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1970’s 도곡시장

도곡시장 초입
도곡시장 초입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높은 고층 아파트들과 롯데백화점 강남점 사이에는 작고 소박한 재래시장이 있다. 지하철 수서분당선 한티역 8번 출구를 나오면 몇 걸음 내에 작지만 정겨운 강남의 재래시장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도곡시장’이다.

 

5양쪽 길을 두고 시장이 형성됐다
양쪽 길을 두고 시장이 형성됐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도곡시장은 서울 강남 대치동과 역삼동 중간에 있다. 재미있게도 도곡 시장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역삼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50년째 명칭은 도곡시장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과 좀 안 어울린다. ‘이런 곳에 어떻게 재래시장이 있을까’ 싶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곡시장 초입에는 시장을 알리는 커다란 조형물이 손님들을 반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거대한 트리도 함께 있다. 조형물에는 1970’s 도곡시장이라는 팻말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1970년의 도곡시장이라니, 지금은 2023년이니 벌써 시장의 역사가 50년은 되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40년 전통’이라는 간판을 당당하게 단 점포들이 눈에 들어온다.

 

4도곡시장
도곡시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1970년 도곡시장’

도곡시장에 가면 빠지면 섭섭한 먹거리는 바로 각종 튀김과 분식을 판매하는 점포와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떡집이다. 직접 만드는 손두부집, 수제 빵집, 간장게장, 묵 판매집, 반찬집, 수산물 판매점 등 짧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 길 사이에 점포가 도곡시장의 전부지만 이곳은 재래시장답게 없는 게 없다.

이름 있는 브랜드 빵집과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에서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어묵, 빵, 두부, 묵 등의 수제 먹거리는 추운 마음을 녹여준다. 국내산 콩으로 즉석에서 만드는 두부 판매를 알리는 상점의 간판이 정겹다. 국산콩으로 만들어 GMO 걱정도 없다는 사장님의 말씀. 두부는 물론 국산 콩으로 만든 콩물도 이 집의 대표 메뉴란다. 두부뿐만이 아니다. 들깻가루, 된장, 콩나물, 새우젓, 만두피, 된장, 간장, 가래떡 등 상점에 오밀조밀 수십 가지 상품들이 가판대에 나와 손님들을 기다린다.

 

11다양한 건어물들
다양한 건어물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각종 육류가 진열된 축산물 매장
각종 육류가 진열된 축산물 매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도곡시장은 1970년대부터 상인들이 좌판을 내어 조금씩 농수산물을 판매하던 것이 시장으로 발전됐다고 한다. 강남 인근에 제대로 된 재래시장이 별로 없어 시장은 어느 곳보다 활기차게 운영됐다. 하지만 1990년대에 대한민국이 고도성장하며 특히 강남권 상권이 개발되면서 시장은 다소 축소됐다. 특히 백화점이 들어서고 주변 아파트들이 재건축되어 새로 건물을 올리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생겼고 이로 인해 많은 상인들이 이주해 나가면서 시장의 기세는 다소 꺾였다는 후문이다. 과거에는 많은 노인들이 직접 나물을 다듬고 깎으며 소규모로 좌판을 여는 모습도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상점으로만 자리하고 있다. 시장의 역사가 50여 년인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으랴. 그렇게 도곡시장에도 여러 고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애물을 넘고 넘어 아직도 건재한 모습으로 남아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6겨울철 지나칠 수 없는 간식거리들
겨울철 지나칠 수 없는 간식거리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겨울에도 찐옥수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겨울에도 찐옥수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지금까지 도곡시장은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며 주변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래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도곡시장처럼 요즘 방문객들이 많이 오가며 활력을 보이는 시장은 드물어 보인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만두 가게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기름 속에서 건져낸 꽈배기, 튀김, 잉어빵의 유혹은 참기 힘들다. 지나가던 오토바이 배달원도 지갑을 열 만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먹거리들이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왔다가 입에 넣고 오물오물. 숭덩숭덩 무심한 칼질에 야들야들 떨어지는 족발은 또 어떤가. 구수한 누룽지와 찹쌀가루, 멥쌀가루가 떡집 가판대에 나와 있다. 떡집은 손님들의 손짓에 분주한 모습이다.

 

싱싱한 수산물
싱싱한 수산물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싱싱한 생선이 가득한 수조
싱싱한 생선이 가득한 수조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이 오면 빼놓을 수 없는 생선, ‘방어’다. 도곡시장 내 오래된 횟집 유리창에는 ‘겨울철 제철 대방어’라는 신메뉴가 나붙었다. 방어는 일반 생선과는 달리 기름진 쇠고기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생선이다. 방어의 제철은 13월에서 1월로 찬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횟감이라고 한다. 특유의 식감과 기름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중 방어는 클수록 값을 더 쳐주는데 대(大) 방어라고 불리려면 보통 8kg가 넘어야 한다. 10kg가 넘으면 특대방어다. 크기가 큰 만큼 부위도 다양하다. 삼각살, 뱃살, 목살, 배꼽살, 뱃살, 옆구리 살 등 마치 쇠고기 같다.

 

겨울하면 방어다
겨울하면 방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이러한 방어는 부르는 게 값이다. 대방어는 대부분 시가로 표기되어 있어 한번 먹으려면 적금을 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도곡시장에서는 예외다. 2인이 오면 4만 원 대에, 3인 이상은 5만 원 대, 특대방어로 4인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양도 7만 원 대로 바가지 쓸 걱정은 없어 다소 안심이 된다. 둥그런 수조에는 방어가 부지런히 헤엄치고 있다.

 

추억의 뻥튀기
추억의 뻥튀기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고층 아파트 숲 사이 강남을 지켜본 작은 재래시장

깔끔하게 단장해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한 도곡시장 상가 건물에는 세탁소, 옷수선 상가, 미용실 등이 자리 잡고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시골 재래시장에서 볼만한 뻥튀기들도 판매한다. 뻥튀기는 뻥튀기 기계 속에 넣는 곡물에 따라 그 맛과 모양이 다채롭게 변형되어 만들어지는 간식거리다. 어린 시절 장날 혹은 재래시장에서 “뻥이요”라고 소리치면 기계에서 커다란 파열음을 내며 뻥튀기가 만들어졌다. 시장 내 상점에는 쌀 뻥튀기, 옥수수 뻥튀기, 현미 뻥튀기, 마카로니 뻥튀기 등 그 옛날 뻥튀기처럼 다양한 뻥튀기들이 있었다.

 

시장내 슈퍼
시장내 슈퍼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도곡시장에는 짐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주차장도 완비되어 있다. 시장 내 마트 ‘대농슈퍼’에서 일정 금액 이상 사면 주차장 할인도 된다.

도곡시장에는 매번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지난해 10월에는 방문객들에게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골목상권의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양재천 수변 음악회’와 ‘도곡 낭만 시장 행사’가 진행됐다. 도곡2동 부녀회가 행사를 도와 더욱 풍성한 시장 축제가 벌어졌다. 새마을 부녀회가 준비한 각종 전과 음식 냄새가 시장 골목 구석구석에 풍겼다. 도곡2동 문화센터 앞에 마련된 좌판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좋아할 요술 타투 행사와 풍선 불어주기 행사가 진행됐다. 따사로운 햇빛과 바람을 타고 가수들의 노래가 하루 종일 골목에 가득 찼다. 덮밥집, 카페, 디저트 카페, 파스타 전문점, 동아시아 음식 전문점, 와인바, 꽃집, 수제 비누 전문점 등 주변 상점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좌판을 마련해 시음 행사와 판매를 병행하며 방문객들의 호응을 모았다.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도곡시장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도곡시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매년 설과 추석 명절 이벤트도 풍성하게 열린다. 최근 모처럼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손님들의 발길이 주춤했던 재래시장에 혈색이 돌고 있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히는 전염병은 우리 세대에서는 처음이다. 100여 년 만에 도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니 시장 나오는 것도, 시장에서 무언가를 사는 것도 꺼려졌다. 빨리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시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북적되면 좋겠다. 시장은 한산하면 재미가 없다. 강남에서 오랫동안 이 작지만 알찬 재래시장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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