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나는 그동안 많은 요리책을 보면서 다양한 레시피를 접해왔다. 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많이 수집한 레시피는 사실 우리 어머니의 레시피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맛이고 좋아하는 맛이고 또 나도 집에서 재현해 볼 수 있는 맛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 그날 어머니가 해 주신 어떤 반찬이나 요리가 맛있으면 바로 바로 만드는 법을 여쭤봐서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요리 노트에는 무엇보다 우리 엄마의 레시피가 가득하다.

문득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한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요리를 배우러 다닌다고 한 적이 있었다. 후에 신혼집 집들이를 간 날 친구는 그간 요리학원에서 배운 요리를 준비했다며 수줍게 음식을 내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메뉴는 소고기뭇국과 닭볶음탕이었다. 손수 요리를 해준 친구의 정성에는 무척 감사했다. 하지만 ‘학원에서 이런 보편적인 가정요리를…?’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그냥 혼수 패키지 느낌으로 재미 삼아 학원에 다녀본 것일 수도 있고 요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기초부터 전문가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문화충격과 같은 경험이었다. 그날 친구가 요리학원에서 배워서 해준 요리는 개성적인 손맛보다는 무난한 보편성을 추구한 맛으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지만 마치 무균실에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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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요리의 맛은 어떨까? 나는 요리를 따로 배운 적이 없고 그저 줄곧 어머니가 요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왔을 뿐이다. 그러니 내 요리의 맛도 아마 어머니의 맛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어머니가 가정주부인 집에서 자란 한국인이라 집밥에 대한 기억이 강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밥이라는 건 세계 어디에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남자친구의 집에서 서양식 집밥을 맛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식당에서 먹어 본 양식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버님이 해 주신 연어구이와 닭구이에는 가정식만이 주는 포근함이 있었고 맛을 꾸미지 않는 건강한 음식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나의 남자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요리하시는 모습을 쭉 보며 자라왔다. 또 피자, 파스타, 햄버거, 심지어 케이크까지, 우리가 주로 사 먹는 서양요리도 집밥으로 먹어왔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특별한 날에 파스타를 먹으러 가는 것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파스타는 그냥 집에서 해 먹는 음식 아냐…?”라는 남자친구의 말이 내게는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른다. 그런 남자친구가 해준 토마토 파스타에는 그가 먹어온 집밥의 느낌이 배어 있었다.

내가 어머니의 레시피를 열심히 적고 있는 이유는 내 입맛에 잘 맞는다는 것 외에 또 있다. 가정식에는 한 가족의 역사와 경험과 취향이 스며 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우리 집 음식의 개성을 어느 정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경상도 출신이시고 아버지는 쭉 서울에서 살아오신 분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한식 요리는 기본적으로 서울식과 경상도식이 뒤섞여 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나는 두 종류의 맛에 익숙하다. 예전에 친구 도시락 속 김치의 젓갈향이 너무 낯설어서 놀란 적이 있었다. 물어보니 어머니가 전라도 분이라고 했다. 내 주위에 전라도 분들이 많이 없다 보니 내게 전라도 향토요리는 확실히 익숙한 맛이 아니다. 물론 요리가 반영하는 것은 역사와 출신 지역만이 아니다. 다른 창작물들과 마찬가지로 요리는 만든 사람의 심성을 많이 반영한다. 가정 요리는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니 더욱 그렇다. 우리 어머니 요리는 그야말로 어머니를 닮아 밝고 다정하고 따뜻한 맛이 난다. 간은 대체로 삼삼하지만 모든 재료와 양념을 아낌없이 사용한 넉넉한 맛이다. ‘엄마의 레시피’는 그렇게 어머니의 개성이 묻어나는 것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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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아는 친구들과 각자 어머니의 레시피를 주제로 ‘엄마의 레시피’라는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재미있게도 미역국이라는 간단한 음식 하나를 놓고도 어머니의 요리법들이 미묘하게 달랐다. 다들 살아온 지역이 다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더 흥미로웠던 것은, 어머니의 레시피를 바라보는 딸들의 관점 차이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 혹은 서울 자취를 이유로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어서인지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는 ‘추억’이었다.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나의 추억이거나 그 음식에 대한 어머니의 추억.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감사와 그리움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그린 에피소드들 속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어딘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그린 어머니는 다른 친구들이 그린 어머니들과는 좀 달랐다. 나는 여전히 지지고 볶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가까이서 우리 어머니를 지켜봐왔다. 내가 본 어머니는 50년대 생으로서는 드물 정도로 남달리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내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기성세대의 면모를 동시에 가지신 분이다. 그래서 나의 에피소드에는 추억 속 그리움보다는 지금 나의 현재를 함께 사는 식구이자 나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어른으로서의 어머니가 그려져 있다. 내게 나의 어머니는 내게 맛있는 밥을 해주신 고마운 엄마이자 동시에 가정주부로 인생 거의 대부분을 보내신 60대 여성이면서 타고난 특정 기질을 가진 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는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우리 엄마’는 우리가 엄마와 맺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의 틀에 비친 모습의 일면일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님과 일찍 혹은 오래 떨어져 살았다면 당연하게도 부모님의 구체적인 모습은 오랜 기억 속 과거에 멈춰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그건 실제로 우리 어머니가 나의 외할머니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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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엄마의 맛’을 기억하신다. 지금은 생선을 즐기지 않으시는 어머니이지만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가 잡아 오신 이름 모를 작은 생선들을 할머니가 양념해서 쪄주시면 그게 그렇게 맛있으셨다고 한다. 또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경상도 토속 음식인 콩잎 장아찌를 찾으시는 유일한 분이다. 어릴 때 많이 드셨던 추억의 맛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자기 어머니의 음식을 자기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맛. 음식이 만드는 사람의 입맛과 생각과 개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맛에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현실 속 어머니의 음식은 예전 맛 그대로 멈춰있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레시피를 기록하면서 나는 ‘엄마의 레시피’ 또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어머니는 이전에도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새로운 음식들을 만들어 보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예 유튜브 요리 채널들을 보시면서 새로운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계시다. 최근에 어머니는 유튜브에서 새로운 소고기 장조림 요리법을 발견하셨다. 그 장조림이 온 가족의 사랑을 받자, 어머니는 과거 내 도시락 반찬이곤 했던 전통적인 장조림의 요리법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내가 기록 중인 ‘엄마의 레시피’에는 그 새로운 요리법이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 집 음식들은 요리법과 재료가 조금씩 바뀌어가며 식탁에 오르고 있다. 그 맛은 어머니 본인을 비롯해서 우리 가족들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맞춰 또 미묘하게 변할 것이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그 과정을 함께 하며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맛을 내 혀와 노트 양쪽에 열심히 새겨나갈 예정이다. 그 맛은 나의 현재와 미래에 스며들고 언젠가는 또 누군가를 통해 부분적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그때 내가 기록한 ‘엄마의 레시피’는 우리 가족의 삶을 반영하는 흥미로운 작은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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