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책 읽는 일기] 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민음사, 2022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디자인=이주리 기자

그렇게 H와 L과 J와 나는 횟집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 밤에 횟집 앞에 서서 수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들이 계속 뻐끔거렸다. 크고 작은 광어들이 배를 깔고 누워 있고, 어느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와는 조금 다른 기묘한 얼굴로 떠 있었다. 등 뒤의 가게에서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싸구려 횟집 같던 가게는 사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양 많은 코스를 내어주는 인심 좋은 가게였다. 이럴 거면 왜 ‘포장 전문’이라고 붙여 놓은 거야? 친구들에게 말했고, 친구들은 술에 취한 얼굴로 그래 맞아, 그래 맞아, 안 그래도 어색하고 익숙한 쨍한 간판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대답했다.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나는 횟집에 오기 직전에 읽었던 소설에 대해 불현듯 이야기하고 싶었다.

방금 ‘유령의 마음으로’라는 소설집을 읽었는데… 정말 정말 좋았어. 곁에 서 있던 H에게 말했다. H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떤 게 그렇게 좋았는데? 라고 되물었다. 그게 그러고 보니 어떤 게 정말 좋았지. 방금 막 좋다, 라는 감각에 푹 젖어있던 터라 뭐라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절대적인 좋음, 같은 것을 논하기 이전에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좋음이라는 것이 있고, 그 순간적인 느낌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설명하기가 힘들다. 나는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했다. 요새 한국 SF의 ‘소재’만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어. 아니 이 소설이 SF라는 말은 아닌데… 소설에 문득 튀어나오는 환상이 어색하지 않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 부러 따뜻하지도 않고, 냉소하지도 않고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좋아…

제대로 말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면 언제나 상대방의 얼굴을 본다. H의 얼굴은 다소 아리송해 보였다. 네가 그렇게 좋다는데, 좋긴 하겠지. H의 얼굴에서 나는 그런 말들을 읽었고, 아마도 그것이 H의 마음이 아닌가, 마음이란 무엇이길래 간단한 얼굴에 움직임으로 이렇게 드러나는 것일까 생각했다. 마음에게도 직접 스스로를 드러낼 몸이 있다면, 표정에서 놓여난 마음은 내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적어도 내 마음은 횡횡했다. 이 소설집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오늘 못한 말들은 나중에 길게 해줘야지. 길게 이어지는 나중을 상상하기는 쉽다. 그렇게 H와 L과 J와 나는 횟집으로 들어갔고…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 ⓒ위클리서울/ 민음사

너무나 분명하게도

횟집에는 해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해파리네? H가 물었고, J는 어째서 해파리가 여기 있는 거야? 하며 신기해했다. L은 해파리를 보며 어딘가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감동한 얼굴이었다. 나도 해파리를 보았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약간 낡아 보이는 횟집에서, 별다른 빛도 내뿜지 않은 채로 유유히 날아다니는 해파리를 보았다. 해파리가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평소라면 조금 곤란한 일이겠지만, 뭐 어떻게 해. 해파리가 이미 날아다니고 있는 걸. 나는 별 다른 마음 없이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고, 아직 수북이 쌓인 생선튀김을 조금씩 집어 먹었다. 이 집 사장님은 인심으로 장사하는 것 같네.

조금씩 늘어나는 해파리를 보며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해파리가 이렇게 불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해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옆 테이블의 남자들이 자꾸 상스러운 욕을 했는지, L의 귀가 그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코스에 포함된 멍게를 먹지 않고 다시 카운터로 돌려보냈다. 멍게를 되돌려 보내다니, 생각하며 그쪽을 보았더니,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내가 메고 온 가방이 보였다. 적당히 밝은 횟집이어서 별로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내 가방에서 분명 빛이 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가방을 열어 보니, 가방 안 쪽에서 내가 가져온 임선우의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가 빛나고 있었다. 맹렬히는 아니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하얀 빛이 새어나왔다. 분홍색 표지에 귀여운 유령이 그려진 그 책은 알록달록해서, 빛이 새어나오자 약간 미러볼 같았다. 친구들에게 책을 펼쳐 주었다. 빛이 나네? 빛이 난다. 우리가 미러볼처럼 빛나는 책을 보며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책 속에서 해파리 한 마리가 불쑥 나왔다. 파파밧, 하는 소리가 일더니 미끄덩하고 해파리 한 마리가 책을 빠져나와 횟집의 허공으로 날아갔다.

횟집을 날던 해파리는 사실 모두 임선우의 소설 속에서 왔던 것이다. 그 소설 속 어느 날에는 닿기만 해도 사람을 해파리로 만드는 변종 해파리가 창궐했다. 창궐이라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은 해파리가 되고 싶어 했으므로. 변종 해파리는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을 뿜는다. 사람들이 그 빛에 홀려 해파리가 되고 싶어 했을까? 아니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해파리가 되기를 택했다. 해파리가 되면, 모든 인간적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정말로 그저 해파리가 된다. 해파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업체까지 생기고, 반대로 늘어나는 바닷가에 밀려온 해파리 사체를 치워야만 하는 청소부도 생긴다. 온 세상이 해파리와 해파리가 아닌 것으로 나뉜다. 지금 횟집을 날고 있는 해파리처럼.

그 세계에 어떤 사람 역시 해파리가 되고 싶었다. 삶에 대한 절망도 불신도 낙관도 없이 간단히 해파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완전히 해파리가 될 수는 없었다. 해파리 업체에 부탁해 해파리가 되었는데, ‘빛이 나지 않는다.’ 인간으로의 의식 또한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어서인가. 아직 받지 못한 온기가 있어서인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도 더 해줄 말은 없다. 그래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지나도 그는 해파리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시간을 견디며 인간의 마음을 가진 해파리로 죽는다. 혹은 해파리의 몸을 가진 인간의 마음으로 죽는다. 남은 것을 그대로 남긴 채로.

나는 그것을 본다. 그렇게 연약하게 나풀거리는 인간의 마음이 한순간 파바밧, 꺼지는 것을 본다. 나는 독자니까, 읽으면서 본다. 죽어가는 해파리를 옆에서 지켜보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본다. 그대로 관망하지도 않고, 억지로 짜내 살리려고 하지도 않고, 최대한의 노력으로 해파리가 되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을 살피는 소설의 주인공을 본다. 나는 그 주인공의 어깨를 내려다보다가, 그 사람이 임선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임선우가 지켜보는 수많은 해파리들이 눈앞에서 나풀거린다. 무언가 어색하게 짜내지도 않고, 냉정하게 가져다 버리지도 않는,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보는 곧고도 덤덤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 소설집에는 섬세하게 쌓인 장면들 속에는 그렇게 되살려내진 마음들이 가득해서, 너무 가득해서 소설집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책 속에서 진짜 해파리가 훌렁훌렁 나오는 것처럼.

평온한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환상, 너무나 어이가 없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환상, 그 속을 열어 보면 얕게 떨리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 쌓인다. 윗집과 아랫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엮이고, 지나가다 만난 절교한 동창이 사이비에 홀려 있을 때도, 갑자기 내 마음을 똑 닮은 유령이 내 옆에 서 있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일단 듣기. 아니, 아니, 듣기 전에 우선 말하기. 하고 싶은 말 있잖아, 너도. 네 말과 내 말을 가지런히 널어두고, 너무 기대지 말고. 그래 그렇게 널어두고, 가만히 보자. 뭐 하려고 하지 말고. 짜지 말고. 입술 대빨 내밀지도 말고. 보고 있으면, 이제 누군가가 가볍게 와서 귀에 대고 속삭일 것이다. 속삭이는 순간 깨어날 것이다.

깨어나는 순간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아마도 당신의 마음을 널어둘 시간이었다면 충분하다. 해파리는 이토록 가벼운 무게를 지녔구나. 내 귀를 스치며 지나간 해파리들은 이제 어딘가를 향해 춤추듯 흘러가고, 나와 H와 L과 J는 생각한다. 이제 C가 올 시간이 되었구나. 책을 덮고 기다린다. 이 책을 새로 펼칠 사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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