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부자재·공공요금 등 인상 압박 여전
샤넬·롤렉스 등 명품 가격은 또 올라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지난해부터 멈출 줄 모르는 먹거리 가격 인상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실태조사와 간담회를 통해 기업들에게 당분간 인상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 기업들은 가격 동결을 결정하거나 가격 인상을 철회하는 등 정부 기조에 따르고 있지만, 원부자재값과 공공요금, 물류비, 인건비 등의 인상으로 제품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정부 “상반기 가격 인상 자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고, 국내 식품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올 상반기 제품 가격 인상 자제를 직접 당부했다.

식품업계에서는 김상익 CJ제일제당 한국식품총괄, 이병학 농심 대표, 황종현 SPC삼립 대표, 황성만 오뚜기 대표이사, 이승준 오리온 대표, 김성용 동원F&B 등 12개 식품기업 임원들이 참석했다.

정 장관은 “최근의 식품물가를 엄중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서민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식품물가의 조기 안정화를 위해 정부와 식품업계가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식품업계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물가 안정을 위해 협조해 주길 바란다”며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할당관세 적용 품목 추가 발굴 등 업계의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의 이 같은 요청은 지난해부터 지속 이어져 왔다. 지난해 12월에도 간담회를 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5%로 상승세가 둔화됐으나 가공식품의 경우 9.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정희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국제 곡물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보다 하락했고 환율 상승세도 다소 진정됨에 따라 원자재 비용 부담이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며 “정부가 밀가루 가격 안정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식품 원료 할당관세 연장도 검토하는 등 업계의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지원하는 만큼 식품업계도 경영효율화를 통해 인상 요인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는 주류업계에도 소주 가격 인상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나섰다. 맥주와 소주 역시 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맥주는 오는 4월부터 주세 인상에 따라 가격이 조정될 가능성이 특히 크다. 맥주는 2020년부터 세금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변경되면서 매년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고 있다.

주세법 개정으로 기존 물가 상승률의 100%에서 정부 재량으로 70~130% 사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다. 이에 70% 수준인 3.57%가 올해 4월 1일부터 맥주에 적용된다. 이에 전년 대비 30.5원 오른 1리터(L) 당 885.7원이 부과된다.

소주도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 소주의 원재료인 주정(에탄올)을 만드는 타피오카 전분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주정 제조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 병뚜껑 가격도 함께 상승했다. 실제 제병업체의 소주병 공급 가격은 병당 180원에서 220원으로 올랐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재 음식점에서 4000~5000원으로 형성된 소주 1병당 가격이 조만간 6000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실제 서울 강남권에서는 이미 6000원~7000원선 메뉴판도 심심치 않게 보온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국민술’의 가격이 국밥 1그릇 가격과 비슷해진 상황이다.

주류 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이 역시 정부가 나섰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 기획재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주 등 품목은 우리 국민들이 정말 가까이 즐겨 하는 그런 물품”이라며 “물가 안정은 당국의 노력, 또 정책도 중요하지만 각계 협조가 굉장히 필요하다. 업계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언급했다.

 

풀무원샘물 ⓒ위클리서울/ 풀무원
풀무원샘물 ⓒ위클리서울/ 풀무원

식품·주류 업계…가격 동결

정부의 이 같은 제동에 식품·주류 업체들은 반응했다. 가장 먼저 풀무원샘물이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풀무원샘물은 지난달 22일 각 유통업체에 다음 달 1일부터 ‘풀무원샘물’과 ‘풀무원샘물 워터루틴’ 제품 출고가를 평균 5% 올린다는 내용의 공문을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5일 후인 지난달 27일 이를 돌연 철회했다. 고물가 시대 소비자들의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주류 제조사들도 당분간 동결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이트진로도 27일 “당사는 당분간 소주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가격 인상 요인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현재 쉽지 않은 경제 상황에서 소비자와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결정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맥주 ‘테라’와 ‘하이트’, 소주는 ‘참이슬’과 ‘진로이즈백’을 제조하고 있다.

소주 ‘처음처럼’과 맥주 ‘클라우드’ 제조사인 롯데칠성음료와 ‘카스’를 제조사인 오비맥주도 같은 입장을 전했다. 오비맥주 측은 “오는 4월 주세가 인상되더라도 맥주 가격은 당분간 올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CJ제일제당도 가격 인상을 번복했다. 당초 3월 1일부터 편의점 판매용 고추장과 조미료 출고가를 최대 11% 올릴 계획이었으나, 이를 보류하기로 했다. 기존대로라면 ‘해찬들태양초골드고추장(500g)’은 9900원에서 이달부터 1만400원, ‘CJ쇠고기다시다명품골드(100g)’는 4300원에서 4800원으로 500원 인상될 예정이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원가 및 비용 부담은 여전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해 편의점 판매 제품에 한 해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가격 철회 행보에 일각에서는 제조사를 향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구입하는 가격은 유통채널이 결정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류나 음료수의 경우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유흥주점이 값을 정한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식당이 정하는 가격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출고가는 100원이 올랐는데 메뉴판은 왜 1000원이 오르느냐”, “마트에서 사서 집에서 먹는 편이 저렴하겠다” 등의 반응이 있다. 반면, “술값을 정하는 건 주인 마음”, “공공요금이 오른 만큼 메뉴가 조정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등의 반박도 있다.

 

ⓒ위클리서울/ 샤넬 홈페이지

기업들 철회에도 ‘명품’ 인상은 여전

국내 식품 기업들이 원부자잿값 부담을 끌어안으면서도 가격 인상을 철회하는 가운데, 해외 명품 가격은 올해도 또 인상됐다. 국내 브랜드가 아닌 만큼 정부 눈치를 보지 않는 식의 ‘배짱 인상’이다.

샤넬은 지난 2일 주요 제품 가격을 최대 6% 인상했다. 이에 대표 인기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 스몰’은 1237만 원에서 1311만 원으로 6% 올랐다. 미디움 사이즈는 1316만 원에서 1367만 원으로 3.9% 인상됐다. 라지 사이즈는 1420만 원에서 1480만 원 4.2% 상향 조정됐다.

‘보이 샤넬 플랩백’은 864만 원에서 3.6% 오른 895만 원, ‘22백 스몰’은 747만원에서 775만 원(3.7%), 미디움 783만 원에서 817만 원(4.3%), 라지는 849만 원에서 881만 원(3.8%)으로 각각 비싸졌다.

샤넬은 지난해 1월, 3월, 8월, 11월에 걸쳐 총 4차례 가격 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코코핸들’ 제품 가격을 10% 올렸고, 11월에는 평균 5~12% 인상했다. 이번 인상은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샤넬뿐 아니라 에르메스와 프라다, 롤렉스 등도 새해 벽두부터 가격을 올렸다. 에르메스는 지난 1월 4일 최대 10%까지 가격을 인상했다. 프라다는 지난 1월 5일부터 전 제품 가격을 5~10% 일괄 조정했다.

롤렉스도 새해부터 시계 가격을 2~6% 인상했다. 산하 브랜드 ‘튜더’ 역시 8% 올랐다. 예물 구입 성수기인 3~4월 디올과 루이비통을 비롯해 예물 주얼리 가격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요금 등이 크게 오르면서 가격 인상에 대한 압박이 심화되고 있으나, 국내 기업들은 상품 출고가 몇백 원 올리는데도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며 “해외 브랜드를 규제할 순 없겠지만 서민들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기업들이 가격을 동결하는 것일텐데 상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일부 기업들은 원부자재 값과 공공요금 압박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불가피하게 인상을 단행하기도 했다. 빙그레는 시중에 유통 중인 ‘벨치즈’ 가격을 약 14% 올리기로 했다. 맘스터치도 일부 메뉴 가격을 평균 5.7% 조정한다. 시그니처 메뉴인 ‘싸이버거’ 단품이 4300원에서 4600원으로 바뀐다. 롯데칠성음료의 생수 브랜드 ‘아이시스8.0’ 제품도 15.7%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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