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닮아서
나는 바다를 닮아서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3.02.28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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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반수연 작가 제공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책 한 권을 이렇게 오래 읽어보긴 처음이다.

일단 잡았다 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삼 일정도면 책 한 권을 읽는다. 재미있는 책일수록 읽는 시간이 짧게 걸린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나중에 읽어야지.. 하다가 잊어버린다. 그런 내가, 반수연 작가의 에세이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2주일에 걸쳐 읽었다. 그녀가 2021년에 쓴 <통영>이라는 소설을 누구보다 재미있게 읽었던 나였기에 이번 책 또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왜 책 한 권 읽는데 2주일이나 걸렸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책을 읽을 시간이 도저히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곱창집에서 일한다. 집이 수원이라 잡지사가 있는 서울까지 출퇴근 시간만 해도 하루 5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다 보니 아침 출근할 때 버스와 지하철에서 졸고, 저녁에 퇴근할 때 지하철과 버스에서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치뜨고 책을 읽기가 힘이 든다. 내 몸 하나도 무거워 죽겠는데 가방에다 책까지 넣어 다니기도 부담스럽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반 작가님의 에세이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ebook으로 사놓고 잡지사에 출근해 아침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거르지 않고 한두 개씩 읽었다. 서울로 출근하느라 지치고 피폐해진 내 육신에 비타민을 주입하듯, 컴퓨터 화면에 작가님 책을 띄워놓고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 몸과 마음에 파르르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산문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그 카페에 갔다. 글이 막힐 때마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우두커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며 또 생각했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산문은 도망갈 데가 없다던 친구의 말이 사실이었다. 대나무의 그것처럼 툭툭 불거진 내 생의 못난 마디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덮고, 닫고, 색칠했던 기억을 소환해서 직면하는 일은 차라리 고통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가난과 황폐와 미숙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웠다. 글을 쓰는 내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노련한 문체도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견디는 용기였다. (작가의 말 中)

반수연 작가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아침마다 동네에 있는 ‘Kaffina’라는 뜻 모르는 이름의 카페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서너 시간 동안 컴퓨터에 고개를 처박고 돌덩이를 굴리듯 용을 쓰며 글을 썼다고 했다. 쓰면서도, 이 사소한 이야기가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내 고민했다고. 그 고민은 장애를 넘고 심연에서 빠져나오는 종류의 고민이 아니라 동그라미의 가장자리를 밟고 걷는 것처럼 끊임없이 계속되는 무한 반복이어서 늘 제자리를 맴돌았다고 했다.

이런 고민과 번뇌를 거쳐 나온 문장들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반수연 작가의 '나는 바다를 닮아서' ⓒ위클리서울/ 교유서가

<나는 바다를 닮아서>에 실려있는 모든 글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했던 말이 우리의 위안이 된다’는 글을 읽으며 나에게 위안이 된 구절이 있었다.

“그러니 회복 가능한 것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

우리는 숨을 쉬고 밥을 먹듯, 일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매일 겪어나간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죽을 만큼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건 별 게 아니라고, 뭘 그렇게나 괴로워하냐고 쉽게 말해버린다. 이런 가벼운 위로나 조언이 때로는 폭력처럼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가 못나서 이런 건가, 싶고...

그에 비해 반수연 작가는, 쉽게 위로하거나 가볍게 조언하지 않는다. 내가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문을 슬쩍 열어놓고 작가 자신의 아픔과 괴로움을 맘껏 엿보게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내 아픔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러니 회복 가능한 것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

이 책을 읽어내려가며 그녀와 내가 조금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땟국물이 줄줄 흐르도록 돌아다니며 선머슴애처럼 놀았던 것도..
쑥을 캐느라 정신이 팔려 학교까지 빼먹을 만큼 엉뚱했던 학창시절도..
아빠가 너무 일찍 떠나버려 그리움을 안고 살아왔던 시간도..
남편이 돌아오길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아내로서의 분노도..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힘들어했던 지난 시절도..
가슴 아픈 건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모습까지도..

이건 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기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계속 우겨보고 싶었다. “반수연 작가님이랑 저는 닮았다구요~~~!!”

책을 다 읽고 나니, 한지혜 작가가 쓴 짧은 문장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아 붙여 써본다.

‘멀리 떠날 것, 힘껏 돌아올 것’이라는 작가의 문장을 ‘멀리 도망칠 것, 기어이 돌아올 것’으로 고쳐 읽는다. 그리고 ‘기어이’ 밑에 다시 ‘힘껏’ 밑줄을 긋는다. (...) 이토록 기어이, 힘껏 돌아올 수 있게 한 자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떠남이 실은 표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책에 실린 모든 기록도 한 편 한 편 생의 표류기이자 여행기로 읽힌다. 읽으면서 몇 번을 크게 웃었다. 농담과 슬픔을 이렇게 잘 버무리는 걸 보니 엉뚱하게도 먼 나라에서 식당을 차린 적이 있다는 작가의 음식이 궁금해졌다. 슬플 때, 아플 때 그 밥을 먹으면 힘이 날 것 같다.

......

반수연 작가님. 좋은 책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그날 밤 도둑맞은 흑돼지 삼겹살 제가 대신 돌려드리겠습니다(느닷없이 도둑맞은 흑돼지 삼겹살 사연이 궁금하다면 책을 꼬옥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2% 모자란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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