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지난해 나는 많은 옷을 샀다. 솔직히 말하면 그 옷들은 그저 내 옷장에서 적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직 정리는 제대로 안 되어 있다. 그 어정쩡한 상태의 옷장은 이제 막 ‘패션 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한 내가 옷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막상 옷을 잘 입으려고 하니 어떤 옷이 필요한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이 옷은 어떻게 빨아야 하는지, 어떻게 넣어두어야 편한지 등등 그야말로 생각해야 할 것 투성이었다. ‘어쩜 세상에 쉬운 게 단 하나도 없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그 혼란 속에서도 나를 위한 패션에 대한 경험치를 조금씩 착실하게 쌓고 있기는 하다. 일단 많은 옷을 입어보니 내게 어울리지 않은 핏과 색깔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색으로 한동안 유행했던 연보라색의 상의는 내 얼굴을 어두워 보이게 했다. 지난해 유행이었던 블루 셔츠도 마찬가지였다. 입은 사람을 고급스럽게 보이게 한다는 베이지색 톤 온 톤 코디는 내 인상을 흐릿하게 만드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기본 라운드넥의 셔츠들은 내 외모의 장점을 반감시켰다. 아무리 다양한 패션 조언을 들어봐도 나의 개인적인 상황으로 가져와보면 항상 선택지에 한계가 있었다. 지금 유행하는 색깔이 무엇이든 결국 내게는 밝은 노란색이나 뚜렷한 빨강이 훨씬 잘 어울렸다. 베이스 컬러로는 베이지보다는 흰색을 입었을 때 훨씬 안색이 좋아 보였다. 어느 정도 목선이 파진 셔츠와 각이 딱 떨어지는 재킷이 내 매력을 더 살려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옷을 입어보면서 한편으로는 유튜브의 패션 관련 영상들을 틈날 때마다 보고 옷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처음에는 그런 정보들이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영상을 통해서라도 다양한 패션 상품을 접하고 많은 종류의 착장을 보다 보니 문득 쇼핑몰에서 물건을 보는 나의 눈도 서서히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옷에 대한 나의 인지 수준도 깊어졌다. 데이트를 할 때면 전날 미리 코디를 생각해놓았고 돌아와서는 그 착장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단지 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내가 그 옷을 입고 내 몸이 얼마나 편안했는지, 입었던 옷이나 신발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도 주의 깊게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유행하는 패션에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패션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시간 유행을 지켜보게 되었다. 무언가가 유행하면 확실히 쇼핑몰과 거리에서 비슷한 옷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초점은 오직 ‘내가 입고 싶고 입을 수 있는 것’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최신 유행 정보를 접해도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예쁜 옷을 입고 싶어도 나는 편의성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터틀넥 상의는 실내에 들어가면 바로 내 목을 답답하게 하기 때문에 거의 사지 않게 된다. 나는 신고 벗는 것이 간편하지 않은 부츠는 예전부터 질색이었다. 체온이 떨어져 그날 컨디션이 나빠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나에게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 코디는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아무리 지갑만 한 초미니 가방이 유행해도 나는 그런 작은 가방을 살 마음이 전혀 없다. 내 가방에는 적어도 갑자기 생기는 시간을 채워줄 책 한 권과 혹시 모를 추위나 에어컨 바람에 대비할 수 있는 얇은 스카프(혹은 카디건)이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예쁜 디자인이라도 백만 원이 넘어가는 가방 또한 구입할 생각이 없다. 나는 가방이라는 물건이 내게 주는 기능적인 효용과 구매 가격 사이에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균형이 조화로운 범위 내에서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종류를 불문하고 옷과 패션 소품 쇼핑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나의 원칙이다. 나는 그런 기준이 있는 한 패션 세계에 어떤 유행이 오든 내 생활에 주는 영향은 어차피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2년 넘게 유행의 오고 감을 지켜보면서 유행이라는 것을 보는 나의 눈은 바뀌었다. 예전에는 유행이 별 의미 없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저히 나의 생활을 기준으로 바라보니 유행은 내게 옷 입는 방법을 새롭게 알려주는 창구이자 동시에 내게 어울리는 새로운 옷이나 소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떤 유행의 주기가 지나면 특정 디자인이나 기능의 상품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이전에 한참 오버핏이 유행할 때 허리 라인이 살짝 들어가는 상의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반대로 내게 맞는 핏이나 색상이 한참 유행할 때는 그런 제품을 원하는 색상과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또한 유행의 좋은 점은 옷을 입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양말을 신고 샌들을 신는다든가, 스웨터를 목도리 대신 두른다든가 하는 것은 유행의 제안이 없었다면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활용법들이었다. 이번에 나는 만약 자신의 외적인 매력과 생활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유행을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새로운 유행이 와도 마음이 불편할 것도 문제 될 것도 없다. 내게 맞는 것이면 적극 활용하고 아니면 그냥 재미있게 보고 지나친다. 그러면서 나의 옷 입는 생활도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옷 입기를 연습하면 결국 패션에 대한 센스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패션 센스 아니었다. ‘옷 입기 혹은 패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답이었다. 그 대답은 패션의 근본은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다. 보통 패션은 자신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화보에 나오는 패션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외부의 거대한 트렌드에 맞춘 옷으로 무장했을 때 남들이 보낸 호기심과 환호에서 생긴 자신감은 집에 돌아와 그 옷을 벗는 순간 사라지는 허상이다. 나는 그 자신감이라는 것이 현실적이고 건강한 것이 되려면 그 밑에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확신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매력과 단점이 있고 어떤 삶을 지향하며 현재 어떤 일정 속에서 어떤 환경적 한계를 마주하고 있는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나의 상황을 잘 받쳐주는 옷을 선택하는 능력을 다듬어 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패션이다. 그 선택이 보여주는 바가 바로 개성이며 그 흔들리지 않는 세계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무엇을 입든 ‘잘 입은 옷’이 보여주는 진정한 매력은 최신 트렌드나 옷의 가격표가 아니라 그렇게 시간을 들여 다듬어 온 내적 능력에서 온다. 패션 산업은 그저 매 시즌 우리에게 조금 더 새로워진 아이템들을 제안하고 선택지를 넓혀줄 뿐이다. 그 아이템들로 자신의 삶을 더 흥미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소비자인 우리들이 나다운 모습으로 일상에서 발휘하는 창의력이다. 그리고 그런 소소하고 다채로운 해법들이 많아질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돈을 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의 최종 목표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확신이 그렇게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면 내게 있어 정말로 멋진 패션은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세운 목표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내가 되고 싶은 멋진 할머니는 온갖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옷을 잘 맞게 활용하는 사람이다. 자기만의 경험이 담긴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미니멀리즘과 절제의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하고 자신에게 맞는 옷맵시가 드러날 만큼, 옷이라는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나라는 인간의 매력을 이해하는 노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그런 서툰 옷 생활자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옷 입기에서 많은 실패와 작은 성공들을 반복하며 그 사이를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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