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세월호 참사 이후 바다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검푸른 바다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거리를 다닐 수가 없습니다. 거리의 청년들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태원 참사로 우리 사회 전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내상을 입고 있습니다.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해명되지 못한 숱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 의혹의 끝은 결국 “이게 나라냐”라는 비통함입니다. 이 나라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으면서도 불구하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안전시스템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드러냈을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빈이 엄마는 ‘국가의 부재’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전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을 뿐입니다. 온갖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국민의 세금으로 가동하고 있으면서도 국민을 위험 상황으로 방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긴급 구조가 필요한 위급 상황에서는 국민을 버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 단순한 사고를 넘어서는 거대한 참사가 발생한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이 참사는 결코 세계인의 상당수가 누리는 축제를 즐기고자 했던 시민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행여라도 이 참사의 책임, 혹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당일 이태원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돌리거나 그런 의도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나 글이 퍼지지 않도록 모두가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날 밤 이태원에서는 수많은 나라에서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핼러윈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여기에 많은 인파가 참여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고 있었습니다. 다중이 참여하는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미리 경고하고, 대비하고, 사고 발생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도시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이들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참사를 대하고, 그분들의 고통에 함께 애통해 하며, 그분들이 원하는 수습과 지원, 치유, 진상 및 책임의 규명,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도록 하는 데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장영식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 단순한 사고를 넘어서는 거대한 참사가 발생한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이 참사는 결코 세계인의 상당수가 누리는 축제를 즐기고자 했던 시민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행여라도 이 참사의 책임, 혹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당일 이태원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돌리거나 그런 의도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나 글이 퍼지지 않도록 모두가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날 밤 이태원에서는 수많은 나라에서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핼러윈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여기에 많은 인파가 참여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고 있었습니다. 다중이 참여하는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미리 경고하고, 대비하고, 사고 발생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도시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이들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참사를 대하고, 그분들의 고통에 함께 애통해 하며, 그분들이 원하는 수습과 지원, 치유, 진상 및 책임의 규명,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도록 하는 데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장영식

세월호 참사 이후 ‘이윤보다 안전’한 사회를 말했지만,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한 사회보다는 이윤을 먼저 추구했고,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산재사망율은 한국 사회가 돈이 절대선인 사회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코로나19에 의해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산재 사고로 죽임당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비좁은 골목길에는 해밀턴 호텔로 향하는 비상문이 있었습니다.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 하늘까지 닿았지만, 이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한 이들의 굳게 닫힌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장영식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비좁은 골목길에는 해밀턴 호텔로 향하는 비상문이 있었습니다.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 하늘까지 닿았지만, 이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한 이들의 굳게 닫힌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장영식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고,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하는 참사를 보면서 내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도 세월호와 이태원 같은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을 수 있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죽임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무섭습니다. 안전 없는 사회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정한 사회가 무섭습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국가기관의 직무유기가 핵심적인 요인이었지만, 엄중한 심문을 받아야 할 고위 공직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힘없는 현장의 사람들에게만 가혹하리만치 무거운 채찍을 가하는 사회가 더 무섭습니다. 대통령에서부터 장관과 기초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들이 먼 산 바라보듯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은 서울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7만 소방관 지키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통해 "부당한 수사를 중단하고, 진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에 의하면, "용산소방서장, 지휘팀장 입건,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구급대원들 기록을 압수하고 출동한 차량 188대, 출동소방관 620명의 현장 활동기록을 수사한다"고 합니다. 소방본부는 "국민이 알고, 7만 소방관들이 아는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희생자에 대한 최고의 추모"라면서 현장 소방관에 맞춰진 수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장영식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은 서울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7만 소방관 지키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통해 "부당한 수사를 중단하고, 진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에 의하면, "용산소방서장, 지휘팀장 입건,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구급대원들 기록을 압수하고 출동한 차량 188대, 출동소방관 620명의 현장 활동기록을 수사한다"고 합니다. 소방본부는 "국민이 알고, 7만 소방관들이 아는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희생자에 대한 최고의 추모"라면서 현장 소방관에 맞춰진 수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장영식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국가와 권력이 무능하다는 것만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물론, 공공성의 회복과 사회적 격차의 해소, 비정규직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 등등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엄청난 문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음에도 해결할 의지가 없는 정치권을 보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라는 세기적 대재앙이 발생했었음에도 설계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를 수명 연장하며 가동하겠다는 ‘원전 부흥’ 정권을 볼 때,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쓰라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 추모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부산 서면에서 열렸던 추모제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공연의 모습입니다. ⓒ장영식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 추모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부산 서면에서 열렸던 추모제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공연의 모습입니다. ⓒ장영식

이태원 참사 이후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고, 위패도 없고, ‘근조’라는 글자조차 없는 국가 애도 기간을 보내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맘몬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 맘몬이 돈이었든 ‘00거사’였든 또 그 무엇이었든 지옥 그 자체입니다. 희망이 없는 불구덩이 같습니다. 거리에서 선 채로 압사당하고, 넘어져서 짓밟혀 죽는 아수라장 같은 국가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국가의 성격과 수준은 국민에게 달려 있다”라고 말했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의 말처럼 참사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무한소유와 무한소비를 추구했던 탐욕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입니다. 성찰 없는 닫힌 마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비좁은 골목길에서 살려 달라고 절규했던 울부짖음에도 해밀턴 호텔의 비상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결과입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했던 결과입니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지옥 같았던 세월호와 이태원에는 ‘나와 너’와 같은 꽃보다 더 귀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태원역 1번 출구로 올라오는 계단길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로 가득합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 바치며,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
이태원역 1번 출구로 올라오는 계단길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로 가득합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 바치며,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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