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2.07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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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직업전선, 송승언, 봄날의책, 2022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어떤 시인을 제일 좋아해?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때로 난감해지는데, 특정한 시인을 이를테면 소위 ‘덕질’을 할 만큼 좋아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시집을 펴서 읽는다. 몇몇 시가 좋을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다 좋을 수도 있지만,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가 좋기는 힘들다. 간혹 그런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별로였던 시집에서 잊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시를 만나기도 하고, 괜히 좋아했던 시인의 새 시집을 읽었는데 도무지 별로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특정한 시나 시집 말고, ‘시인’을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 질문은 내 친구 H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H는 종종 시를 읽고, 시의 감각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포착할 줄 아는 친구였는데, 어디가서 시 이야기를 하면 괜히 쑥스러워 하는 애였다. 왜인지 자신은 남들처럼 ‘자신만의 시인’이 없는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어떤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지 자기도 모르겠다. 나는 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시인을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이 괜히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처럼 들려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떤 사람의 모든 게 다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거나, 엄청난 착각에 빠져있을 확률이 높다. 한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모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사람은 종종 쑥스러워진다. 내가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좋아한다고 할 수 있나.

그러나 하나가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할 수도 있기 마련인 것. 모든 것을 다 알아야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듯, ‘좋아하는 시인’을 말하는 것도 너무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그냥 그 시인의 시가 높은 확률로 나에게 좋으면, 나는 그 시인을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이 높은 확률로 나에게 좋으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처럼 그렇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밖으로든 속으로든 말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러나 돌아와 생각해 보면, 그 ‘높은 확률’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나는 왜 특정한 사람을 높은 확률로 좋아하나.

이 질문은 너무나 크고 넓어서, 또 좁고 깊어서, 단박에 명쾌한 대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나의 감각이 왜 특정한 시인/사람을 좋아하는지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적인 역사가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순히 표면적으로 그 시인의 몇몇 시가 좋았어, 라고 퉁치고 넘어가기 이전에 생각해보게 된다. 그 시를 쓰게 만든 시인의 마음과 행동을, 또 마음과 행동을 지속하고 있는 특정한 자세를. 그 지속된 자세는 바로 ‘태도’다. 나는 어떤 시인/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 때, 비로소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송승언의 '직업전선' ⓒ위클리서울/ 봄날의책

나는 보통 누가 어떤 시인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고민하다가 몇몇 시인의 이름을 댔다. 그중 한 명이 송승언 시인이다. 내가 그의 시집을 읽고 처음 시를 쓰게 되었다는 사적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나는 내 마음대로 이해한 그의 ‘태도’를 좋아한다. 내가 송승언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다른 친구 L은 송승언의 시집을 읽고 오더니, 시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모든 시가 모두에게 좋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나는 L의 말에서 내가 송승언을 좋아하는 어떤 단서를 찾았다.

내가 이해하기에 평소 L이 좋아하는 시는 ‘인간의 시’였다. 인간적인 고통이나 슬픔, 기쁨을 아름다운 문학적인 표현으로 잘 부려 놓은 시들 말이다. 나는 그런 시들을 읽을 때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1인칭의 화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좋은 깨달음 속에 구현해 내는 글들.

이렇게 말하며 그의 취향을 납작하게 만들 생각은 없다. 나도 인간적인 시를 좋아하고, L의 감각은 내가 본 것보다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내면의 감각에 몰두하는 시들은 지나치게 끈적거릴 때가 있다. 자기 상처를 자기가 핥는 슬픈 짐승처럼,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그 몰두를 통해 타인에게 닿을 때가 없지는 않을 것이나, 나는 그런 시가 보여주는 ‘타인들’조차 일종의 거울처럼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 같은 것이 아닌지 종종 의심하게 된다. 시를 읽을 때 속이 시끄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그런 시들을 읽으며 말하고 싶다. 가끔 너의 이야기를 멈추어 보는 것도 좋아.

송승언의 시는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때로, 내면의 깊이를 건너뛰고 보이는 ‘표면’의 이미지에 붙들린 것 같다.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 ‘나’는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간이 쓴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어쩌면 송승언의 화자는 꼭 유령과도 같다. 어떤 무게도, 내면도 없이 그저 세상을 부유하며 표면을 꺼내 이야기하는 존재의 말처럼. 그러니 ‘비-인간’이다. 적어도 몸에 갇혀 있는 인간은 아닌 것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송승언의 시집을 읽은 게 사실 조금 오래 되어서 정확한 분석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의 시에서 그런 비-인간적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의 내면에 깊숙이 꽂혀 정박되지 않는 자유로움 말이다. ‘나’의 자리가 사라지니, 오히려 그 자리에서 타인들이 보인다. 타인들이 기거하고 있는 풍경들이 보인다. 그 풍경들이 있어 왔고, 앞으로 있을 시간이 서린 공간이 보인다. 거기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나의 이야기를 멈추니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미지가 보인다. 나는 인간 송승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다만 시인 송승언의 태도를 좋아한다. 이미 한 번 죽어 본 사람의 시선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고 남들의 이야기를 선듯하게 수집하는 사람, 그렇게 타인에게 닿는 사람. 어쩌면 내가 너무 내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라, 오히려 송승언의 이런 태도를 내 방식대로 곡해해서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송승언의 ‘직업전선’은 시집도 아니고 소설집도 아니다. 에세이도, 실용서도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 왔고 또 있을 법한 직업들을 상상하고, 그 한 명 한 명을 서술자로 삼아 한 꼭지의 짧은 글을 썼다. 시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이기도 한 글들을. 송승언은 시에서 너무나도 강력한 ‘나’라는 1인칭의 자리에서, 서술자를 바꾸어 버렸다. ‘나’가 그렇게 공고하다면, 내가 남이 되면 되지, 하는 것처럼. 시집에서는 텅 비어있던 ‘나’가 이 책에서는 각각의 사람들의 살아 있는 말들로 생생하고 활발하다. 가마꾼이 말하고, 야쿠자가 말하고, 영화감독이 말하고, 창고지기가 말하고, 세상에 한 대 남은 인간 택시기사가 말하고, 닌자가 말하고, 어부가 말하고, 저자가 말한다.

송승언은 책의 부록에서 시인이 될 성정을 지녔지만, 시인이 되지 못하고 각자 다른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썼다. 나는 이 시인의 이런 적극적인 ‘다른 사람 되기’의 태도를 좋아한다. 그것이 곧 혼자만의 내면의 깊이를 포기하고, 외면의 넓이 속에서 모두를 만나게 하는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새로운 ‘형식’ 또한 점차 형식화되고 장르화된 문학책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의 태도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그냥, 나는 송승언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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