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 홀로 남겨진 폐허
국경에 홀로 남겨진 폐허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2.14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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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고대 도시 아니(Ani)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아니, 아니

어느 순간, 나는 와보리라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거대한 고대 도시의 유적을 걷고 있었다. 무려 1000년 전에 세워진 도시였고, 멸망한 지 700년이 지난 도시였다. 안쪽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부서져 있었지만, 도시의 넓은 터를 가늠하게 하는 무너진 건물들이 비교적 군데군데 남아 있어, 원래 이 도시가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드나들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도시의 이름은 아니(Ani)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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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병기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딱 좋은 이름을 가진 무너진 폐허. 더 이상 도시가 아닌 채 그대로 남아 있는 폐허. 높은 건물들 하나 남지 않고 지나간 잔해들만 남아 있는 거대한 평원으로 햇빛은 계속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현기증이 일었고, 몽롱했고, 코로나도 없었을 때 껴야만 했던 마스크 아래로 내 들숨과 날숨이 따뜻해서 더 어지러웠다. 나는 감기에 걸렸다. 감기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며 거의 아픈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아침부터 몸이 뜨거웠다. 챙겨온 타이레놀이 있었지만 같이 묵고 있던 중국인 단은 중국에서는 이 약이 감기에는 최고라며 내게 알약 몇 개를 건넸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질 거야, 알약을 삼키고 나는 웃었고, 하루의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버스에 올랐다. 유적까지는 카르스에서 두세 시간쯤 걸릴 것이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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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을 먹어 약간 노곤한 상태, 그러나 감기가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은 그 한중간의 상태에서 나는 유적을 걸어야 했다. 그날따라 햇빛이 강해 모든 것이 붉게 일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실루엣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성벽의 문을 지나 나아가면 갑자기 초록색으로 펼쳐지는 초원,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황토색 건물들, 몽당연필 모양으로 세워진 첨탑들,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디로 걷고 있는지 헷갈려 하며 계속 걸었다. 같이 온 단과 진이 옆에서 이야기했고, 간신히 대꾸했지만 내 말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고,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오래전에 이곳에 살아왔고 떠나갔던 사람들의 말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들의 역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이곳은 아르메니아의 도시였다. 아니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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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와 땅의 역사에는 많은 부침이 있겠으나, 이곳의 역사는 더더욱 복잡했다. 지금의 튀르키예 동부는 당연히도 튀르키예의 땅이지만, 이 땅은 원래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에 있었고, 지금의 튀르키예인의 조상인 튀르크족은 한참 나중에야 이곳에 와서 정착했다. 튀르키예인들이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 근방에 계속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이다. 그들은 이곳에 뿌리박고 오래 살아왔다.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한 나라가 바로 아르메니아다. 몽당연필의 끝을 닮은 그들의 아르메니아 정교회 첨탑은 여전한 양식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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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도시

아르메니아와 이 지역의 오래된 역사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근대로 넘어와도 지금 튀르키예의 전신이었던 오스만제국과 소련이 얽혀 있어 복잡한 것은 여전하다. 단지 아르메니아인들은 계속 튀르키예 동부 즈음에 계속 살아 왔고, 동쪽으로 밀려나 지금의 아르메니아라는 나라를 세우게 되었으며, 그들이 유구한 역사 속에 살아 왔던 많은 땅들은 지금 다른 나라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백두산이 있듯, 아르메니아인들의 마음에는 아라라트산이 있는데, 그 만년설 쌓인 높은 영산은 지금 튀르키예의 영토에 있다. 그들이 성스러운 공간으로 삼아 왔던 반(van) 호수의 악타마르섬 역시 튀르키예의 영토에 있다. 자신들의 코앞에 있다. 지금의 아르메니아는 튀르키예 동부와 딱 붙어 있어서, 그들의 수도 예레반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 아라라트산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가진 민족의 영산을, 그들은 그저 본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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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유적지는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의 경계에 있다. 유적지의 끄트머리에 있는 깊은 협곡에 강이 흐르는데, 그 강이 두 나라의 경계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강을 넘어 이어지는 땅이 바로 아르메니아였다. 아르메니아를 눈앞에 두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조금씩 열이 번지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바로 코로나 키트를 사서 검사받고 언제까지 격리되어 있어야하나 고민해야 할 텐데 그때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감기를 나는 어렵게 겪었다. 100년 전,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 벌어진 이 학살에서 최소 수십 만 명이 죽었다고 나는 읽는다. 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죽었지만 쿠르드족과 다른 민족들이 얽혀서, 서로를 죽고 죽였다고 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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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국가의 뚜렷한 경계 없이 섞여 살고 있던 제국의 시대는 점차 저물었다. 튀르키예 동부에 가득했다던 아르메니아의 교회는 부서졌고, 다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은 분리되었다. 많은 죽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 왔던 곳을 떠났다. 힘 센 나라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국경선이 분리되었고, 잊힌 유적은 어쩌다 그 경계에서 이렇게 남았다. 계속 햇빛이 쏟아졌다. 오래전에도, 더 오래 전에도 지금과도 같았을 햇빛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번성할 때 아니 유적의 모습을 그려 놓은 상상도에는,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협곡이 같은 모양으로 있었다. 멸망은 했지만 유적지 곁에서 근근이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소련 사이에 긴장 속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로 유적은 사람 하나 없는 군사지대로 남았고, 2016년이 되어서야 관광객이 허용되었다. 허락받은 지 얼마 안 된 땅을 내가 밟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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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앞에는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모인 몇몇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그넷이나 열쇠고리 같은 것들을 파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데려온 아이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천진했다. 아시아를 지나 유럽으로 향했을 상인들로 북적였다는 도시는 이제 건물 파편으로 남았고, 그 앞을 여행자들과 군인들과 장사꾼들이 채웠으나 평원은 너무 넓어서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도시를 느꼈다. 이곳에서 말하고, 살고, 찢기고, 떠났을 사람들의 흔적을 괜히 느꼈다. 병균이 내 몸을 뜨겁게 헤집는 것처럼 자꾸 누군가의 흔적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나간 시간은 그저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어떤 자국을 남기고, 그 자국을 보는 사람들은 오늘처럼 그 시간을 멋대로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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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야 할 버스를 놓쳤다. 단이 버스 시간을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으로 쓰는 공터에 차가 몇 대 세워져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는 아이들과 놀며 시간을 죽였다. 그때 다시 카르스로 돌아가는 노부부가 차를 향해 걸어갔다. 진이 그들에게 다가가,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가는 길의 끝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결국 그 차에 탈 수 있었고, 현란한 튀르키예 음악이 나오는 그 차 안에서 나는 뜨겁게 졸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혼자 방에 들어가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잤다. 숙소를 빌려주었던 멜리는 외할머니 장례식에 가야한 다며 우리에게 키를 맡기고 떠났다. 겨우 조금 가뿐해진 눈으로 거실로 나왔더니, 진과 단이 요리를 해놓고 있었다. 빨리 와, 빨리 먹자.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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