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드라마 ‘해치’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추운 겨울이다. 겨울철 실내 활동이 늘면 비밀로 전파되는 특성을 가진 코로나19는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호흡기 질환인 다른 독감 인플루엔자, 비염, 감기 등도 함께 덤빈다. 첩첩산중이다. 신년 들어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또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전 세계 과학자들은 코로나19의 감염세가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및 입원 환자 수는 계속 급증하고 있지만 이는 이제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사람들은 슬프게도 이제 확진자들과 사망자들의 수치에 이제 익숙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와 같이 사망자가 급증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하지만 매일 끊임없이 사망자는 나오고 있다. 과학의 시대에서도 이처럼 몇 년째 바이러스 때문에 쩔쩔매는데 의료시설이나 과학 시설, 위생 시설 등이 모두 부족했던 조선시대에서는 역병을 어떻게 다루고 치료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다룬 드라마가 바로 2019년 2월부터 5월까지 SBS에서 방영된 ‘해치’다.

 

SBS 드라마 '해치' ⓒ위클리서울/ 공식홈페이지

영조시대, 기묘한 전염병이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말 영조시대, 충청도에서 시작되어 기묘한 전염병이 전국에 퍼져간다. 드라마 해치에서 영조(정일우 분)는 신하들의 계속되는 원성에 직접 전염병을 해결하고자 나선다. 조선왕조실록 역병 조문에 따르면 1392년부터 1864년까지 500여 년 동안 1400여 건의 역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왕조 역사가 500년인데 조선 시대 내내 얼마나 많은 전염병과 싸워야 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따라서 임금은 집권 내내 역병을 다스리는 데 크게 역점을 두었을 것이다.

치료제가 없던 코로나19 팬데믹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방역 정책은 바로 ‘개인 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조선 시대에서도 전염병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한 일은 ‘격리 조치’였다. 즉 사람들이 만나지 않는 것이 전염병의 고리를 끊는 행위였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서는 증세가 나타난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부터 막았다. 가장 철저하게 감염자들의 왕래를 막은 것은 도성이다.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한 일이었다. 환자들은 성 바깥에서 죽어갔다. 마을을 폐쇄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했다. 마을 내 감염자들이 전부 죽으면 마을을 불태웠다. 균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행했을 것이다. 산발적으로 감염이 발생하면 감염자들을 일정 지역으로 한데 몰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의하면 감염자들은 무인도에 모으거나 한데 모으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죽이기도 했다. 드라마 해치에서 영조는 대신들을 불러 전염병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중지를 모았다. 영조는 먼저 국왕의 직속 사법 정보기관인 의금부를 불러 각 지방에 경력(의금부 내 종사품 관직)과 군사 3개 초(약 백 명 단위의 군대를 편제)를 파견해 병자의 이동을 통제했다. 이어 활인서에 병자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 내 환자를 구하는 업무는 활인서에서 했다. 혜민서는 의약품 지급 및 일반 백성을 돌보는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활인서에 병자들이 어떤 규모로 어떻게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대신들은 활인서에 병자들이 총 몇 명이나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영조는 혜민서의 병자들을 성별 및 연령별로 파악해 일각 단위로 보고하라고 호통쳤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성부의 포도청의 역할이다. 영조는 포도청에 일러 도성민을 통제하라 일렀다. 물가 상승도 전염병이 생기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정 물건들이 품귀현상을 보이고 이때 매점매석이 이뤄져 물가가 폭등하는 것이다. 서민들은 역병과 더불어 물가상승으로 인한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영조는 이를 염두에 두고 경시서(시전관리 및 감독기관)를 통해 쌀값 안정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드라마 한 편에 조선시대에서 역병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SBS 드라마 '해치' ⓒ위클리서울/ 공식홈페이지

정체불명의 역병이 돌면 괴 소문도 함께 돌아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민심이 가장 먼저 동요한다. 사회적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늘 그렇지만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코로나19 초기 사람들은 병에 좋다는 각종 민간요법을 담은 가짜 뉴스를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실어 날랐다. 의사들이 권하는 요법이라는 말까지 덧붙여 그럴듯하게 포장됐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즈는 각국의 소셜 미디어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각각의 미디어 플랫폼에서 다양한 언어로 제작된 뉴스와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중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의 비밀 정부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음모론이 주를 이뤘다. 어떻게 하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는지 대한 가짜 정보도 많았다. 때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코로나19에 걸렸고 중국이 코로나19를 통제하기 위해 인터넷 부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러한 부정확한 정보들은 잘못된 대처 방법과 오류를 발생시켰고 결과적으로 더욱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다.

영조가 가장 먼저 신경 쓴 일 또한 가짜 소문을 바로 잡는 일이었다. 우주선이 화성 탐사를 가는 과학의 시대에도 이러한데 과학이 부재했던 과거 조선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들이 있었을까 짐작이 간다. 가짜 뉴스 중에는 역병이 발발한 이유가 영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영조가 죄를 지어 하늘에서 천벌을 내린 것이라는 것이었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급기야 활인서에서 치료를 받던 백성들도 치료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괴 소문은 박문수(권율 분)가 있던 청주에까지 퍼졌다. 사람들은 주막에 모여 가짜 뉴스를 안주 삼으며 왕을 헐뜯었다. 결국 영조는 결단을 내렸다. 직접 활인서에 가서 병자들을 설득하기에 나선 것. 백성들은 활인서에서 치료받고 있는 병자들을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영조는 자신에 대한 괴 소문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결코 백성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는 절대 (역병이 돌고 있는) 도성을 떠나지 않겠다. 끝까지 백성과 함께 하겠다”라고 단언했다. 왕은 하늘이 내린다고 생각했던 시기, 영조의 설득으로 백성들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한편 역병의 정체는 괴한들의 짓이었다. 영조의 수하들은 ‘우물’을 역병의 시발점으로 추리했다. 역병을 조사하던 달문(박훈 분)은 우물이 이상하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의정부의 통인방 우물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달문은 “다른 곳은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라”라고 하명을 내렸고 수하들은 “새터의 우물, 삼청동 성제정의 우물도 이상하다”라고 보고했다. 이어 역병의 발발원인을 짚어가면서 도성 내 역병이 시작되기 바로 전 의문의 남자가 우물에 수상한 액체를 타는 것이 밝혀지면서 역병의 진원이 우물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유배지에서 탈주한 이들의 음모로 역병이 퍼졌다는 것도 속속 밝혀졌다. 이들은 영조를 음해하기 위해 우물에 독을 탔고 영조의 죄 때문이라는 격문을 뿌렸던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역병의 원인을 알고 이를 대처하며 해결했다. 하지만 우리 현실 속의 역병은 원인도, 바이러스를 확실하게 종식시킬 대안도 없다. 사람들은 코로나19에 익숙해졌는지 실내 마스크도 해제하자고 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바이러스에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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