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찍는 거예요, 그게 사진가니까”
“계속 찍는 거예요, 그게 사진가니까”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2.11.16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Focus] 패션 사진가 박정우 인터뷰-2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1부에서 이어집니다.>

사진가 박정우 ⓒ위클리서울/ 박정우 제공

패션 사진가라는 직업

프로사진가로 데뷔하자마자 박정우는 연달아 ‘히트’를 쳤다. 보그, 에스콰이어, 바자, 아레나 등 패션잡지들에서 매달 그의 사진을 볼 수 있었고, 뷰티 브랜드 슈에무라를 비롯한 패션 브랜드에서도 콜을 받고, 현대그룹에서 프로젝트 사진가로 초빙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수직 상승 그래프를 찍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기를 스스로 일갈했다.

“더 잘 찍었어야 됐어요. 독립하고 ‘나는 당연히 잘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그때 나한테 사람들이 촬영 주니까, 내가 잘하니까 준다고 생각했던 바보 같은 시기였죠. 지금 제가 보는 기준에으로 독립한 즈음의 제 사진들은 수준 미달이에요. 그렇게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계속했다간 진짜 망했을 거예요.”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실력이 부족했다면, 과연 일을 의뢰하는 입장에서 계속 요청할 수 있을까? 사진 업계가 전부 인맥으로만 돌아가는 부패 정부스러운 시스템이거나, 목마른 자는 누구든 목을 적셔주는 인류애적 세계가 당연히 아닐 텐데. 합리적인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일의 퀄리티는 맞춰줬으니까요. 근데 사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사진이 늙어요. 요구하는 퀄리티만 맞춰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 보면, 라이팅을 조절하거나 찍는 방식에서 어떤 습관이 생기거든요. 근데 그런 건 시대가 조금만 바뀌어도 바로 촌스러워져요. 그때의 전 수동적인 사진가였어요. 일을 받으면 시안들도 들어오는 대로 해주고 원하는 대로 찍어주면 된다고 생각했죠. 어떤 조명을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오고, 어떻게 찍으면 어떤 퀄리티 나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런 건 테크닉일 뿐이잖아요.”

“물론 사진 찍는 데 있어 기술은 중요한 부분이 맞죠. 내가 상상한 걸 구현하려면 당연히 갖춰야 하니까. 테크닉이 부족하다면 기획이 의미가 없죠. 기타리스트가 치지도 못하는 곡을 만들면 연주를 못하잖아요. 기본적으로 플레이는 당연히 다 할 줄 알아야 하죠. 하지만 핵심은 내가 뭘 찍을 건지, 어떻게 찍을 건지, 연출, 디렉팅은 어떻게 할 건지 명확하게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땐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어요. 스스로 공부를 게을리 한 거죠.”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로 단숨에 세상에 이름을 새긴 비틀즈가 있는 반면, 첫 앨범 ‘Bleach’의 거친 사운드를 개선해 두 번째 앨범 ‘Nevermind’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너바나도 있다. 스스로의 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박정우는 어느 비가 쏟아지는 날 강원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산길에서 그가 몰던 승용차 ‘미니’가 빗길에 미끄러졌고 뒤집어진 차는 거의 완파에 가까웠다. 천운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부상을 입고 입원했다.

“그 사고로 고정으로 하던 촬영들을 전부 못하게 됐어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됐을 때, 다시 조금씩 일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결국은 반강제적으로 공백기를 가지게 됐죠. 이참에 좀 호흡을 가다듬자는 생각으로 영화과에 들어가서 연출이 뭘까 공부도 해보고. 지나고 나서 하는 얘기지만, 오히려 그렇게 된 게 나한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를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기가 생겼으니까.

“그 이후 사진 스타일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처음부터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무엇을 찍느냐. 이게 사진가에게 제일 중요한데 그런 걸 그전까지 캐치하지 못했어요. 사진가에게 그게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거였는 데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대상에 대해 섹슈얼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시각이 없는데, 대상으로부터 그런 부분을 끌어내 찍을 수는 없는 거죠. 평소에 그런 시각이 스스로에게 있고, 경험도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억지로 한다고 해봤자 절대 못 따라 해요. 사진은 정직해요. 전부 티 나지.”
 

사진가 박정우 작품 'Super Sonic Youth' ⓒ위클리서울/ 박정우

박정우의 사진론

보통 창작자들은 큰 틀에서 유사한 방법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결과물을 내기 위한 자기만의 고유한 착안이나 발상 방법, 구체화 방법을 가지곤 한다. 이 사진가는 어떤 유니크한 공정을 거칠까?

“어떤 기획이냐에 따라 다르긴 해요. 어느 날 택시 타고 가는데 (일본 펑크로 밴드)하이스탠다드의 ‘Growing Up’을 듣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 이 제목 멋있는데? 그로잉 업?’ 하면서 떠오르는 대로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 평소에 내재된 발상들이 구심점을 찾고 그 주변으로 모이게 돼요. 이 발상들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디벨롭하고, 구현 가능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디벨롭해요.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더 가지를 쳐내서 구체적이고 핸디하게 만들죠.”

“이런 방식의 최근 작업은 ‘분자 시리즈’가 있어요. ‘물질 구성의 최소단위가 분자’라는 발상에서 시작했죠. 인간의 구성단위도 분자니까. 거기서 파생해 과학을 패션 화보로 풀면 어떨까? 생각했죠. 완전 과학적으로 찍고 싶었어요. 완전 과학적으로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분자식도 찾아보고 실제 분자가 어떤 구성인지도 파보고. 그러고 나서 실제 분자 모양 형상을 가져다가 최소단위로, 최대 단위로 만들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고, 그냥 한의 분자가 되기도 하고. 그런 작업이었어요.”

해외 패션지에 실린 이 물리학적이기까지 한 패션 사진은 예술사진과 패션 사진의 어느 경계에 있는지 궁금했다. 애초에, 명품브랜드 캠페인 중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어떤 사진은 예술사진이고, 순수 회화 같은 형식을 띤 어떤 사진은 패션 사진이고, 구별하는 지점이 명확하게 있는 걸까?

“사진이 내포한 메시지에 따라 속성이 달라지겠죠. 어떤 사진은 엄청 화려한데 아무 내용이 없어요. 사진 내용이 가장 중요하고, 그게 없으면 쉽게 잊혀요. 예술사진이냐, 패션 사진이냐 경계를 굳이 나누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패션 사진이 모든 사진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영역에서 유명한 예술사진가나 다큐사진가들도 결국에는 패션 사진을, 광고 사진을 찍게 돼 있어요. 광고나 패션 사진을 찍지 않는 종류의 사진가를 찾는 게 더 어렵죠. 종군 사진가라던가 기록사진가라던가.”

한편, 각 시즌보다 최소 반년을 앞서 살아가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사이클을 생각하면, 계절 변화보다 빨리 변화하는 패션에 맞물려 패션사진 역시 유기적이고 민첩한 스타일 변화가 이루어지는 걸까?

“그렇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진가의 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사진가 자신에게 어떤 기준이 명확하게 있으면 오롯이 나한테 주도권이 있기 때문에 빠른 흐름의 변화에 자기 사진을 잘 녹일 수 있는 거죠. 사진가 안의 ‘내’가 정해져 있으면 스타일을 바꾸는 건 쉽거든요. 인간을 보는 나만의 기준이 정해져 있고, 그렇게 대상을 잘 파악할 줄 알면 내가 만들고자 하는 분위기도 잘 만들 수 있으니까. 내가 여기서 어떻게 연출할 수 있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신속하게 파악이 된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어디까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욕심부려 시안을 짜는 사진가들도 정말 많거든요. 그렇게 찍어찍으면 당연히 잘 안 나오죠. 자기가 심플한 펑크록 치는 기타리스튼데 갑자기 잉위 맘스틴 같은 헤비메탈 기타 치려고 욕심부리는 것과 같아요. 본질적으로 다른 플레이 방법을 가졌는데 단순히 따라 친다고 소리가 비슷하게 날까요? 그래서 내가 어떤 플레이어인지 잘 알아야 돼요. 그게 결국 오랫동안 사진가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고.”

음악의 비유로 사진론을 말하는 그의 대화방식이 ‘그’를 나타내고 있었다. 독보적인 리드미컬한 사진을 찍는 사진가 박정우를. 그에게 거장의 반열에 든 사진가는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 물었다.

“어떠한 반열에 오른 사진가들은 작가로 인정해 주는데 그들의 차별점은 인간을 관찰하는 시각에 있다고 생각해요. 수천 명을 찍어도 그들은 자기만의 관찰점이 있어요. 완전히 핀 포인트. 어떤 사진 거장이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군상들 찍은 사진을 봐도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관찰 시점이 일치한다는 뜻이에요. 그 관점이 있기에 ‘인간’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있고.”

“예를 들면, 브루스 웨버 같은 사진가가 멋있죠. 그 사람의 경우 패션화보를 실제 있었을 것 같은 스토리로, 반 다큐멘터리같이 풀어내요. 실제로 촬영 시간도 좀 길게 잡는 편인데, 일주일 동안 리조트에서 파티를 열고 그 사이사이에서 어떤 순간을 포착해 내는 식으로 작업하기도 해요. 헬뮤트 뉴튼도 멋있는데, 이 사람은 섹슈얼한 이미지의 거장이죠. 자기만의 페티쉬가 찍은 그 어떤 사진에도 드러나는데, 그 시각이 일치하고. 다큐사진가 마틴 파의 사진들도 자기만의 시점이 확연히 드러나요. 이렇게 자기만의 관찰 지점이 명확한 사진가들이 확실히 거장이 될 수 있어요.”
 

사진가 박정우 작품 'Super Sonic Youth' ⓒ위클리서울/ 박정우
사진가 박정우 작품 'boyz noize' ⓒ위클리서울/ 박정우

사진가는 ‘매일 찍는 사람’

사진가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이라면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사진가는 감독 지시를 받아 자기의 임무를 완수해 내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현장 전체를 지휘하며 스스로의 플레이 역시 완수해야 하는 플레잉 코치에 가깝다는 것을. 박정우는 또, 어떤 게임을 그라운드에서 풀어갈 것인가.

“구상에서 준비로 들어간 작업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무조건 다큐멘터리로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LGBT를 소재로 한 작업이에요. 이 사람들의 미적인 지점을 다루려고 해요. 다큐멘터리는 소재가 좋다면 그 일상적 소재로 패션화보처럼 아름답게 찍을 수도 있어요.”

“또 하나는 수트 화보인데, 남자 둘이 엇갈려 몸을 많이 쓰는, 마치 레슬링을 하듯이 엉켜있는 화보에요. 그걸 좀 풍경화처럼 조형적으로 찍으려고 해요. 수트라고 하면 보통 정적이고 잘 빠지고 안 꾸겨지고 깔끔한 게 매력이잖아요. 근데 그런 사람끼리 둘이 레슬링을 한다? 하하하하.”

크게 웃는 그의 눈동자 속엔 이미 구상 중인 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기획을 얘기하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벌써 신나있는 그가 참, 한결같다고 생각했다. 목표라는 걸 묻는 게 의미가 있을까. 평생 찍을 아이디어가 세포에까지 꽉 차있을 이 사진가에게.

“계속 찍는 거예요. 그게 사진가니까. 최종 목표가 비단 패션사진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니까. 사진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람이라면, 매일 사진을 찍어야 돼요. 돈 벌 때만 사진 찍으면 그게 과연 사진가가 정말 맞는지 의심해 봐야 하는 거죠. 기타리스트가 매일 손에 잡고 기타를 쳐야지, 그냥 집에 맨날 누워있다 공연할 때만 치고. 그러면 그 사람 풀타임 뮤지션 아니잖아요.”

“성공한 상업 사진가들을 보면 그들의 화려한 작업 이력이나 부의 축적 같은 외적인 부분만 보이겠지만, 진짜 성공한 사진가들은 스스로 즐거워서 매일 사진을 찍고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진가들만이 시대의 초상을 담아낼 수 있는 거예요. 시대의 뒤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촬영할 땐 무대 위에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카메라 잡는 순간 기타 손에 드는 것과 똑같이 생각한다’는 박정우. 언젠가, 그가 작업 중인 현장에서 완벽주의자 그 자체인 일면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넘어 일종의 섬뜩함을 느낀 적이 있다. 평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 달변가의 눈빛에서 확인한 불타오르면서도 야누스적인 냉기에. 이것이 프로 패션 사진가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