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못 버틴다” 사업종료·정리해고 예고
노조·낙농가 반발…집회 열고 “상생하라”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하루아침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가라는 통보가 떨어진다면 심정이 어떨까. 그 회사 한 곳 하고만 거래해왔는데 한 달 뒤, 돌연 회사 문을 닫겠다고 한다면. 바로 11월 30일 영업 종료를 선언한 ‘푸르밀’의 이야기다. 신동환 푸르밀 대표는 지난 10월 17일 메일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신 대표는 회사의 지속적인 적자를 버틸 수 없어 부득이하게 회사 문을 닫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직원들은 매각이 아닌 영업 종료를 선택한 회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44년간 운영돼온 푸르밀이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노동조합과 낙농가가 나서 상경 투쟁을 진행했다. 회사는 2차례 진행된 노조와의 교섭 끝에 매각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앞서 LG생활건강과 한차례 매각이 불발된 바 있어 재매각이 원활하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4년간 적자·매각 실패…결국 영업 종료 선택

푸르밀은 고(故)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넷째 동생 신준호 회장이 대표를 맡았던 회사다. 1978년 롯데그룹 산하 롯데유업으로 출발했다가 2007년 4월 그룹에서 분사해 2009년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다.

신 회장은 올해 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8년부터 그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가나초코우유’, ‘검은콩우유’, ‘비피더스’ 등이 대표 제품이다.

업계에 따르면 신 대표는 지난 10월 17일 전사 메일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 통지문을 발송했다. 기한은 11월 30일이다. 임직원들 입장에서는 약 한 달 뒤 회사가 사라지는 셈이다.

해당 메일에서 신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보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직원 여러분께 사업 종료를 전하게 돼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며 “당초 50일 전까지 해고 통보해야 하나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정리해고를 결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푸르밀은 2012년 매출 3000억원을 넘기도 했으나 최근 10년간 이익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신 대표가 취임한 2018년 이후부터는 적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18년 1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후 2019년 88억원, 2020년 113억원, 2021년 123억원 등의 영업손실을 냈다.

회사는 최근까지 LG생활건강과 매각을 논의하고 있었다. 당시 샴푸와 세제, 화장품 등을 주요 사업으로 운영하던 LG생활건강은 음료 및 단백질 시장 포트폴리오를 강화 차원에서 푸르밀 인수를 추진했었다. 그러나 지난 9월 결국 인수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공시를 통해 “음료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푸르밀 인수는 진행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수 불발 요인으로는 푸르밀의 지속적인 부진과 지난 8월 발생한 리콜 조치 등이 꼽힌다. 푸르밀은 지난 8월 21일 일부 제품에 실링(밀봉) 불량으로 누유가 확인됐다며 편의점 등에 납품한 가나초코우유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시행한 바 있다. 이후 열흘 뒤 검은콩우유를 비롯한 가공유 제품 6종을 회수 조치했다.

이에 푸르밀이 LG생활건강이 인수 의사를 철회하자 대안을 찾지 못해 결국 사업을 종료를 택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노조·낙농가 상경 집회 열고 ‘상생’ 요구

푸르밀 노동조합은 사업 종료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근로기준법상 50일 전까지 정리해고 통보를 하고 노조와 성실한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경영진이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푸르밀이 법인 청산이 아닌 사업 종료를 택한 것에 대해 “오너 일가가 추후 자산 매각을 진행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푸르밀 노조는 사업 종료 발표 이후 즉각 입장문을 발표하고 “오너 경영의 무능함으로 회사의 몰락을 전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정직원 360여명, 협력업체 50여명, 직송 농가들 25가구, 화물차 기사 100명등 가족들 포함 2000명이 넘는 식구들은 한 겨울에 죽으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오너 일가가 주먹구구식 경영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회사의 미래와 직원들의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는 제안과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대표이사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에 묵살되고 말았다”며 “경영에 관심이 없고 출근해서 개인 취미 생활에 매진하고 있는데 회사가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이어 “근로자들은 임금 삭감, 인원 감축 등 최대한 노력을 했으나 와중에도 회장은 100% 급여를 받아갔다”며 “회장은 퇴사하면서는 30억원이 넘는 퇴직금을 수령했으며 퇴사 후에도 매일 출근해 업무 지시 및 정리해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도 성명을 내고 “사측이 전 직원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하면서 법인 청산이 아닌 사업 종료를 통보한 것은 영업 손실에 따른 법인세 감면 혜택 반납을 회피한 후 향후 재매각 등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매각이 무산된 원인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방적 정리해고 방침 철회와 재매각 등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협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지난 10월 24일 신 대표와 사업 종료와 직원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협의 내용은 비공개됐으나, 26일 서울 영등포구 본사 앞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농성은 그대로 이어갔다.

농성 당시 노조는 “일방적인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 통보를 즉각 철회하고 매각 절차를 다시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종사자의 생존권 보장과 재매각 등을 비롯해 사태 해결을 위한 논의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노조 시위 전날인 25일에는 낙농가의 상경 시위가 진행됐다. 임실낙우회와 푸르밀 낙농가 비상대책위원회 조합원 50여 명은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낙농가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푸르밀의 요청에 따라 1979년부터 40여 년간 독점적으로 원유를 공급해 왔으나 회사가 돌연 영업종료를 통보하면서 공급처를 잃게 됐다는 입장이다.

이상옥 임실군 낙농육우협회장은 “회사가 문을 닫으면 남은 원유가 모두 버려지게 된다”며 “푸르밀은 각 농가에 대한 기준 원유량을 시가로 인수하고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라”고 주장했다.

낙농가는 시위 후 본사로 진입해 푸르밀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 대표를 포함해 회장, 부사장 등 주요 실무진이 아무도 오지 않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농가로 돌아가야 했다. 신 회장이 직책을 부여한 오태한 비대위원장이 이들을 만났으나, 오 씨는 푸르밀 실무와 관련 없는 롯데건설 출신 임원이었다.

이에 대해 낙농가 관계자는 “협의를 하기 위해 농민들이 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무를 담당하는 이가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푸르밀이 농민들을 우습게 아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농민들은 푸르밀 본사 입구에 우유를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희망퇴직 공고한 푸르밀…결국 재매각 가닥

노조와 교섭을 진행 중이던 푸르밀은 돌연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공고해 논란이 재차 일었다. 지난 10월 28일 신 대표는 희망퇴직 신청자 모집을 공고했다. 다음달 9일까지 일반직, 기능직 전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조건은 위로금과 퇴직금, 연차수당 지급 등이다. 위로금은 통상임금과 상여금을 합쳐 2개월분이다.

이는 노조와 2차 교섭 예정일을 3일 남긴 상황에서 발표한 공고다. 이에 노조는 “상생안을 찾겠다고 직원들을 달래면서 뒤로는 반발하는 직원 수를 줄이려는 ‘꼼수’”라며 “부당 해고 소송에 대비해 명분 쌓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조는 31일 예정대로 2차 노사 합의를 벌였다. 이날은 신 대표는 사측 3명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 등 노조 관계자 5명,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번 2차 교섭은 1차 때와 달리 경영진이 재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합의가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직원 희망퇴직 신청 기한도 9일에서 정리해고 날짜와 같은 11월 30일로 3주 미뤄졌다. 희망퇴직 위로금을 근무 연차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제시한 점에 대해서도 조율될 방침이다.

노조와 푸르밀 경영지는 오는 11월 4일 오후 2시에 고용노동부 중재로 3차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앞서 LG생활건강과 한차례 매각이 불발된 만큼 재매각이 원활하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김 노조 위원장은 면담 후 “신 대표로부터 회사 매각을 논의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다만 매각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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