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사진을 찍히는 방법
터키에서 사진을 찍히는 방법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2.11.08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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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가지안테프②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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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낯설게만 느껴졌던 가지안테프는 환대의 도시였다. 단 두 명에게 받은 환대였지만, 처음 여행 온 사람은 으레 도시를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상으로 기억하기 마련이다. 셀라미와 누리가 온갖 밥과 술과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던 덕분에,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터키 동부에 왔다는 얕은 두려움은 금세 사라졌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마당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밤이 지났다.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 찬 도미토리를 떠나 2인실에 묵게 된 나와 진은 햇볕이 내리쬘 때까지 오래도록 잤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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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는 셀라미도 누리도 없었다. 모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내외가 마당을 쓸고 있었다. 어색하게 서 있자,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웃음 역시 어제 만났던 셀라미와 누리의 웃음처럼 편안했는데, 조금 더 부드럽고 온화한 기색이 있었다. 그는 어제 게스트하우스의 안내를 맡았던 누리의 형이었다. 그의 이름은 오스만이었고, 이 게스트하우스를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누리는 가끔씩 형의 숙소 일을 도우러 온 어제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스만의 수염은 거칠거칠했다. 그는 편안하게 있으라고, 이곳을 네 집처럼 생각하라고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가지안테프의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편안한 것인지, 내가 우연히 그런 사람들만 만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시는 내게 너무나도 온화하게 느껴졌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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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안테프는 가지-안테프다. 원래 도시의 이름은 안테프인데, 터키 독립전쟁 때 민병대가 프랑스군에 맞서 도시를 지켜낸 까닭에 도시 이름에 새로운 호칭이 붙었다. ‘수호자’를 뜻하는 ‘가지’. 그렇게 안테프는 가지안테프가 되었다고 했다. 그들이 적군에 맞서 지켜냈다는 안테프의 성을 보면서 진과 나는 농담 삼아 가지, 가지 말하면서 놀았다. 가지안테프에는 가지가 유명할까? 그러면 진짜 웃기겠다. 그런데 정말 그 웃긴 일은 사실이었다. 가지안테프의 특산물 중 하나는 놀랍게도 가지였다. 그 보라색 가지. 아마도 한국인들에게만 웃긴 일이겠지만, 이런 우연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수호자를 뜻하는 터키어가 하필 ‘가지’인데, 그 호칭이 붙은 도시의 특산물이 보라색 가지라니. 이곳에는 가지 케밥이 유명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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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어로 케밥은 그냥 ‘구운 고기’를 뜻한다. 넓게는 그냥 불에 구운 무엇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가지 케밥은 가지와 고기 경단을 번갈아 끼운 꼬치를 불에 구운 음식이었다.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오스만은 이 게스트하우스를 열기 전에 식당에서 매니저 일을 했었다고 했다. 자기가 그 식당에 전화를 걸어서 준비를 시켜 놓을 테니 먹고 오라는 했다. 우리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그 식당에 갔고, 가지 케밥을 맛있게 먹었다. 편안한 식당이라기 보다는 좋은 레스토랑에 가까웠지만,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었다. 또 한국의 육개장과 맛이 거의 흡사한 ‘바이란’과 터키식 디저트 ‘바클라바’도 찾아 먹었다. 오스만의 추천은 거의 옳았다. 라임을 잔뜩 뿌려서 육개장을 닮은 국물을 들이켰고, 다디단 바클라바를 몇 조각 사먹었다. 이후에 이 단 디저트를 얼마나 많이 먹게 될지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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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히는 방법

터키에서 사진을 찍히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동남부로 가면 된다. 걸어 다닐 때마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우리를 연예인 보듯 쳐다보고, 쭈뼛쭈뼛 다가와 사진을 요청하는 일이 많았다. 서부의 관광 도시를 다닐 때 어린 소녀들이 BTS를 연호하며 다가왔던 적은 있었지만, 동남부부터는 내가 직접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자주 오지 않는 동북아시아 사람이 신기했는지, 또 여기에서도 한국 연예인들이 인기를 많이 끄는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우리를 보고 사진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가도, 수줍게 다가와서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관심에 점차 익숙해졌다. 나는 사실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배웠다. 누군가 다가오면 흔쾌히, 사진? 이라고 묻고 웃으며 같이 사진 찍는 일에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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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안테프 중심에 있는 성채를 다녀왔을 때는 거의 놀이동산의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데, 한 사람씩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이 따라 왔고, 결국 우리는 중턱에 멈춰 섰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늘어나더니 근처에 계시던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다가오고, 결국에는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줄이 생겼다. 10명은 넘었던 그 줄을 보며, 이렇게 관심을 받는 일은 아마도 이번 생에 흔치 않은 기회임을 직감했다. 능숙해진 나는 연예인이 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오래전 결사의 항전을 통해 ‘가지’라는 명칭을 얻어낸 성채에 서서, 사진 찍히기에 열중했다. 우리의 앞으로는 안테프의 낮은 지붕들이 늘어서 있었다. 터키 사람들이 왜 유독 한국 사람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꽤 많은 환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일본인에게도 그들은 친절했을 것이지만. 한국 연예인들 덕분에, 특히 BTS 덕분에 나의 여행이 한 뼘 편해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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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의 남자들

저녁까지 종일 성채며, 박물관이며,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향하는 길에 거대한 모스크를 발견했다. 이 정도 크기의 이슬람 모스크라면 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닐까 싶었는데, 인터넷에 별 다른 정보는 없었다. 밤이라 굳게 닫혀서 조명만 몇 개 빛나는 거대한 모스크 주위를 돌다가, 건물 근처로 다가가 벽이며, 문이며, 탑을 구경했다. 그렇게 주변을 보고 있는데, 모스크의 문이 열리더니 청년 다섯 명이 나왔다. 어디에서 왔냐고, 들어와 보지 않겠냐고, 그들은 해맑게 물었다. 경계하는 낌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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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나는 그들을 따라 모스크로 들어갔다. 알고보니 그 청년 중 한 명인 무사는 이 모스크의 젊은 이맘이었다. 기독교식으로는 목사나 신부쯤의 성직자였다. 그리고 다른 애들은 무사의 친구들. 그들은 전부 우리 또래의 젊은 남자애들이었다. 무사를 대장으로 한 또래 청년 무리들. 무사는 모스크 내부의 자기 방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는 친구에게 부탁해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사오게 했고, 우리에게 대접했다. 음식점도 아닌데 손님이 왕이라는 듯이, 다른 친구가 바클라바를 먹으려고 하자, 이 모든 디저트는 손님의 것이라며 우리에게 모조리 먹였다. 사온 바클라바는 양이 꽤 많았다. 나는 단 음식을 계속 먹으면 혀가 아플 수도 있다는 잊고 있던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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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슬람과 모스크에 대한 질문들과, 응원하는 축구팀과, 사는 이야기들. 이맘인 무사는 이슬람의 성경인 쿠란을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아랍어로 쓰인 그 말들을, 무사는 전부 다 알았다. 자신만만한 그에게 나는 쿠란 아무 부분을 펼쳐 외워보라고 했고, 그는 정말로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줄줄 다 외웠다. 물론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거짓말이었다면 내보일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를 깊이 믿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확고함과 온화함과 일정량의 날카로움이 엿보였다. 무사와 친구들은 우리에게 모스크 곳곳을, 이슬람의 의례 방식과 기도하는 방법을 세세히 알려주었다. 그밖에도 그들이 응원하는 축구팀을 응원하는 영상을 찍어주고, 한국 사진을 보여주고, 간단한 보드게임을 하고 놀았다. 밤이 깊었을 때 우리는 숙소로 돌아 왔고, 그곳의 마당에는 셀라미와 누리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어제의 그 얼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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