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헝클어진 마음을 가만가만 정리해준다는 느낌이어서 오랜 시간 들여다보는 사진 한 컷이 내 책방에 있다.

‘반가사유상’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그림은 오래 전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국립중앙박물관 판매대에서 사 온 것으로,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것을 보고 내가 불교신도라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종교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사회적인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접하고 난 뒤의 내 마음이, 정신세계가 올무에 걸린 멧돼지처럼 거칠게 갈팡거릴 때 매우 탁월한 진정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보물처럼 책상 옆에 모셔놓고 있는 것일 뿐이다.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터)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터)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책상 바로 옆에 있긴 하지만 날마다 보는 것은 아니다. 보면서도 못 보고, 혹은 안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무거워서 터져버릴 것만 같을 때, 엎치락뒤치락 몸부림을 치다가 부지불식간에 엄마, 하고 절박하게 불러놓고 나면 뭔가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믿음이랄까 기대, 소망 등등을 내 책방의 ‘반가사유상’은 품고 있다가 슬쩍 하나씩 보여준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보물처럼 여긴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그것은 그렇다. 보면 보인다. 그리고 풀린다. 시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해결이 된다. 꽉 막힌 생각의 덩어리 어딘가에 바늘 구멍만한 숨통이 트이고, 부드럽게 따뜻한 물이 흘러들어 콘크리트처럼 강퍅해진 내 마음이 꿈틀, 꿈틀, 거린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날 그 동영상을 관람하고 난 뒤에도 나는 ‘반가사유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사실 뭐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해서 나는 불교계 내의 여러 문제점들을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사실은 문제였다. 내 안에 도사린 선입견을, 관념을 걷어내지 않으면 진실에 도달하지 못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어려워서 ‘반가사유상’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제목이 ‘비구와 비구니의 남몰래 사랑’이라고 꽤나 고색청연하게 돼 있었다. 이메일에 첨부파일로 들어온 그것은 한 편의 정교한 첩보영화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동영상을 왜 내게 보냈는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그동안 그 사람이 무슨 일에 관심을 집중해 왔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새삼스레 물어보고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 관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상은 체격이 아주 작은 비구니 한 명의 외출로 시작된다. 도시에 가까운 산에 절간이 있고, 이 절간에서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아래위 잿빛 승복을 입은, 잿빛 바랑을 걸치고 새하얀 고무신을 신은 비구니가 단정한 걸음으로 일주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화면이 싹 바뀌면,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거대 사찰 대웅전에서 우람한 체격의 비구 한 명이 나온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아래위 잿빛 장삼을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비구는 잰걸음으로 대웅전을 벗어나서 승방 옆 개인 주차장으로 향한다. 개인 주차장에는 선팅이 매우 짙은 흰색 밴이 한 대 서 있고, 비구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화면이 바뀌면 아까의 비구니가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잠시 뒤에 발랄한 차림의 여성 한 명이 연립주택을 나선다. 체격이 아주 작은 그녀는 스페인 집시 풍의 커다란 모자를 마치 태양처럼 썼고, 기장이 매우 짧은 핑크빛 원피스를 입었고, 어깨에는 라벨도 뚜렷한 샤넬 핸드백이 걸렸고, 굽이 높은 분홍색 샌들을 신었다.

다시 화면이 바뀌면 아까의 선팅이 짙은 흰색 밴이 슬쩍 비친다. 이어서 강변에 서 있는 칠층 건물이 슬쩍 보이고, 건물의 용도를 밝히는 무인텔, 세 글자가 선명한 주차장으로 밴은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뒤에 시인이나 화가 또는 음악가들이 즐겨 씀직한 중정모를 단정하게 쓴, 베이지색 양복에 검은 구두를 신은 중년의 깔끔한 신사가 밴에서 나온다. 이때 카메라는 사람의 그림자가 매우 짧다는 것을 강조하듯이 오랜 시간 비춰주는데 시간이 아마 열두 시를 조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같은 시간 무당벌레처럼 아담하게 화려한 경차 한 대가 무인텔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샤넬 핸드백을 어깨에 걸친 아까의 작은 여성이 발랄하게 통통거리는 몸짓으로 마치 튕겨져 나오듯이 뛰쳐나오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다시 또 화면이 바뀌면 태양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서 그림자가 길고, 중절모의 남성과 핑크빛 원피스의 여성이 팔짱을 끼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은 ‘미녀와 야수’ 또는 어미 곰과 새끼 곰을 연상케 할 정도로 키와 덩치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커서 어느 순간 남자가 여자를 주머니에 쏙 감춰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또 한 번 화면이 바뀌면 선팅이 짙은 흰색 밴이 무인텔을 빠져 나가고, 이삼십 초 뒤에 무당벌레처럼 도색이 화려한 경차가 또한 무인텔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다음 화면은 다른 장소, 다른 무인탤을 비춰주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아하, 하고 감탄사를 토해내고 말았다. 무인텔에 관한 나의 무식이 나도 모르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오래 전 자전거여행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일인용 텐트와 코펠 등을 배낭에 담아서 짊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날이 저물면 아무 데서나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비가 내릴 때는 노숙이 어려워서 전문 숙박업소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 어느 하루 무인텔이라고 하는,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업소를 만나서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팔십년대 중반 이후 나는 줄곧 주민등록 폐지 운동에 이름을 걸어놓고 있었고, 따라서 그때까지도 주민등록증이 없었다.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은행 거래도 할 수가 없었고, 카드 같은 것도 당연히 없어서 숙박요금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몹시 허둥거렸었다.

어쨌든 나는 그때 무인텔이라는 것이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이해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이용자의 얼굴을 관리자가 목격할 필요가 없게 하는, 그리하여 비밀이 필요한 이용자의 불안을 원천적으로 제거해 준다는 신뢰감 확보가 더 큰 이유였던가 보다.

내 손에 들어온 동영상은 전체 분량이 두 시간 남짓으로,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정밀하게 편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촬영기사가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잠복과 미행으로 일 년 이상 고생깨나 했음 또한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내용도 단일하게 무인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젓한 계곡의 펜션이 있는가 하면 모두가 다함께 반라로 뛰어다니는 해수욕장의 콘도가 있고, 호텔도 있고, 한눈에 척 봐도 동남아로 여겨지는 따뜻한 나라의 비치파라솔이 있는가 하면 힘차게 아이언샷을 휘두르는 골프장 풍경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촬영기사들만 고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주인공들의 고생이 촬영기사들의 고생보다 훨씬 극심했을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 두 사람의 복장과 헤어스타일 또한 바뀌는 것이어서, 어떤 때는 여자의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생머리가 되기도 하고, 우아하게 살짝 웨이브를 준 머리카락 끝이 목덜미에서 찰랑거리기도 한다. 남자의 변장술 역시 간단한 게 아니어서,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연상케 할 정도의 복장에 검은 수염을 붙였는가 하면, 아예 대놓고 까까머리에 빨간색 양복을 입고 아무 대나 침을 찍찍 뱉어내는 식으로 조폭 행세를 하기도 하는 등, 커다란 덩치 하나를 제외하면 도대체 저 사람이 아까 그 사람 맞아?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용의주도했다.

그런데 왜? 왜 저렇게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려야만 하는 거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몹시 원하고, 단 사흘만 못 봐도 죽음보다 독한 갈증으로 안절부절, 인사불성이 되어가지만, 그러면서도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아갈 생각은 못 한다.

아니다. 못 한다기보다 안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밀회의 즐거움이지 부부생활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밀회의 즐거움은 돈에서 나오고, 권력이 뒤를 받쳐준다. 일이 잘못 돼서 돈줄이 끊어지고 권력 기반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리는 것이다.

영상 하단에 나온 자막에 따르면 남자는 다수의 국보와 보물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거대 사찰의 주지였다. 이 거대 사찰은 기본 자산도 압도적으로 많거니와, 각종 불사와 기도 행사로 올리는 수입 또한 천문학적이어서 자격 있는 수많은 승려들이 주지 자리를 놓고 일 년 내내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영상을 촬영한 목적 자체가 사실은 주지 자리를 놓고 벌인 암투의 일환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주지가 몰래 애인을 두고 있다는 소문을 입수한 주지 지망생이 사람들을 사서 미행과 잠복, 촬영을 일 년도 넘게 했다. 그것을 무기로 주지를 은밀하게 협박해서 사퇴를 유도한다는 전략이었지만, 일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관리 소홀로 영상이 외부 유출이 돼버렸고, 복사본이 내 손에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장자와 노자는 한가로운 삶을 강조하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덮어놓고 한가하면 그 자체가 병이 되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한가함은 그 내부에 심오한 철학 내지는 성찰의 역량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그 태생부터가 성찰이었다. 보다 나은 삶을 희구하는 탈출이나 혁명, 권력다툼 같은 것은 불교의 세계관이 아니었다. 나와 내 이웃을 돌아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얻어내는 어떤 것, 그 어떤 것 하나를 위해서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은 고군분투해 왔다.

깊고 넓은 생각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성찰은 적당한 노동을 에너지로 삼는다. 극심한 노동은 생각을 끊어버리지만, 적당한 노동은 생각이 생각을 낳는 창조로 이어진다. 그래서 승려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골방에 앉아서 관념의 성을 쌓기도 하지만 자기가 마실 차를 손수 만들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하고, 탁발을 나서기도 하고, 심지어는 무술을 연마하기도 한다. 사람이나 동물을 해할 목적의 무술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몸짓을 불려가고 있는 관념이란 이름의 죽은 생각을 잘라 버릴 목적의 무술을 연마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맥이 다 끊어져 버렸거나, 끊어져 가고 있다. 굳이 원흉을 찾기로 하자면 아무래도 돈을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의 불교는 지금, 돈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가만히 있어도 승적만 정확하다면 월급이 나온다.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서 허둥거리다가 도박을 하기도 하고, 변장한 몸으로 떼를 지어 다니면서 맛집 탐험을 하기도 하고, 애인을 몇이나 숨기고 있는가 경쟁을 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문득 영상 속의 그 비구니가 궁금하다. 그녀는 아마 청춘의 시기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머리 깎고 중이 된다면, 그러면 마음고생도 해소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됐던 것일까? 안 된다는 생각으로 포기를 결심했던 것일까? 추론을 하고 또 해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답은 얻어내기는 역시 어렵다. 어느 분야에서나 돈이 원수로구나 하는 푸념 같은 결론 하나가 희미하게 보일 뿐.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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