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지하철 타기 투쟁...서울시는 ‘무관용 원칙’으로 맞불

ⓒ위클리서울/장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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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장성열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투쟁(지하철행동)이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게 해달라는 것을 넘어 장애인의 이동권과 생존권에 대한 요구다. 이 행동은 사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1년 1월 22일 4호선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에서 장애인 추락 참사 이후 장애인들은 20년 넘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예산으로 반영할 것을 국가권력에 요구해왔다. 그래서 2022년 12월 20일까지 전장연은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252차례 ‘지하철 선전전’, 141일 차 177명의 장애인들과 비장애인 활동가가 ‘삭발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국회는 전장연이 제출한 장애인권리예산(1조3044억 원)의 51%(6653억 원) 반영을 여야합의를 통해 상임위원회에서 반영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예산은 0.8%(107억 원)에 그쳤는데, 국회에서 예산증액의 법적 권한을 가진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가 장애인권리예산 증액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일에는 전장연 활동가 240명이 4호선 삼각지역에서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시도했다. 전장연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강제조정안대로 열차 지연 시간이 5분이 넘지 않도록 선전전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 활동가들의 탑승을 저지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전장연 활동가의 탑승을 금지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진압 또한 이어졌다. 경찰은 고의로 전동휠체어의 전원을 끄거나 컨트롤러를 부숴버리기도 했다. 경찰에 의해 뒤로 넘어지거나 경찰관에게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당한 활동가도 있었다. 심지어 삼각지역장은 이러한 상황을 무시한 채 “여러분(전장연)은 강제퇴거 대상이다. 당장 역사 밖으로 퇴거하라”는 안내방송을 지속하기도 했다. 이는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나온 것인데, 이 법은 철도시설 또는 차량에서 폭언 또는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를 금지(48조)하며, 이를 어길 경우 퇴거(50조)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장애인 이동권 요구를 막을 근거가 없자 ‘고성방가’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장연 활동가들은 11시간 넘게 삼각지역에 갇혀 있어야 했고, 그 와중에 무정차 통과는 3회(오후 3시 2분, 5시 24분, 5시 28분) 이루어졌다. 전장연은 폭력적 진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했고, 오후 6시 30분경 장애차별조사과 조사관이 현장 조사를 하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사실상 전장연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법원이 낸 강제조정안(공사 측이 서울시 지하철 전체 역사 275개역 중 엘리베이터 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19개 역사의 엘리베이터를 2024년까지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 운행을 5분 초과해 지연시키면 1회당 500만 원을 공사에 지급)조차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시위로 지하철을 연착시키면 무관용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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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장은 1일 MBN 방송에 출연해 조정안을 두고 “비합리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오 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늦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조정안은) 1년 동안 전장연이 시위로 열차를 지연시킨 것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도 서울시가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1년간 손해를 본 것이 6억 원 정도인데, 내일부터 지하철을 연착시키기 되면 민형사적 대응을 모두 동원해 무관용으로 강력 대응할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오 시장은 전장연과의 만남을 앞둔 9일 “전체 장애계의 입장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만나겠다” 또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이달 19일까지 지하철행동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오 시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했고, 오 시장도 지난 4일 SNS를 통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만남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어야 한다.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선전장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오는 20일부터 1시간 이상 열차 지연이 발생할 수 있는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지하철 타기 시위’는 사실 비장애인은 전철이 잠깐 늦춰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이동권과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버스나 장애인콜택시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데, 당장 서울만 해도 저상버스의 보급률이 생각만큼 높지 않고,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으로만 나가도 저상버스는 흔치 않다. 그리고 장애인콜택시는 심하면 이틀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예약이 불편하고 어렵다.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지하철인데, 그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고, 어쩌면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 시위를 날카로운 눈으로 볼 때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생각할 때다. 단편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이 아직도 19개나 된다.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하는 시설이다.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한 시설은 비장애인 또한 이용하기 편한 시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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