시장을 들어서는 모든 이들을 반긴다. ‘풍납’이라는 지명 자체가 바람이 들어오는 길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빨간 풍차가 들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바뀐 지명도 ‘바람드리길’다. 풍차의 이름은 ‘바람드리골 풍차’라고 이름 붙여졌다. 풍차 조형물 앞에는 “저는 풍납동의 상징으로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라는 글이 달려 있다. 이를 부흥하듯 사람들은 돌아가는 풍차를 배경 삼아 삼삼오오 사진을 찍기도 한다.

 

풍납전통시장
풍납전통시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풍납 도깨비 시장답게 야간에도 활기차다.
풍납 도깨비 시장답게 야간에도 활기차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풍납 시장에는 바로 앞에 나들이하기 적합한 풍납 근린공원과 풍납토성도 있기 때문에 산책 삼아 나왔다가 요기도 하고 가볍게 장을 보고 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를 두고 “꿩 먹고 알 먹기”라는 것이겠지. 시장 앞에 위치한 풍납토성은 자그마한 언덕 크기의 산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한성 백제를 둘러쌓고 있던 성벽이다. 정식 명칭은 풍납동 토성. 지난 2011년 전에는 광주 풍납리 토성이라 불리었다. 16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이 백제의 유적지는 1997년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500년 동안 수도를 한성을 두고 있었던 백제의 웅장하고도 화려했던 모습이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백제는 한반도의 고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해양 국가였다. 특히 한성 백제라는 말은 백제 700년 역사 중 500년을 한성에 수도를 두었던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고구려 장수왕에게 패하며 수도를 빼앗기고 공주로 쫓겨난다. 그 후 한성백제의 얼이 담겨있던 위례성은 폐허가 되고 땅 속에서 잊혀 갔다. 그러던 중 1997년 한 사학자에 의해 수백 년 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한성 백제의 왕성이 발견된 것이다. 한 아파트 작업 현장에서 나온 것을 알아본 것이라 하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이후 풍납동은 유적 발굴로 인해 수십 년간 도시 개발이 중단되기도 했다. 아무튼 풍납 시장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곳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얼마 전에는 구에서 행사하는 야간 시장 행사를 했다. 이른바 ‘주민과 함께하는 송파 야시장’이다. 그날은 도깨비 시장이라는 명성답게 정말 도깨비들이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즐겁고 놀다간 것처럼 시장 앞은 각종 플리마켓 상품들과 푸드트럭 먹거리들로 오랜만에 흥이 났다. 시장 근처에는 며칠 지난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었다. 풍차를 지나 공원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사거리 광장에 우뚝 서 있는 ‘풍납 전통 시장’이라고 적혀있는 파란색 조형물을 맞이하게 된다. 본격적인 시장의 시작을 알리는 간판이다.
 

구비구비 길목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구비구비 길목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있다 (1)
구비구비 길목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시장 안 백제의 화려한 유산이 담긴 문화재 구경은 보너스

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상점이다. 겨울이 오는 시점이라 일몰 시각이 빨라졌다. 해가 뉘엿뉘엿 지더니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시장에 들어서니 어느새 컴컴한 밤이다. 그런데 밤이 되어도 방문객들은 여전하다. 싱싱한 채소들과 과일을 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온 주민들과 도보로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주민들이 다양하게 있다.

시장은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삼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북쪽으로 더 많이 이어진다. 시장 초입에는 다양한 어묵을 판매하는 상점이 눈에 띈다. 고추, 날치, 깻잎, 해물 등 입맛 따라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즉석 어묵이 오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좀 더 위로 올라오면 ‘잉어빵 2개 천원’이라고 적혀있는 상점도 눈에 확 들어온다. 이래서 겨울에는 반드시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다녀야 한다. 뜨끈한 어묵 국물과 함께라면 단돈 천원으로 배가 뜨뜻해질 것 같다.

 

고소한 참기름 팔아요
고소한 참기름 팔아요.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각종 전통과자들이 가득, 다양한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상점
각종 전통과자들이 가득, 다양한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상점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갓볶은 참깨와 참기름이 고소한 내음을 풍긴다. 전통시장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수제’ 제품들이다. 청국장, 콩국물, 시골 재래식 손두부에 직접 만든 식혜까지 전통시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재래 시장 상품들이 인기다. 풍납 시장에서 무려 40여 년간 두부를 만들어왔다는 부부 상점도 있다. 이들은 어머니가 만들던 천연간수 두부를 만들며 영업을 하고 있다. 고소한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떡을 판매하는 떡집과 반찬가게 등도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색깔 선명한 축산물을 다루는 집들이 많다. 국내산 돼지고기, 한우를 크게 써 붙인 간판 아래 선명한 육질을 자랑하는 고기들이 즐비하다. 출출한 저녁 시간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바비큐 집,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위를 자극하는 만둣집도 저녁 장사로 분주하다. 한과, 강정, 손 약과, 북어포에 대추까지 각종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상점도 정겹다. 음식뿐이랴. 칫솔, 치약, 때 비누, 매니큐어까지 균일과 1,000원을 적은 저렴한 공산품 가게도 전통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재밌는 광경이다.

 

무엇보다 색깔 선명한 축산물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손팻말이 정겹다
손팻말이 정겹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싱싱한 해산물이 잔뜩
싱싱한 해산물이 잔뜩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이처럼 저렴하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전통 시장은 장점도 많지만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 늘 문제다. 주차장도 없고 카드도 잘 안 받고 현금이 아니면 불친절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풍납 시장은 그럴 염려가 없다. 제로 페이, 모바일 온누리 상품권이 원활히 통용되고 카드결제도 환영이다. 유료 주차장이지만 시장 안에 크게 주차장이 있어 두 손 무겁게 집에 갈 걱정 또한 하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코로나 19가 다소 수그러들면서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이지만 걱정거리도 있다. 풍납동은 대거 발견된 백제 문화재로 인해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납동 토성 내 지역은 과거 서울 내 고질적인 저지대 침수지역으로 손꼽힌다. 침수에 취약한 반지하 비율도 높은 편이다. 직접 가보니 토성 근처에는 재개발을 걱정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한강변 풍납동 재개발 추진 주민 모임’이라는 플랫카드가 눈에 띈다.

 

깨끗하고 넓은 주차장 시설이 들어서있다.
깨끗하고 넓은 주차장 시설이 들어서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수년간 풍납 시장은 재개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올해는 풍납동 일대가 문화재 발굴로 인한 개발 제한이 풀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개발이 지연되어 주거 문제가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면 일석이조다. 하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일이 진행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머리를 맞대어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어 보다 시장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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