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준 실장, 국감 전날 사퇴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국가정보원 2인자인 조상준 전 기조실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일각에선 ‘내부 갈등설’ 등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정원은 “건강 문제”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국정감사 전날 국정원장 보고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 사의를 표명한 이례적 상황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나오지 않으면서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본인의 건강 문제 등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며 “보도된 내부 인사 갈등설 등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갑작스럽게 불거진 이번 상황을 들여다봤다.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국정원의 공식 입장은 ‘건강 문제’다.

일신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게 공식 답변이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계속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나가는 것이 맞지 않겠다 해서 본인의 스타일을 수용한 것”이라며 “일신상의 이유라서 공개하기 조금 그렇다”고 말했다. 조 전 실장이 입원 중이라는 얘기도 일각에선 나온다.

하지만 조 전 실장의 갑작스런 사퇴 배경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국정원의 해명처럼 건강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20년 넘는 검사 생활에서 ‘특수통’으로 인정 받은 공직자가 국감 전날 사퇴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조 전 실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특히 조 전 실장이 사의를 김규현 국정원장이 아닌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표명한 것을 두고 내부 갈등설이 제기된다. 조 전 실장이 김 원장과 내부 인사 방안에 이견을 보이다가 조 전 실장이 건강 문제를 내세워 사의를 밝힌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 원장이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부 1급 직위와 상당수의 2급 직위가 공석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대통령 ‘최측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2, 3급 인사를 해야 하는데, 조 전 실장이 자신의 안을 청와대로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해외에 나갔다 온 원장이 보니 자기 생각대로 안 돼서 다시 올린 것”이라며 “대통령실에서 고심하다가 그래도 (국정원장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사 갈등설에 대해 김 원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에서는 정권에 따라 인사 물갈이가 심한 국정원 특성상 인사 불만으로 조 전 실장에 대한 투서가 접수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법적·도덕적 잣대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개인비위나 음주운전으로 사퇴했다는 추측도 여전하다.

하지만 국가정보원 2인자로도 꼽혔던 조 전 실장의 돌연 사퇴는 ‘의혹’만 무성하다. 지난 6월 초 조직과 인사, 예산을 관장하는 기조실장에 발탁된 지 4개월여만이다. 서울고검 차장검사 출신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라인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인데다, 국회 국정감사를 하루 앞두고 물러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조 전 실장은 국정감사 전날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곧바로 보고됐고, 김규현 국정원장에도 사의 표명 사실이 전달됐다. 이어 윤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재가했고, 결국 면직 처리됐다.

면직 처리에 따라 조 전 실장은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대상 국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사의를 표명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정확한 배경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국정원장과의 인사를 둘러싼 갈등설, 방위산업 관련 비리 연루설, 음주운전설, 건강이상설 등 미확인 루머들이 퍼졌다. 이와 관련, KBS는 조 전 실장이 핵심 보직인사안을 윤 대통령에 보고했으나 이후 김 원장 안대로 다시 뒤집혔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기도 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페이스북에 "국정원의 왕실장, 조상준 기조실장께서 국정감사 개시 직전 사의 표명했다는 TV 속보에 저도 깜놀"이라며 "인사 문제로 원장과 충돌한다는 등 풍문은 들었지만,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썼다.

사퇴 시점도 의혹을 키우는 분위기다. 공교롭게 국감 일정과 겹친 것인지, 국감을 염두에 둔 것인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직속상관인 국정원장을 건너뛰고 대통령실에 곧바로 사의를 표명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임면권자라는 원칙적인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직속상관에게 먼저 거취를 표명하는 게 통상적이지 않으냐는 점에서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장 패싱'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임면권자인 대통령에게 사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기에 패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임명했던 것도 대통령이고 면직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며 "따라서 대통령에게 의사를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패싱 논란'을 일축했다.

조 전 실장은 서울대 법대를 거쳐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대검 수사지휘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을 지냈다. '특수통' 검사로서 2006년 대검 중수부의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수사 때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2019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때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 관련 수사를 받는 김건희 여사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자신과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쌓아온 조 전 실장을 기용함으로써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관측이 나온 바 있지만 이번 사태로 일단 무산됐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국정원 인사는 결국 망사”

윤 대통령은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계속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나가는 것이 맞지 않겠다 해서 사의를 수용했다”며 “개인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후임 기조실장을 곧 임명하느냐는 물음에는 “원래 기조실장 후보도 있었고, 필요한 공직 후보자들에 대해 검증을 해놨기 때문에 업무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할 생각”이라고 했다. 후임 기조실장으로는 김남우(53·사법연수원 28기)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 전 기조실장의 사의 표명이 김 국정원장과의 인사 갈등이나 비위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 “사유는 일신상의 사유이기 때문에 더 이상 보탤 말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장의 손을 들어주니 조 실장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전날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조 전 실장의 사퇴를 두고 갖은 추측이 쏟아지는 가운데, '인사 알력설'을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박 전 원장은 "윤 대통령의 인사는 결국 망사였다. 국정원에서부터 참사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이 결정을 잘했다고 본다"며 "어떤 조직이든 문제가 있으면 측근보다는 상급자 의견을 일단 들어주고 조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각종 인사 문제로 몸살을 치러온 윤석열 정부에게 이번 조 전 실장의 갑작사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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