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가끔이긴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가슴 깊이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 있다. 사과는 아무나 함부로 쉽게 할 수 없다는 게 그것이다. 사과는 일단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양심의 고결성이 뒷받침돼 있지 않으면 용기는 작동되지 않는다.

사과는 인간 윤리와 철학의 최고, 최대의 가치인 까닭에 아무나 함부로 쉽게 할 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뒷골목 양아치나 사기꾼 모리배들이 세 불리하면 즉각 고개를 숙이는 방식으로 국면전환을 꾀하는 사과는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사과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날도 나는 뼈저리게 가슴 깊이 그것을 느꼈다.

그날은 하필 굉장히 추웠다. 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고, 바람마저도 맵차게 쉬지 않고 불어대서 넋이라도 강도질을 당할 것만 같았다. 방안에서도 손이 시려 겨드랑이에 가끔 손을 넣어줘야만 했다. 비교적 따뜻하다는 남쪽에서도 그 지경이었다.

서울은 남쪽보다 두 배 내지 세 배는 더 추워 보였다. 컴퓨터 모니터에 개인방송 채널 세 개를 동시에 띄워놓고 들여다보는 내 눈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입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10.29참사 희생자를 위한 49제’라는 글귀가 흰 색으로 적힌 검은 현수막조차도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웨딩드레스를 맞춘 날, 이제 곧 부부가 될 남녀 한 쌍이 기쁨에 겨워서 이태원 구경을 나섰다가 신부는 사람들에 깔려서 사망하고, 신랑만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스크린에 소개될 때 행사장은 흐느낌의 바다가 되었다. 예비 신부가 사람들에 깔려 죽어가고 있는데도 예비 신랑은 역시 사람들에 깔려 꼼짝도 해볼 수 없는 까닭에 피눈물을 흘리며 보고만 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사연은 많고도 많았다. 하나의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흐느낌의 강도는 높아져 갔다. 행사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세월호 참사 때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격려 발언은 흐느낌의 바다를 울음의 파도로 변환시켰다.

억누르지 마세요. 
울음이 나올 땐 우세요.
큰 소리로 우세요. 
몸부림도 치세요. 
욕이 나오거든 삼키지 말고 하세요.
무엇이든 다 하세요.
참으면 안 됩니다. 
터뜨려야 합니다. 
터뜨리지 않고 억누르면 울화병이 됩니다.
울화병이 들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 시간 경찰 기동대는 행사장 뒤쪽에서 이중 삼중의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었다. 기동대원을 싣고 온 수십 대의 버스가 일자로 서 있었고, 바리게이트 구조물을 싣고 온 대형 트럭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건장한 체격의 기동대원들은 육중한 철제 구조물들을 낑낑대며 날라다가 곳곳에 설치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예수탄생일 축하 트리에 불을 붙이는 행사에 참석해서 와인 잔을 들고 근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탄신 축하이니 분위기는 자연 화기가 애애했고, 참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이 터뜨리는 웃음소리 또한 끊이지 않아서, 대한민국 전체가 그렇게 화기애애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49구제 행사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행사는 참사 원인을 제대로 잘 밝혀주심과 아울러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진심 가득한 사과를 요청하는 서한을 대통령에게 드리는 일이었다.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유가족 대표들이 차례로 한 명씩 앞으로 나섰다. 사회자는 엄숙하게 낮은 목소리로 유가족 대표들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

유가족 여러분들께서는 절대 분노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은 호소하는 날입니다.
분노가 아니라 호소라는 점 절대로 잊지 마시고 행진을 시작하십시오.

유가족 대표들은 고요한 수도승들처럼, 진심 어린 사과를 요청하는 서한이 담긴 봉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들어 모시듯이 들고 가만가만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행사 참석자들이 따랐다. 사회자는 거듭해서 일반 참석자분들은 이제 돌아가셔도 된다고 했지만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구슬픈 음악 속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가만가만, 숨소리도 크게 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걸었다. 걸음은 경찰이 설치한 제1차 방어선에서 일단 막혔다. 1차 방어선은 더 이상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용이었다. 사건 현장에 임시로 설치하는 이른바 폴리스라인이었고, 기동대원도 방패를 앞세우긴 했지만 느슨하게 한 줄로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사회자가 경건한 목소리로 경찰에 요청했다. 대통령께 요청 서한을 전달하겠다는 오직 그 하나의 목적이 있을 뿐이니 길을 열러달라고, 한 번, 두 번, 거듭거듭 호소를 했지만 경찰은 거대한 스피커를 동원한 경고방송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돌아가라. 즉각 해산. 미신고 불법집회. 채증, 등등 자극적인 단어들로 구성된 경찰의 경고방송에 참석자들은 흥분해서 웅성거렸고, 물러나라, 길을 열라, 등등 간명한 구호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간헐적으로 반복하던 경고방송을 이제 자진모리 형식으로 쏟아내는 한편 카메라를 높이 쳐든 채증단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참석자들은 주먹을 높이 쳐들고 물러나, 길을 열어, 같은 구호를 연호하는 한편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서 1차 방어선을 뚫고 2차 방어선에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육중한 철제 바리게이트 뒤에 삼중 사중으로 빽빽하게 도열해서 방패를 앞세우고 있는 기동대는 저 먼 옛날 로마군단을 연상케 할 정도의 압도적인 세를 과시하고 있었지만, 맨손에 목소리뿐인 참석자들은 무서워서 돌아서기는커녕 철제 바리게이트를 한편에서는 밀어내려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기동대는 사람들을 방패로 막거나 밀어내고, 밀침을 당한 사람들은 비명소리와 함께 욕지거리를 쏟아내고, 그런 와중에도 경찰의 경고방송은 계속되고, 행사 사회자의 경건한 목소리 또한 그치지 않고 있었다.

혼란이 극한에까지 이르러서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지면 어쩌나 불안, 초조, 걱정이 숨도 못 쉬게 몰려드는 어느 순간, 다행히도 경찰은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유가족 대표단 중에서도 대표 다섯 명만 선출해주면 대통령실 앞까지 안전하게 호위하겠다는 경찰의 절충안을 유가족 대표들은 침통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대표 중에서도 대표 다섯 명이 바리게이트 사이를 안전하게 통과하고, 남은 참석자들은 석연찮은 느낌인 채로 해산했지만, 몇 시간이나 지난 뒤에 들려온 소식은 대통령실 앞은커녕 근처에도 못 가보고 되돌아서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인터넷에는 희귀한 벽보 사진 한 장이 등장했다. 대통령 부부가 두 채의 집을 오가면 살았던 아파트 관리실에서 부착한 것으로, 대통령 하사품 떡이 도착해 있으니 입주민 여러분께서는 각 동 경비실에서 수령해 가라는 내용이었다. 문구 중에 ‘하사품’이란 낱말 하나가 강력하게 돋보이는 이 희귀한 벽보는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케케묵은 왕조 시대로 후퇴하고 있다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은 댓글들을 읽다 보니 슬픔이나 회한보다는 차라리 웃음이 나왔다. 조롱이나 비난은 아니었다. 나 자신도 그 의미를 한 줄로는 요약하기 어려운 난해한 웃음이었다.

뭐랄까,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도자 내지 영웅으로 부상하고자 하시는 걸로 여겨지는 대통령 윤석열은 내게 참 고마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한 바 없고, 체험한 바도 당연히 없으며,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으로도 만나기 어려운 이런 인성은 희귀하다 못해 완전 독보적이어서, 대한민국의 관련 학계는 물론이요 지구촌 각 나라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영구 소장될 가능성이 매우 짙어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떠올라 오는 영화 한 편이 있다. 하도 오래 전에 봐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굉장히 파격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었다. 내용도 전체적으로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전체를 관통하는 에피소드 한 부분만 강렬하게 내 기억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를 따르라 아앗.”

장교복장을 한 사나이 한 명이 오른손에 무전기를 들고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면, 와아, 소리가 배경에 깔리면서 하나, 둘, 병사들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개미떼처럼 몰려가는 군대가 보이고, 이어서 다시 장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나를 따르라’라고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웅장하게 귓속을 파고든다.

그 기세로만 보자면 장교는 벌써 저 멀리 앞장을 서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위치에 변동은 없다. 그는 하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무전기를 귀에 댄 채로 발을 굴려 땅을 치기나 할 뿐, 전진은 하지 않고 상체만 금방 앞으로 달려갈 것 같은 모션을 취해 보이며 ‘나를 따르라’를 연속해서 외칠 뿐이다.

마치 그 자리에 두 발을 묻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자세로만 보자면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열흘이 지나도 장교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를 따르라’고 외칠 것만 같다.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난 뒤에도 장교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를 따르라’고 외칠 것 같고, 백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를 따르라’고 절규하듯이 명령하고 있을 것만 같은 지휘관의 왼쪽, 오른쪽으로 병사들이 총검을 치켜든 채로 내달리고, 앞에서도 내달리고, 뒤에서도 개미떼처럼 시커멓게 몰려 나간다.

이렇게 해서 지휘관은 맨 뒤에 홀로 남게 되고, 병사들은 일단 와아 몰려가긴 했지만 지휘관이 뒤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까닭에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전진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 갈팡질팡, 하다가 날아오는 총탄에 하나 둘씩 픽픽 쓰러져간다.

지휘관은 자기가 병사들의 뒤에 서 있다는 인식은 고사하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지휘관은 그저 무전기를 손에 든 채로 목청껏 외칠 따름이다. ‘나를 따르라’고.

병사들은 이제 다 죽었다. 지휘관은 비로소 뭔가 이상하게 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죽어 넘어진 병사들을 향해 새로운 목소리로 외친다.

“뭐야. 왜 자빠져 있는 거야. 일어섯. 일어서서 나를 따르란 말이얏.”

그리고 엔딩.

지휘관의 마지막은 충분히 예상되지만, 디테일은 추론하기 어렵다. 총에 맞아서 쓰러졌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쓰러진 병사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나를 따르라고 계속 외치다가 지치고, 배가 고파서, 어쩌면 죽은 병사들을 식량으로 오인했을지도 모르겠다.

2022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내 눈에 그렇게만 보인다. 그래서 웃는다. 웃기는 하지만, 웃으면서도 왜 웃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지금이 첨단과학의 시대라는 21세기가 맞나? 그것조차도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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