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간 길을 더 많이 기억한다
잘못 간 길을 더 많이 기억한다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1.1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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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반2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오마르의 폭스바겐

오마르의 폭스바겐은 결국 우리 앞에 섰다. 반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호기롭게 진과 나와 지크란을 태우고 호수와 도시를 둘러보게 해주겠다던 오마르는, 우리의 연락에 못 나가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는 정 필요하면 자기 대신 친구 한 명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진과 내가 전해주는 오마르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지크란은 그 자리에서 당장 오마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도 버스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도 지크란은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화로 오마르에게 퍼부었다. 어떻게 약속을 이런 식으로 지키지 않느냐고, 터키에 찾아온, 쿠르드 지역에 찾아온 손님들을 어떻게 내팽겨 칠 수 있느냐고 지크란은 말한 듯했다. 전화를 끊은 지크란이 우리에게 곧 오마르가 올 거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요새 말하는 ‘맑은 눈의 광인’처럼, 지크란의 눈이 밝았다. 굳이 꼭 태워주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폐를 끼치는 거 같아 오마르에게도, 지크란에게도 미안했다. 내키지 않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만큼 어색한 일도 없는데, 괜히 일을 벌인 지크란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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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오마르가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오마르는 친절하고 담담한 얼굴이었다. 미안, 집에 바쁜 일이 있어서 조금 늦은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고 그는 우리를 차에 태웠다. 도시의 관광지와 호수를 둘러보게 해줄게. 그가 말했고, 지크란과 함께 긴 대화를 나누었다. 도시 중앙부에 있는, 오래된 왕국이 자리했던 성채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그의 폭스바겐에서 새 차 냄새가 났고, 지방 도시 특유의 낡은 느낌이 거리에 그대로 있었다. 한국으로 친다면 춘천이나 진천쯤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꾸며지지 않은 투박하고 낮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터키 최동단에 있는, 인구 40만의 도시였다. 기원전 7~8세기경에는 고대 왕국 우라르투의 수도였고, 그 이후에는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인들의 왕국이 들어선 곳이었으며, 지금은 터키의 땅이 된 도시. 여전히 쿠르드족이 살고,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성소가 있는 도시. 수많은 역사가 이 도시와 호수에 얽히고설켜 있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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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가 태워다 준 성채는 무척이나 높았다. 도시 중앙에 솟은 고원 한 가운데에 오래된 왕국의 유적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오마르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내 이름을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영어로 내 이름을 주로 민키, 라고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어쩐지 그냥 민기, 라고 소개했고, 오마르는 누구보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나를 민기! 하며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오마르를 쫒아가 보니 그는 작은 돌덩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돌에 우라르투어가 쓰여 있어. 2000년도 더 된 왕국이다. 정말 오래된 곳이지. 신기하지? 오마르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관광 가이드의 역할을 맡은 바에, 충실하겠다는 태도였다. 2000년이 더 된 역사의 흔적 앞에서 우리는 걸었다. 지크란이 쿠르드족 노래를틀었고 나는 그 선율이 마음에 들어 지크란과 함께 흔들거렸다. 지크란은 더 밝아졌고, 나는 그 노래가 마음에 든다며 맞장구를 치며, 노래 파일을 넘겨받았다. 작은 소풍이었다. 지크란 역시 처음 와 보는 도시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을 테니, 즐거워 보였다. 오마르가 우리를 잘못 데려가기 전까지는.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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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

고원의 위로 올라가는 길은 정해져 있었다. 남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잘 닦인 길로 올라가면 되는 것처럼, 그곳에도 오르는 길이 있었다. 그런데 오마르는, 어릴 적 친구들과 다녔던 비밀스러운 길이 있다며 우리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자기만 믿으라며,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좋은 길이 있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를 따라 향한 길은, 갈수록 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흔적이 적었고 숲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나무토막을 밟아 건너고, 길게 내려온 나뭇잎에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꽤 오래 걸어야 했고, 체력이 좋지 않은 지크란은 점점 더 무서워했다. 이게 맞는 길이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가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어쩌면 오마르가 다른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닌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크란의 얼굴에는 분명한 근심이 느껴졌다. 오마르를 만나기 전에 이미 지크란은 우리에게 낯선 터키 남자를 믿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마르를 곧바로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겠으나, 나는 지크란의 우려가 무엇인지 알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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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무서워, 지크란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뒤를 따라 오고, 자신만만했던 오마르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쩌면 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 길에 갔던 게 언제냐고 물으니 오마르는 거의 20년 전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즈음에 친구들과 다녔던 길의 추억을, 그는 갑작스러운 외지인들의 방문에 떠올린 것이다. 오래된 기억은 오래된 왕국만큼이나 다르게 포장되기 마련이라서 그의 길은 거의 갈피를 잃고 있었다. 우리는 의심하며 따라갔고, 오마르는 혼자서 헤맸다. 그렇게 풀을 헤치며 나아갔을 때 우리 앞에 있던 것은 성채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 방금 막 화전을 위해 불태운 너른 밭이었다. 성채가 있는 고원은 우리의 옆으로 절벽처럼 솟아 있고, 우리의 오른쪽으로 넓은 밭이 있었다. 멀리서 아직도 타고 있는 밭의 검은 연기가 흔들렸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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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태운 밭은 어둡고 따뜻했다. 나는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검게 탄 밭의 온기가 발에 조금씩 느껴졌다. 적당히 타오른 온기가 발을 감쌌다. 지크란은 여전히 무섭다, 무서워, 말을 하며 우리의 뒤를 따라 왔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안 우리들은 한데 모여 멀리 타고 있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 뒤로 작은 모스크가 보였다. 오마르는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자기가 길을 모른다는 것을 시인했다. 우리는 묵묵히 왔던 길을 되돌아 왔고, 원래 올라야 했을 길을 올라 고원의 정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오마르가 친구들을 숨겨 놓고 우리에게 강도짓을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잘못 들어간 그 길을 오히려 더 많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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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란은 이제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다시 쿠르드 노래를 틀고 흔들거렸다. 고원의 정상에 다다르니 반의 시내와 호수가 그대로 보였다. 한눈에 안 담길 정도로 큰 호수가 도시의 바로 옆에 그대로 있었다. 여기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또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오마르와 나와 진과 지크란은 몇몇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쿠르드인의 증오를 생생히 느꼈다. 그들이 우리를 학살했어. 오마르가 눈을 부시며 말했다. 1세기 전의 역사 속에서, 터키와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인들은 (혐의를 따지기 이전에) 서로를 죽고 죽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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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는 우리의 부탁으로, 근처 대학 내에 개방되어 있는 ‘반 고양이 보호소’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터키시 반’이라는 고양이 품종은, 털이 희었고 무엇보다 양 눈의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 고양이들이었다. 한 쪽은 푸른색, 한 쪽은 초록색, 혹은 다른 색의 눈을 가졌다. 반, 하면 호수와 그 고양이를 대부분 떠올렸다. 보호소에는 수 십, 수 백 마리의 고양이들이 넓은 우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각각 다른 색깔의 눈을 뜨고, 각각 다른 얼굴로. 진과 나와 지크란과 오마르는 그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동자가 무슨 색깔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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