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팽목항 부두
팽목항 부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올해는 내가 공부를 참 많이도 했다. 이재명과 임은정 그리고 김학의와 그 주변 인사들을 제법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고, 기후위기와 핵발전소가 인류의 미래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충돌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탐험(?)했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입장을 가정해서 세계를 둘러보기까지 했으니, 아 이걸 뭐라고 정리해야 하나. 내가 참 많이 무식하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나이가 들수록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자꾸 늘어난다. 이것도 결국은 욕망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아니면 사치? 욕망이건 사치건 뭐건 11월 1일부터 내년 정초까지는 백범 김구 아니 김창수 선생을 공부하리라, 작정하고 이틀 전부터 한 권, 두 권, 책을 모으는 등 공부할 준비를 하던 중에 선생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해학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 자신은 매우 진지하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너무 엉뚱하고 기상천외해서 웃음이, 웃음은 웃음이로되 등골이 서늘해지는 미소가 뼛속에서 절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야아,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나는 무한한 행복에 빠져들었다. 이번 공부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게,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밤새 잠자리에 들 생각도 못 하고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재즈에서 상송을 거쳐 가야금 산조를 지나 판소리 춘향가에 이르렀을 때, 날이 새고 말았다. 날이 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헛웃음을 피식피식 날리고 있을 때가 아마 아침 여섯시 즈음이었을 것이다. 날밤을 꼬박 세웠는데도 피곤하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조차 일어나지를 않아서,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이삼 분쯤 뒤에, 너무 놀라서 멍하게 그냥 화석이 되어갔다.

이게 뭐냐?

하룻밤 새에 하늘과 땅의 위치가 바뀐다더니 꼭 그런 꼴이었다. 서울 이태원에서 길을 걷던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서 죽었다는 얘기가 인터넷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삼풍백화점처럼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땅이 꺼진 것도 아니고, 세월호처럼 바다에서 변을 당한 것도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길 위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밀려 넘어지고, 그리고 죽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열 명 스무 명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깔려서 죽었다.

 

팽목항 가는 길
팽목항 가는 길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깔린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빼낼 수도 없었던가 보다. 넘어진 사람 위로 다른 사람이 넘어지고, 그 위로 또 넘어져서 수백 명이 한 덩어리고 돼버린 까닭에 사람의 손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동동 굴리며 울부짖었던 어떤 사람은 이런 증언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밟고 올라갈 수도 없고, 헬리콥터 같은 것이라도 타고 위에서 한다면 몰라도. 아유, 아유 그냥, 나 이제 어떻게 살아요?”

그는 이제 울지도 못하고, 몸부림을 치지도 못하고, 선 채로 그냥 턱을 덜덜 떨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월호 생각이 났다. 아직도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 하고 있는, 어쩌면 밝히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세월호, 이름도 얄궂은 그 여객선은 그날 새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옆 바다를 지나갔었다. 그 위치는 김영삼 대통령 당시 이백 명도 넘는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근처 어디쯤이었으리라.

이게 뭐냐.

이게 나라냐.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소리만 들었다.

희생자는 이십대 중반이 가장 많다고 했다. 햇수를 헤아려 보니 세월호 당시의 친구 또래들이었다. 그때 친구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아이들이 친구들 뒤를 따르고 말았단 말인가?

종일토록 눈물 속에서 뒹굴어대고 있는데 퍼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혹시 정교하게 의도된, 기획된 참사는 아닌 것일까?

내가 만약에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에 대한 신뢰가 제법 있었다면 이런 황당한 의문은 아마도 안 생겼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에 대한 신뢰감을 영점 일도 갖고 있지 못하다. 취임 초기만 해도 사람은 사람의 길을 걷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혹시, 혹시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지만, 오른쪽도 검사요 왼쪽도 검사, 심지어는 금융관련 수장까지 검사로 채우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고 말았다. 천 가지 만 가지 세상사 중에 딱 한두 개만 알고 있는,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만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확신하는 외눈박이 대통령을 두고 말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요 판단인 것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자본제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본제일주의 체제 하에서 주식은 핵심 중에 핵심이다. 핵심 중에 핵심인 주식 가격을 조작해서 돈을 쓸어 담는 짓은 범죄 중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용서받을 길이 없는 악질 범죄이다. 이런 악질범죄 혐의를 강력하게 받고 있는 자가 거리를 활보하는데도 대한민국 수사기관은 손도 대지 않는다. 수사는커녕 범죄 혐의자가 백화점 쇼핑이라도 나설라치면 수백 명의 경찰관을 동원해서 교통을 통제해주고, 특별히 훈련된 경호원을 수십 명씩 붙여서 무엇이든 마음껏 실컷 거리낌 없이 하도록 도와준다.

 

팽목항 우체통
팽목항 우체통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는 동안 보여준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언행은 너무나 수상했다. 내가 품은 의구심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하고도 끔찍한 예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막연한 심증이 아니라 확실한 물증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첫 번째 물증은 참사 현장을 찾은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여기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거지? 압사? 압사가 아니라 뇌진탕 아닐까? 등등 그런 말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현장을 방송사 카메라는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세월호 당시 대통령 박근혜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나서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구할 수가 없었나요? 했던 발언을 떠올리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그 다음 물증은 사진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그 좁은 골목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네 명의 남자가 나란히 늘어서서 일제히 손가락질을 한다. 손가락은 똑같은 방향 즉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눈에 척 봐도 연출이다. 연출도 그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 버리는 값싼 연출이다.

이 연출은 대통령 주변 인사들뿐만 아니라 방송사에서도 적극 가담한 걸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가담 차원이 아니라 방송사가 그런 연출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참사 당일 밤 늦게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방송사에서 내보낸 화면을 보면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신으로 굳어진다. 참사 직후 대통령이 한밤중에 나와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내용의 보도를 방송은 했었지만, 화면에 띄운 영상과 사진은 벌써 몇 달 전 폭우로 서울이 물바다가 됐을 때의 회의 장면이었던 걸로 다음 날 바로 드러나 버렸다. 방송사는 그 장면을 재빨리 삭제 또는 비공개 처리하는 방식으로 자기들의 치부를 감췄다.

방송이야 어차피 오래 전부터 신뢰를 많이 잃었으니 그렇다 치고,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행보는 점입가경이라고나 할까,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로 표기하도록 지침을 내리는가 하면, 근조 글자가 없는 그냥 검은 리본을 가슴에 패용하도록 요구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도처에 차려진 분향소에는 분향소의 핵심인 영정과 위폐가 없었다. 핵심은 없고 핵심을 보좌하는 국화만 수백 수천 송이 진열돼 있는데 그 앞에서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향을 피우고 묵념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괴상한 풍경을 놓고 어떤 사람은 꽃밭에 가서 왜 묵념을 하느냐는 식의 조롱을 날리기도 했지만, 이것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질문을 던져야 할 사안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분향소를 찾는 까닭은 죽은 이의 이름과 사진을 보며 편안히 잠드시라는 위로를 전하기 위함인데 이름과 사진을 없애 버렸다. 이제 죽은 이의 혼은 어디로 가서 안식을 취할 것인가. 한 나라의 장례문화를 이렇게도 손쉽게 하루아침에 뒤집어놓을 수도 있는 것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질문을 공개적으로는 못 하고 있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수군수군하는 투의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었다. 질문이 압수돼 버렸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어느새 이중 삼중의 공포와 두려움에 포박돼 있었고, 이거 혹시 인신공양과 관련이 있는 거 아니냐는 소름 돋는 의구심을 가만히 남몰래 중얼거리는 투로 제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통령과 그 부인이 답을 주고 있었다.

 

세월호 팽목항 분향소
세월호 팽목항 분향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부부가 나란히 분향소를 찾았는데 두 사람 다 이마에 검뎅이 칠해져 있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두 번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무속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귀한 자식일수록 이름을 개똥이니 언년이니 하는 식으로 지어서 귀신이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거나, 얼굴을 흉하게 화장해서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게 한다는 속설은 무속에서 나온 것이고, 이에 관한 설명은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이나 민속사전에 이미 등재돼 있었다.

그런데 속설이 그냥 속설이기만 한 것일까? 아니다. 속설을 진리로 믿고 따르며 전파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고, 즉물적인 기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무럭무럭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통령과 그 부인은 지금 무속에 빠져 있는가? 자신들의 무속 신앙을 국가 운영의 핵심 기둥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은 여론의 대표라 할 만한 기자들이 던져야 한다. 묻고, 또 묻고,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질 때까지 계속해서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요 사명이고 의무이다. 그게 없다면 그는 이미 기자가 아니다.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만드는 전단지 편집자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다수 기자들은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지금 희생자 명단을 어렵게 입수해서 공개한 신생 매체와 특정 종교집단을 맹비난하느라 정신들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시기심일까? 질투심일까? 그런 이유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매우 단순한, 즉물적인 충성경쟁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작은 돈, 작은 권력으로 그들은 아마 그럭저럭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이다.

슬프다. 그리고 분하다. 21세기라 여겼던 대한민국이 지금 중세기로 후퇴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슬프고, 분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세월호 당시에 찍어 두었던 몇 장의 사진을 꺼내놓고 들여다보며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너희들 아직 거기 어디에 있지?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이제 너희들이 나서다오. 너희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백 사람 천 사람의 영혼을 점령하고 들어가서 묻고 따지고 징계하는 용기를 갖게 해다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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