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샨리우르파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무더위

우리나라로 치면 대구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할까, 우르파로 향한다는 말에 현지인들도 거기 덥다고, 무척 덥다고 손부채 모양을 만들었다. 우리가 있던 안텝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데 얼마나 덥다고 그렇게 유난인지. 적어도 더위로 이름 난 도시임은 확실했다. 이미 터키 동남부로 왔을 때부터 날씨는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고, 남쪽으로 갈수록 더 더워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체감해 하며 신기해하고 있을 때였다. 어린 시절 메소포티미아 문명을 교과서에 배우며 들었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안텝에서 우르파로 향하는 버스의 창가로 유프라테스 강이 보였다. 이 강 근처의 황야에서 조금씩 자라났을 하나의 문명을 상상했다. 물이 없는 시기인지 강은 개울처럼 조그맣게 흘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우르파는 사람들이 말한 대로 분명하게 더웠다. 조금이라도 더 덥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조금 더 더웠다. 그 조금의 차이를 사람들은 예민하게 느낀다.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졌다. 옆에 있던 진은, 빨래 참 잘 마르겠다고 좋아했다. 빨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날씨. 같이 탔던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 관광객들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소란스러웠고, 나와 진은 그들과 같은 무리가 아님을 보이기 위해 잡아 놓았던 숙소로 서둘러 향했다. 낮은 지붕들로 이어진 남부의 오래된 도시. 오래된 도시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안정감이 골목 곳곳에서 느껴졌다. 배낭을 멘 진과 나는 덥다, 더워 중얼거리며 계속 걸어갔고, 찾아가 문을 연 숙소의 마당에서는 스페인 사람들이 수박을 먹고 있었다. 민소매를 입은 사람들의 몸이 붉었고 그들이 먹고 있는 수박은 더 붉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나는 터키를 여행할 때 계속 노란색 모자를 쓰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왜 쓰고 다녔나 싶은 샛노란 모자인데, 괴레메에서 만났던 후이는 내 모자를 보고 유치원생 같다고 했다. 기능성 모자도 아닌 평범하고 딱딱한 모자라서, 세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빨아도 금세 마르지를 않을 테니, 다음날 바로 써야하는 입장에서 쉽사리 빨 수 없었다. 우르파에서 모자를 곧바로 빨았다.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에서 내 노란 모자는 거의 실시간으로 말랐다. 노란 모자를 걸어둔 2층의 빨랫줄 밑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관광객이라면 다들 비슷한 상황에 있는지 일전에 마주친 중국인 무리는 우리 숙소에 묵게 되었고, 터키 동남부에만 자주 들리곤 한다는 한국인도 한 명 있었다. 그들도 수박을 먹었다. 그 한국인은 우르파에만 네 번째라고 했던가. 한국인들은 터키 동남부의 매력을 잘 몰라. 어디를 돌아가면 아주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네, 그가 말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성스러운 우르파

우르파의 공식 명칭은 샨리우르파다. 샨리는 성스럽다는 뜻. 그러니까 성스러운 우르파.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 있는 이 도시는 오래된, 그러니까 보통 오래된 게 아닌 아주 오래된 도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이자, 동굴에서 신을 찾았던 욥이 있던 곳. 그곳이 정확히 여기냐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터키인들에게 우르파는 그야말로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도시다. 구약까지는 이슬람도 같으니까. 구약까지는 같은 신이다. 이슬람의 알라는 전혀 새로운 신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그 신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때쯤에야 알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이 사람이야, 도 아니고, 그 신이 이 신이야, 라는 신기한 말. 물론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르게 느끼겠지만. 기독교인이었던 진도 구약에서 읽었던 사람들이 머물렀다는 도시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하느님인지 하나님인지 알라인지 하는 그 신이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시련을 주었다는 욥. 그럼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동굴에서 신을 찾았다는 욥.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정확히는 몰랐지만, 하도 유명해 대충의 얼개를 알고 있었다. 삶의 고통과 믿음에 대해. 삶은 어쩔 수 없이 시련을 피해 주지 않을 것이므로, 삶의 무너짐 속에서 믿음을 통해 살아가는 길, 그 믿음으로 겨우 굳게 버티는 일. 욥의 이야기는 종교적 믿음의 근간에 맞닿아 있는 듯 보였다. 욥이 유명한 까닭은 많은 신자들이 자신을 욥처럼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르파에는 욥이 기도했다(고 믿어지는) 동굴이 남아 있었고, 그를 기념하는 거대한 모스크가 그 위에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줄줄이 동굴을 향해 내려가고, 나도 그들을 따라 작은 동굴에 들어가고, 그곳에는 사람 한 명이 누워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좁은 동굴은 신자들로 가득하고, 동굴 바깥으로 나왔을 때에는 사람들이 뜨거운 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벽에서는 병을 치유한다는 성수가 흘렀다. 물통에 물을 받으며 웃는 사람들. 환하게 밝은 아이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시내에는 아브라함의 탄생을 기념하는 거대한 모스크와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아시리아의 왕이 아브라함을 화형하려고 했지만 불은 물이 되고, 장작은 물고기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진 곳. 얼마나 많은 장작이 있었기에 이토록 많은 물고기가 있는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믿음은 삶을 어떻게 떠받치고 있기에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로 붐비는 것인지 궁금했다. 성지를 찾아온 진은 약간 들떠 보였다. 거대하고 깔끔한 연못 옆에 선 그의 사진을 찍어 주었고, 나도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곳곳을 둘러보다 우르파 시내가 한눈에 둘러 보이는 언덕에도 올라갔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친구에게 보이스톡을 걸어 한참 이야기했다. 천주교 냉담자인 나의 친구에게, 나는 지금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에 있다고, 네가 살고 있는 뉴욕은 어떠냐고 우르파의 언덕에서 묻는 기분이 기묘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시내를 돌아다니다 버스에서 대학생 둘을 만났다. 수줍게 다가온 그들과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제무역과 간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했던가. 한국과 터키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우리 곁에 어떤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한국 전쟁 참전자였다. 터키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야. 형제의 나라. 왼 손에 커다란 반지를 낀 노인이 연신 말했고, 진과 나는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그의 어깨를 안았다. 흡족한 자부심이 그의 얼굴을 채웠고, 햇볕은 계속되었다. 그때 만났던 대학생 한 명은 여전히 나의 SNS에 들어와 고양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간다.

오래된 도시 우르파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고, 그곳의 시간 또한 그렇게 계속 지나고 있을 것이다. 욥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