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마르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시간은 그곳을 다 지나쳐 갔다

그 긴 시간은 이미 전부 흘러가 남아 있는 것이라곤 지금 당장의 시간뿐일 텐데, 오래된 도시를 걷다 보면 그 시간들이 층층이 쌓인 더께를 보는 것 같다. 오래 묵은 먼지가 희뿌옇게 날리고 있고, 시간을 빨아들인 것 같은 공기가 도시를 채운다. 가만히 선 채 낡아갔을 책의 냄새로 가득 찬 도서관처럼, 어떤 공간은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다 내어 보인다. 이를테면 바라나시 같은 오래된 도시의 미로 같은 골목을 걸을 때 멀리서 들려오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쌓여 겹쳐진 소리처럼 들린다. 마르딘 역시 오래된 도시였다. 언덕 위에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마르딘의 구시가지에서는 너른 평원이 보였다. 그 평원 너머로 나아가면 곧바로 시리아가 있다고 했다. 아랍에서 터키를 잇는 사이에 위치한 회백색 평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것이다. 상인들이 이 도시를 지나 터키로 아랍으로 지나다녔다. 그들도 높은 언덕에서 같은 평원을 보았을 것이다. 골목이 좁고 가팔라 지금도 여전히 당나귀가 짐을 나르는 곳에서 그들은 잠을 자고 다시 나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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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어로 오토가르라고 부르는 버스 터미널에서 마르딘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눈빛이 침울해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름은 묻지 못했다. 그는 시리아 사람이었고 시리아에 전쟁이 난 이후에 여전히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터키 땅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터키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돌아갈 곳이 없어진 처지라고 했던가. 벌써 6년째라고, 6년째 가족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얼굴은 좌절에 익숙해진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처럼, 사람의 표정은 그가 지나온 시간을 흔적처럼 새기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시리아가 다시 괜찮아진다면 언젠가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텅 빈 눈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은 없어. 앉아 있는 그를 지나쳐 버스에 올랐고, 그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도 행선지가 있어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갈 곳을 아는 데도 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나는 그곳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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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딘의 구시가지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려면 마르딘 터미널에서 내려서 작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진과 나는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리처럼 헤매고 있는 폴란드 아주머니를 만났다. 헤매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안정감을 느꼈고,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언덕을 오르는 버스를 탔다. 바르샤바에서 왔다고 한 폴란드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사탕을 주었다. 포도 맛이 나는 폴란드 사탕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고 언덕은 조금씩 가팔라졌다. 처음 내렸을 때는 그렇게 오래된 도시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도 역시 살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안 쪽으로 조금씩 들어가자 미로 같은 골목이 나타났고 그 길을 따라서 우리가 묵을 숙소를 찾았다. 폴란드 아주머니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이슬람 사원의 거대한 탑을 바라보았다. 마르딘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탑. 거대한 사원이라는 뜻의 울루 자미. 그곳에서 평원을 내어다 보았고, 그 끝에 있을 시리아를 상상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시리아가 나온다. 나도 갈 수 없고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도 갈 수 없는 곳. 너른 평원은 묵묵하고, 시간은 그곳을 다 지나쳐 갔다. 그렇게 계속 더 지나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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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신이 있다면 신에게도 학교가 있을까. 신 노릇을 하기에 지쳐서 배움을 얻으려고 오는 학교 같은 것들이. 마르딘에는 신학교가 있었다. 신학교라는 말에서 괜히 신을 생각했다. 언덕의 높은 지대에 있는 신학교에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삶의 과정을 빗대어 만들었다는 인공 연못이 유명했다. 물이 처음 시작되고, 수로를 따라 빠르게 흐르다가, 좁아지다가, 거대한 못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며 학생들은 삶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고 했다. 오래된 신학교에 이제 학생은 없지만 사람들은 그 연못에서 사진을 찍는다. 잘 찍으면 잔잔한 물에 풍경이 그림처럼 비춰서, 포토 스팟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작은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기위해 사람들의 핸드폰을 거꾸로 들었다. 렌즈를 아래로 두면 더 길게 나오니까. 사진을 찍어주는 여자 아이의 옆에는 눈이 큰 남자 아이가 기대어 있었다. 눈은 때로 영혼을 비추는 창이 되는데, 아이의 커다란 눈 속에서는 얕은 슬픔이 보였다. 고여 있는 눈. 신들의 학교가 있다면 그곳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신에게도 눈동자가 있다면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신에게도 배움이 있어 그가 배운 것들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끝없이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반문을 멎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신학교의 창가에 기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언덕이었으므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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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수십 마리가 되는 양이 한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양을 치는 아이들이 보였다. 이 가파른 언덕 위로 몰려오는 양들과, 짐을 멘 당나귀들과, 모스크의 거대한 탑과, 언덕 아래 평원이 동시에 보였다. 많은 것을 비추는 풍경 속에서 이미 사라진 것들과 아직 있는 것들이, 그리고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것들이 겹쳐 보였다. 회백색 혹은 황색의 풍경 속에서, 이곳이 아랍으로 향하는 길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랍에 가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랍은 내가 정말로 모르는 곳이어서, 무언가를 새로 알게 되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곳에 쌓인 시간 역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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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보면 우선 반가워하는데, 한국 전쟁 때 참전한 터키 병사와 한국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아일라’라는 영화를 자주 이야기했다. 터키에서 꽤 크게 흥행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감동적인 우애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한국에서 싸워준 터키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때의 시간도 이렇게 지나 우리 앞에 돌아온다. 형식적인 대화라고 해도 그 잠깐 있던 우애의 시간이 싫지는 않았다. 또 그곳에서 일하는 쾌활한 터키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일하다가, 이스탄불로 가서 공부할 거라고. 그의 눈빛은 밝았고, 희망으로 차 있었으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로 기분 좋게 열려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맥주 캔을 부딪치며 말했고 그는 밝게 웃으며 우리의 삶은 좋은 것들로 가득하다며 웃었다. 나는 그의 웃음의 반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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