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간단해서 어려운 사기의 기술
너무 간단해서 어려운 사기의 기술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3.01.18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정다은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어느새 2023년이다. 농협에서 나눠준 달력에 적힌 숫자를 보고 있노라니 나도 참 웃기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슬쩍 든다. 서른 살까지만 사람으로 살고 죽는 게 좋다는 생각이랄까 주장을 나는 이십대 초반 시절에 열심히 떠들고 다녔었다.

서른 살이 넘으면 온갖 때가 묻어서 악취가 진동하기 마련이라는 그런 멍청한 생각이 이십대 초반의 나를 압도했다. 멍청한 생각답게 내 나이 서른은 금방 왔다가 바닷물과 합류해 버린 한강물처럼 흘러가 있었다. 깜짝 놀라서 새로운 맹세를 했다. 서기 2000년까지만 사람으로 살자고.

그랬던 내가 오늘, 2023년 계묘년이라 표시된 달력을 보고 있으니, 내가 나를 속인 것인가? 내가 나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야? 하는 의문이 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벚꽃처럼 쏟아진다. 그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멍청한 생각을 해본다.

아무래도 2023년 올해는 좀 특별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기와 거짓말로 인생을 통째로 근사하게 포장해 온 사람들의 그 사기와 거짓말 기법이 완전하게 감춰져서 승리를 노래할 것 같기도 하고, 눈부신 태양에 노출된 구더기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쪼그라들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 사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생각이 나를 유혹한다.

생각해보면 사기의 기술은 매우 간단하다. 간단하지만 매우 어렵다. 타인의 슬픔과 아픔을 나 자신의 아픔과 슬픔처럼 인식하는 공감능력, 이것 하나만 쏙 빼서 던져버리거나 나는 그런 데 관심 없다, 하면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어려운가.

어떤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3퍼센트는 사기나 도둑질 등 남의 것을 빼앗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 중에 일부는 인생 말년에 소위 개과천선이라는 것을 해서 뒤늦게나마 완전히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사기술이 완전 체화된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큰 그림’을 아쉬워하느라 죽는 줄도 모르게 죽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한 사기는 앞뒤좌우 분간도 잘 못 하던 완전 철부지 시절이었다. 그때 나이가 아홉 살이었나 열 살이었나, 하여튼 학교 뒷마당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서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는 가을이었고, 책보를 매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이었으니 시간은 아마 오후 두 시 아니면 세 시? 하여튼 논두렁에 깔린 내 그림자가 제법 길어서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나는 시간대였다.

그림자를 왜 이렇게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이상하고 신기하게도 내가 태어나던 해에 남자애는 우리 마을에 달랑 두 명뿐이었고, 여자애는 열 명도 넘었다. 남자애 하나마저도 경기도 이천의 무슨 벽돌공장인가로 이사를 가버렸다. 슬프게도 같은 반에 남자애는 이제 달랑 나 혼자뿐이었다. 남녀의 성비가 어지간했으면 함께 몰려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남자애 하나에 여자에가 열 명도 넘다보니 나는 그만 주눅이 들어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고, 말동무가 필요할 때면 그림자를 쳐다보며 너 누구냐? 누구냐 하는 식의 혼잣말로 외로움을 달래야만 했다.

하여튼 뭐 그랬다. 그 해의 그날, 우리 마을은 통째로 사기를 당하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조짐이 영 수상쩍었다. 일단 들판에서 한참 일해야 할 어른들이 하나도 안 보였다. 학교를 나와서 낮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환하게 바라다 보이는 우리 마을까지는 대략 천오백 미터 정도. 내용은 알 수 없어도 마을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낌새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거리였다. 무엇보다 개 짖는 소리가 어지럽게 갈팡질팡했고, 사람들이 마을 앞 여기저기에 한 무리씩 모여 있는데 그 모양새가 너무 이상했다.

뭐냐 이거?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죽는다고 뛰기 시작했다.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꼬맹이들의 울음소리와 어른 남자들의 비통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도 공격이나 경계의 신호가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이 깔린 일종의 비명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보았다. 우리 마을에는 단 한 대도 없는 자전거가 열 대도 넘게 그것도 번쩍번쩍 빛을 내며 마을 앞 시정을 중심으로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것을.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타고 다니는 허름한 자전거에 익숙한 내 눈에 비친 열 대도 넘는 자전거가 뿜어내는 눈부심은 내게 어마어마한 외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권력이요 공포였다. 그 전대미문의 공포 앞에서 마을은 통째로 완전히 쪼그라들어 가고 있었다.

남자 어른들은 그나마 선 자세로 줄담배를 피워가며 울분이라도 토해내고 있었지만, 엄마들과 아이들은 아니었다. 하도 울어서 이제는 울 기운조차 없는 모습으로 여기저기 퍼질러 앉아 있는 엄마들과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로 엄마의 치맛자락을 뜯어내는 꼬맹이들의 모습은,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참상 그 자체였다.

번쩍이는 자전거를 타고 들이닥친 넥타이 차림의 신사들은 3인 1조가 돼서 집집마다 부적 같은 딱지를 붙이고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랬다. 그것은 부적이었다. 손을 대면 안 되는 것, 뜯어내면 절대로 안 되는 것, 만약에 손을 대면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는다는 경고의 부적.

그것이 이른바 차압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와 세월이 필요했던가. 그것은 밥 해먹는 솥단지에도 붙었고, 양식을 넣어두는 항아리에도 붙었고, 닭장에도 붙었고, 돼지우리에도 붙었고, 황소의 코뚜레에도 붙었고, 쟁기와 괭이 심지어는 호미에도 붙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그냥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굶어죽었을까? 아니었다. 당일에는 하도 겁이 나서 정말로 아무 짓도 못 하고 우는 소리나 냈지만, 호롱불도 켤 생각을 해보지 못한 채 맞이한 시커먼 밤이 가고 아침이 왔을 때는, 누가 먼저 그런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퐁퐁 환상적으로 새 나왔다.

아마도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하자는 결의를 하고서 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끼들을, 가족을 굶길 수 없다는 엄마들의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결기가 솥단지에 붙여놓은 차압딱지를, 양식 항아리에 붙여놓은 그놈의 부적을 떼어내서 불쏘시개로 삼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틀인가 사흘 뒤에, 도망 간 마을 이장이 붙잡혀서 유치장에 갇혔다는 얘기가 꿈결처럼 들렸다. 이장이 도망갔다는 얘기 자체가 나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무슨 짓을 어떻게 했기에 도망질까지 쳐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수 없었고, 너무 무서워서 어른들에게 꼬치꼬치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귀에 들리는 얘기는 모조리, 하나같이 꿈속 같기만 했고, 탐정 만화 같기만 했다. 꿈속 같기도 하고 탐정 만화 같기도 한 그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그 뒤로 십 년 이상, 내 나이 스무 살을 넘어서였다.

이장의 큰아들이 부산에서 무슨 공장인가를 다녔다. 일 년, 이 년, 공장생활을 하는 동안 이장의 큰아들은 공장 사장이 매우 부러웠고, 부러워서 자꾸 보다 보니 공장 사장이란 태어날 때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공장 사장이 도박에 심취해서 큰돈을 잃었고, 공장은 헐값에 넘어갈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장의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했고, 그리고 헐값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공장을 매입해서 사장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장은 큰아들의 포부가 대견해서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리고 웃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허허, 웃고나 말고자 했지만, 큰아들은 매우 진지했고, 일생일대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놓치면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식의 절박감을 무기로 들이대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큰아들의 하소연이 거듭됨에 따라 이장의 마음에, 머릿속에 슬그머니 딴 것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얼마면 그 공장을 인수할 수 있겠느냐고, 큰아들은 의기가 양양해져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그렇게 해서 합이 얼마나 나온다고 노련한 수학선생처럼 막힘없이 풀어놓았다.

이장은 감격했다. 내 아들이 저렇게 훌륭했던가 싶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우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말을 꺼내는 즉시 이장 노릇 그만두라고 할지도 몰랐다. 결국 아무도 모르게, 귀신도 모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관건은 기한이었다. 언제까지 숨겨야 하지?

이 문제에 대해서도 큰아들은 거침이 없었다. 제대로 풀리면 일 년 안에, 어렵게 풀린다 해도 이 년은 안 걸린다는 큰아들의 자신만만한 계산에 이장은 드디어 그러면 좋다, 결정을 하고 말았다.

교통 사정이 좋은 시절이었다면 이장이 감히, 차마 그런 무모한 결단을 내릴 기회 자체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마을 전체를 통틀어 자전거 한 대도 아직은 없던 시절이었고, 장날에도 장을 가자면 십리도 넘게 걸어야 했다. 때문에 관공서에 볼 일이 있어도 쉽게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장이 사나흘에 한 번씩 읍내를 가서 마을 사람들의 관공서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해 오는 게 관례화돼 있었다.

관공서에서 무슨 일을 하자면 인감도장이 있어야 했다. 비료 한 포대를 농협에서 외상으로 사자고 해도 인감이 있어야 했다. 인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런 중요한 물건은 육중한 금고 같은 데 넣어 보관해야 했지만, 금고는커녕 그럴 듯한 서랍장 하나 없는 농촌 살림에서 인감은 차라리 애물단지에 가까웠다. 철없는 아이들이 툭하면 그것을 갖고 놀다가 잃어버렸고, 철 든 어른들도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필요한 때 찾아내지 못하는 불상사 또한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착안해낸 것이 마을의 모든 인감도장을 이장이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한 때 즉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장에 대한 신뢰가, 믿음이 약했다면 마을 사람들도 인감을 무조건 이장에게 맡겨놓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 그것이 있었다. 신뢰라고도 하고 믿음이라고도 하는 그것. 근거를 찾기로 하자면 딱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종교적 색채마저 강해서 의문이나 질문이 있어도 건방져 보일까봐, 또는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입을 다물어버리게 하는 그것, 이장은 그것은 제대로 크게 활용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이 그 사건의 진행과정을 아주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장이 인감을 멋대로 들고 다니며 은행에서 돈을 빌린 초기에는 감쪽같이 몰랐다 해도, 세월이 흘러 은행이나 법원에서 날아오는 각종 통지가 있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문제는 마을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송사 같은 복잡한 일을 경험한 사람이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별 같잖은 게 다 있다는 식으로 통지서를 팽개쳐 버렸고, 일부는 이장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이장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별 것 아니라는 것뿐이어서, 강제 집행을 당하는 그날까지도 그냥 태평스럽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장이 저지른 범죄로 인한 빚을 갚아내느라 십 년도 넘게 생고생을 했지만, 이장 자신은 일 년인가 이 년인가 하여튼 짧은 감옥 생활을 한 것으로 면죄부를 받고 말았다. 이장이 자신의 범죄로 해서 잃은 것은 집 한 채와 논 두 마지기뿐이었다. 집은 철거를 했는데 이게 또 코미디 중에 코미디였다.

나무와 흙과 돌과 볏짚으로 구성된 집을 철거해서 다른 데 옮겨 짓는다고 했지만, 막상 철거를 해놓고 보니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는지 어쨌는지, 목재만 따로 분류해서 쌓아놓은 채로 일 년, 이 년, 십 년도 넘게 방치해서 들쥐와 뱀들의 소굴이 되어갔고, 그리고 결국에는 삭고 썩어서 사라져 버렸다.

그 사건 이후 이장의 큰아들을 본 사람은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내용이 갈팡질팡 오락가락이어서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부터 놀라운 증언이 나왔다. 막내 동생이 도시생활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집을 한 채 지었는데 그 집의 소유권이 장남인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해서 대판 싸웠다는 얘기였다.

고향에 와서 집을 지은 것 자체는 막내가 자신의 돈으로 했지만, 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대리인 격인 큰아들은 자신이기 때문에, 집의 소유권은 자동으로 자기에게 있는 거라고, 그러니 집을 내놓으라는, 그런 황당한 주장을 구십 나이가 다 돼서 한다는 거 자체가 놀랍고 재미있다고, 사람들은 한동안 그 이야기를 소재로 떠들어대느라 시간 줄 몰랐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마약이나 도박이 그렇듯이, 사기도 역시 한 번 손을 대면 끊기 어렵다는 결론을.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