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어교과서에서 처음 접한 이 글귀는 미국 속담이다. 학창시절이 아득하고도 먼 옛날이라 영어로 된 문장은 잊어버려서 번역기를 돌렸더니 이렇게 나온다. ‘Don’t look a gift horse in the mouth.’

비록 영어 문장은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이 글귀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동물의 입속을 들추어서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굉장히 해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다는 것도 낯선 이야기였다. 간혹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으면 키울 의사가 있는 이웃에게 한 마리씩 나누는 정도였다. 동물이라고 해봐야 가축의 범주에 속하는 돼지나 소, 닭이 전부인 줄 알았고 나머지 동물들은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었는데 평원을 뛰어 다니는 말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내 상식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게다가 미국 사람들은 선물로 주고받은 말의 입속은 왜 들추어 보는 지 어린 여학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은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동물병원 수의사들이 강아지의 치아를 보고 건강 상태나 나이를 짐작하는 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말의 입속을 들추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나이는 몇 살이나 되었고 건강은 양호한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입속을 들추었을 것이다. 그러니 머나먼 이국땅에서 태평양을 건너 온 이 미국 속담의 함의는 선물로 받은 말의 입속을 열어서 건강을 파악하고 나이를 가늠하는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선물의 가치를 평가하지 말고 그저 감사한 마음만 가지라는 뜻일 터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면 나도 모르게 이 속담이 생각난다.

그 선물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면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어쩜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용도나 필요에 딱 맞는 선택을 했는지 감탄을 멈출 수 없는 선물들이 있다. 내게는 생활용품과 먹거리들이 그러하다. 세수 비누나 샴푸 세트 혹은 참치세트나 다량의 식용유를 선물로 받게 되면 한동안 쟁여 놓을 수 있다는 든든함에 감사한 마음이 넘친다.

때로는 내가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러워서 장바구니에만 넣어 두고 그림의 떡인 양 침만 흘리다가 막상 누군가로부터 뜻하지 않게 선물로 받게 되면 말의 입속을 들추기는커녕 오히려 말의 입에 뽀뽀라도 듬뿍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물론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 명절에 갈비를 선물로 받은 때가 있는데 나로서는 정말 난감한 선물이다. 고기를 썩 좋아하지도 않고 조리법도 서툴러서 그러하다. 때로는 건강을 생각해서 영양제나 몸에 좋다는 각종 즙을 선물로 받을 때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아직은 영양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 규칙적으로 내 몸뚱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섭취한다는 일은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필요나 기호와는 조금은 동떨어지고 애용하지 않는 분야의 선물이라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선물의 입속을 들여다보는 대신 선물을 준비한 이의 마음과 정성에 감사함을 생각하며 어떻게 해서든 그 선물들을 소진하기 위해 애쓴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음식솜씨지만 갖은 양념으로 중무장한 갈비를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뜯게 한다. 좋은 건 나누어 먹어야 하니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몇 포씩 즙을 강요하며 받은 선물들을 보람 있게 소진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노력들이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미련한 짓인가를 의심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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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중고 거래를 하는 앱을 종종 이용한다. 옷장이나 생활 용품들을 정리할 때면 입지 않게 되는 옷들, 방치당한 채 외로움에 떨고 있는 가방들 그리고 주방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그릇이 있고 아이들 방에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유아동 도서들이 있다.

예전에는 이러한 물품들을 한곳에 모아 두었다가 아이들 학교에서 바자회를 할 때 몽땅 가져가서 팔거나 기부를 했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마저도 판로가 막혀버렸다.

작아진 옷들은 조카들에게 물려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물려주는 것도 미안했다. 유행이 바뀌고 예쁜 디자인이 넘쳐나는 덕택에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는 그릇도 제법 되었는데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있자니 자리 차지만 하는 그야말로 애물단지들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당근’이 생기면서 애물단지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입지 않는 옷들을 저렴하게 팔 수 있었고 아이들이 보던 유아동 도서는 젊은 애기 엄마에게 나눔을 하였다. 덕분에 나는 헬스 용품이나 취미를 위한 뜨개실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어서 당근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그날도 당근을 검색하던 중이었는데 식용유와 햄 세트를 판매하는 글이 있었다. 마침 식용유가 떨어진 상황이었고 햄도 우리 가족들이 즐겨 먹는 브랜드였다. 가격도 시중보다 저렴했고 유효기간도 넉넉해서 얼른 구매하기로 했는데 이 후로도 이러한 선물세트의 구성품을 판매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 왔다. 참치세트를 비롯하여 비누와 샴푸세트, 과일세트 등이 평소보다 유독 많이 올라왔다. 설이 코앞으로 닥쳐온 때였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온통 생각이 미련한 나는 사람들이 명절 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되팔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선물한 이의 마음을 고맙게 여겨 기어코 내 손에서 소진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구태의연하고 앞뒤가 꽉 막힌 사고방식이었을까?

받은 선물을 되팔기 위해서 가격을 정하려면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격을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물의 입속을 들추어야 한다. 그래서 이 선물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이고 또 그것을 할인시켜 중고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그 선물의 가치는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까발려지는 셈이다.

달리 생각하면, 이 방법이 꽤나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내게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을 선물한 이의 마음을 생각해서 끝끝내 부여잡고 소진하겠다는 미련함보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소용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이라면 정말 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좋아하지 않는 즙들을 억지로 먹어 없애겠다는 수고로움보다는 좋아하는 이들에게 전달이 돼서 음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소진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본인들에게 그닥 필요치 않았을 생활용품들이나 먹거리 세트들을 정말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달되기 위한 바람으로 말의 입속을 파헤치듯 가격을 따져서 ‘당근’에 올렸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선물을 한다. 지인의 생일일 때도 있고 연말연시나 명절 즈음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가 있다. 직접 만든 뜨개 용품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선물을 한다. 뭐가 됐든 받을 사람의 취향이나 나이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 선물이 꼭 필요한 물품이어서 상대방의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모를 일이다. 나에게 선물을 받은 사람들도 나의 판단 오류로 인해 그것이 크게 필요치 않은 물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온통 입속이 파헤쳐진 채 당근에서 전혀 모를 새로운 주인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선물들이므로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소진을 하던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어쩌면 나의 정성과 바람을 무시당하고 값을 매기기 위해 입속은 만천하에 까발려진 체 당근에서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선물 받은 말의 입속을 들추지 말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이치에 맞지 않는 속담인 것 같다. 오히려 선물 받은 말을 효율적으로 길들이기 위해서 입속을 들추어 철저히 검사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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