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INTJ가 요리책을 읽는 방법
어떤 INTJ가 요리책을 읽는 방법
  • 김은진 기자
  • 승인 2022.11.10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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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한동안 나는 굉장히 많은 요리책을 읽었다. 몇 달간 우리 집에 머물던 남자친구를 위해 집밥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또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냥 간단히 유튜브를 참고해도 될 것을 굳이 책까지 찾아보게 된 것은 내가 서양 음식에 대한 지식이 워낙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어릴 때부터 양식을 먹고 자란 남자친구의 식성을 고려한 음식도 몇 가지 해보자 싶었다. 그런데 나는 아는 서양식 집밥 요리가 별로 없었다. 유럽과 북미를 여행할 때도 특별한 명물 요리는 먹어 보았지만 한번도 그 지역만의 ‘집밥’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일단 도서관으로 가 프랑스, 이탈리아, 북유럽 등 서양의 가정식 요리책부터 찾아보았다. 그렇게 책의 도움을 받아 생소한 요리들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봐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던 오스트리아식 팬케이크 수프는 직접 만들어 먹어 보니 순수하면서 매력적인 맛이었다. 또 오이를 넣은 간단한 영국식 샌드위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간식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보편적인 ‘가정식’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일본, 베트남, 태국에서부터 인도, 터키 그리고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가정식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가지 음식은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세계 어떤 지역의 음식이든 그 나라의 식생과 기후에 맞는 식재료가 음식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역사적 혹은 자연적 원인으로 인한 환경의 혜택이나 제한에 따라 굽고 찌고 튀기는 등 그 식재료에 맞는 요리법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 교류를 통해 주변에 전파된다. 여기에는 누가 더 낫고 못 한 것이 없다. 지역별 요리법은 지금 같은 상업적 경쟁의 장에서 태어난 산물이 아니라 그냥 지역사회의 자연스러운 발전이 가져온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 책으로 보니 문화마다 선호하는 주요 양념이 있었다. 그러니 한 문화권 요리들의 맛은 어느 정도 서로 유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우리 각자의 선호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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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요리책을 읽고 만든 음식을 남자친구와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요리와 음식에 대한 관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양한지를 조금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전통 한의학과 유교적 관점에 따라 음식에 있어 건강을 중점으로 생각하는 한국 문화 속에 태어나 자랐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남자친구는 달랐다. 단백질과 비타민 등 과학적 영양과 맛은 고려했지만 제철 음식의 중요성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들에게는 이제 과거와 달리 언제든 원하는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한계를 극복한 것이니 더 좋은 것이었다. 나에게 식재료의 ‘신토불이’는 몸과 마음까지 이어지는 심오한 것이지만, 그에 대해 남자친구는 ‘로컬푸드’라는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미국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채소와 고기가 든 샌드위치에 슈퍼마켓에서 산 봉지 감자칩을 곁들여 먹는 것을 보며 놀랐던 것을 기억해 냈다. 늘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내게 괴이해 보였던 그 모습이 음식에 대한 그들의 관념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남자친구는 드라마 <대장금>을 시청하며 만드는 음식이 몸에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계속 고민하는 전통 한국 음식 문화에 놀라워했다. 이제 한국에 거주하는 그는 자주 한식을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도서관에 간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프랑스 향토 과자>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 실린 거의 모든 과자들의 색은 갈색 일변도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아는 프랑스 과자들은 마카롱이나 밀푀유처럼 알록달록 화려하고 섬세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프랑스의 고급 과자들은 소박한 지역 과자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요즘 유행하는 ‘파인 다이닝’, 즉 고급 식당에서 파는 고급 음식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에 언젠가 나는 ‘왜 일반적인 영국 음식은 조리법이나 맛이 다양하지 않을까’에 대해서 남자친구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가설을 세워보았는데, 그중에는 영국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귀족 문화와 일반인들의 음식 문화 간에 교류가 적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다. 어쩌면 유럽은 중세 동안 기독교의 영향으로 요리법의 발전이 억눌렸을지 모른다. 특히 북유럽권 지역은 개신교의 영향 아래 있었으니 더욱더 소박한 음식이 미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세에 들어 갑작스럽게 부유해진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사치를 앞다투어 자랑하는 풍조에 빠져들었다. 그런 귀족 문화에서 직업 요리사가 만드는 고급 요리는 아무래도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어떤 철학에 기반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바로 느낄 수 있는 미학 혹은 쾌락적 미식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런 음식 문화가 가난한 일반인들의 식탁에는 쉽게 전파되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거기서 태어난 것이 고급 요리의 개념이고 지금 유행하는 파인 다이닝이라는 고급 식당의 근본이 아닐까 싶었다. 배경이 그렇다면 그런 요리는 경쟁하는 환경에서 발전했을 것이고 보이는 것에도 민감한 음식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가정식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분명 맛의 본질도 다를 것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실제로 나는 다양한 요리책을 읽으면서 같은 가정식과 식당 음식, 그리고 고급 음식의 지향점이 얼마나 다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전문 요리사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를 쓴 책은 고급스러워 보이고 큰돈을 기꺼이 낼 가치가 있는 정밀한 맛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런 책 속의 요리는 사진으로 보면 아름답지만 내가 직접 따라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 요리책들은 시간과 예산과 조리도구가 제한적인 환경, 그리고 영양, 개인적인 입맛이라는 요소들 사이에서 각자가 타협점을 찾아 만든 느슨하고 소박한 요리를 제안한다. 사실 나에게는 두 종류가 다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요리를 관점이 다른 여러 책들로 비교하면 그 맛이 가진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도서관의 요리책 서가를 둘러보며 새로운 유행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었다. ‘홈 카페’와 ‘홈 브런치’가 그것이다. 이 두 키워드는 수많은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경험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새로운 음식 문화다. 우리에게 요리는 단순히 먹을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의 콘셉트와 결합한 특별한 경험이 되었으며, 이제는 그 경험을 집안으로까지 가져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를 쉽게 여행하고 온갖 미디어 속 스토리텔링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만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덴마크 요리책에서 덴마크인인 저자는 한 ‘지난 70년 동안 이 세상의 요리법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미 온갖 종류의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한 서울에 살아온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역사였다. 실제로 그 책에 나온 대부분의 전통 덴마크 요리들은 지역 농산물과 허브로 만든 소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세계가 급속도로 교류를 시작하며 짧은 기간 내에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 그 변화 덕분에 나는 프랑스인 요리사가 쓴 <세상에서 가장 쉬운 프랑스 요리책>이라는 두꺼운 책에서 고수를 넣은 코코넛 커리 누들 레시피를 발견했다. 삶은 새우를 넣은 그 쌀국수 요리는 나의 ‘최애 레시피’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 나는 도서관에 가면 새로 들어온 신간 요리책을 눈여겨보고 때로 인터넷 서점에서 새로 나온 요리책들을 쭉 살펴보기도 한다. 그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요리책 서가는 이제 내게 다른 분야만큼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또 하나의 지적 보물창고가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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